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을 알아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최종혁 · 2026.10.23 · 고린도전서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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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3:1–13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개념이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긴합니다. 문제는 ‘사랑’은 사람 사이 관계에 있어 (특히 중요한 관계에) 절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생각대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관계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나는 사랑을 했는데 상대는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서로에게 실망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해 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관계가 멀어집니다.

개인의 관계도 그렇지만 이런 면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교회에게 있어서도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가장 가슴 아픈 평가는 ‘사랑이 없다’일 것입니다. 사랑이 정체성인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교회는 그냥 세상의 다른 공동체와 다를 것이 없고, 교회가 전하는 그리스도와 복음도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교회, 어쩌면 대부분의 교회가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교회는 이런 면에 있어서 정말로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생각해 봐야합니다. 교회는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람이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쉬운 예로,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면 아이는 사랑 받는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부모는 분명 아이를 사랑해서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십니다(히 12:6). 이 경우 상대가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훈육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랑’에 대한 평가를 무겁게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도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올바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개념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 많지만, 그 모든 개념의 가장 구체화된 모습은 예수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는 사랑의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참 사랑’으로 생각하기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랑에 대해서 다른 정의를 하고 우리에게 그 정의를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 정의에 따라서 사랑을 하라고 하고, 그런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니까 너는 사랑 받지 못하는거야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말하는 ‘거짓 사랑’이 없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서로에게 그런 사랑을 바라며, 그것으로 즐거워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닮는 것은 주님처럼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않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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