빌 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의 이 말은 참 놀라운 신앙의 고백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고백이어야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롬 6:4–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어떤 뛰어난 엘리트 그리스도인만 경험하는 차원 높은 신앙의 수준같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삽니다. 바울이 표현한 것처럼 이제 믿는 우리가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자기 부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믿는 자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정말 그렇게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냥 알고만 있는 것은 많은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로 시기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해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해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나도 “사는 것”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여전히 무언가는 얻어야한다는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과 같은 상황이면 어쨌든 그리스도가 전파되니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나는 감옥에 있으니 기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된다고 해도 나를 통해서가 아니니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교회의 하나됨에 ‘얼마나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느냐’가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성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 하시는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 바로 그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의미를 제대로 알 때 또한 서로 연합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항상 시기와 질투, 경쟁, 분열, 다툼이 있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로서 세상과는 다른 하나됨을 세상 가운데 나타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