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형제자매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

본문: 말라기 2:10-16

설교자: 조정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말라기)를 통하여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 하신 경고의 말씀은 한마디로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에 신실하게 변함없이 조건 없이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신실하게 사랑하라’이다(1:1-5). 그들은 하나님께 제물로 예배드리는 데 있어서(1:6-14),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는 데 있어서(2:1-9) 신실하지 못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불성실함을 엄히 꾸짖으시는데도 그들은 가슴을 치고 회개하기는커녕,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대들고 돌이키지 않았다(1:7).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기 백성의 무책임한 행위를 꾸짖으신다. 그전까지는 언약의 하나님을 직접 배신한 것을 책망하셨다면, 이제는 그 언약의 백성 간에 거짓을 행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욕되게 만드는 죄를 질책하신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부부 관계와, (새) 언약 안에서 한 아버지와 한 하나님을 모시는 백성(성도) 간의 관계가 결국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명백한 사실을 발견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마 25:40), 배우자에게 그리고 성도에게 한 것을 하나님은 당신께 한 것으로 보신다는 말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옛 언약의 백성의 불성실함을 어떻게 경고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가 반드시 듣고 돌이켜야 할 삶의 문제는 없는지 주께서 오늘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권면과 책망에 귀를 기울이자. 

1. 경고: “어찌하여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는가?”

말라기가 꾸짖은 이스라엘 백성의 두 가지 문제는 첫째,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한 것(10-12절), 그리고 둘째, “서약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는 것(13-16절)이다. 이는 각각 혼결과 이혼의 문제를 가리키는데, 말라기 전에 이스라엘의 회복 운동을 일으킨 에스라도 이 문제에 직면했었다(스 9:1-2):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고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에스라는 이방 아내와 그 자녀들을 내쫓기로 결정하고 회개한 이들의 명단까지 기록했다(스 10장). 

말라기의 사역이 끝나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잠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느 13:23-5):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같은 민족끼리 결혼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따르면, 이방인도 그들이 믿던 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기로 맹세하면(남자는 할례에 순종, 출 12:48; 민 9:14), 유대인과 같은 복을 누릴 수 있었고, 보아스와 룻의 경우처럼 결혼도 가능했다(룻 1:16).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금하신 혼결 문제의 핵심은 우상을 섬기는 배우자가 그들을 “유혹하여”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만드는 것이었다(신 7:4, 솔로몬). 그러나 말라기의 청중 이스라엘 백성은 재정적, 성적 이유로 혼결을 선택하고(“이방 신의 딸과 결혼”, 11절), 이를 위하여 기존의 결혼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깨버렸던 것이다(“이혼”, 16절). 

잘잘못을 떠나서 결혼과 이혼은 개인의 선택이고, 어디까지나 사생활 아닌가? 그러나 말라기는 그 사고방식을 깨뜨린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10절). “각 사람이 자기 형제(자매)에게 거짓을 행”한 것은 곧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욕되게 하는 것이다. 백성 간의 범죄를 절대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들의 하나님이 같고(), 그들의 아버지가 같기 때문이다(신 32:6; 사 63:16).

이스라엘을 낳으시고 기르신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와 대대로 언약을 맺으셨고, 그들은 언약의 백성으로서 자기 이웃, 곧 그들의 형제자매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요구를 따라야 했다(레 19:13; 마 19:19). 그래서 모든 유다 백성이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한 게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당신이 사랑하시는 거룩한 자녀들 전체를 욕되게 한 것으로 보셨다: 11유다는(여성형)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남성형)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11절). 혼결의 죄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이스라엘 전역과 특별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두기로 하시고 거처로 삼으신 예루살렘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이었고,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성결(거룩한 백성)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또한 혼결을 위하여 이혼을 강행하였는데, 이 문제를 매우 사적인 일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결혼이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신 자리에서 맺은 굳건한 서약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치셨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14절). 

어려서 맞이한 아내”라는 것은 그들이 귀환하여 혼결한 아내와 구별하기 위한 표현이다. 하나님은 현재 그들과 살고 있는 이방 신의 딸이 아니라 원래 맺은 결혼 관계를 인정하신다.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is)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은 ‘동반자’를 뜻한다. 배우자가 사고팔 수 있는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고, 서로를 보완하는 완벽한 배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약”은(베리트) 그들의 관계가 개인의 선택이나 감정, 이득을 위한 (언제든 깰 수 있는) 상호 계약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굳게 맺어진 언약 관계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예수님도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9:6).

말라기는 전체 본문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15절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말라기는 결혼의 시초를 되짚는다. 하나님이() 아담을 위하여 만든 배필은 몇 사람이었는가? 오직 하나다. 오직 하나만 만드실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셨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 충만하신 분이시라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었다(창 2:7).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을까? 이는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남편과 아내의 끊어지지 않는 언약의 관계 안에서 경건한 자손을 얻으시고, 그렇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자기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을 취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창 1:28).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의 청사진엔 일부다처도 없었고, 혼결도 없었고, 이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라고 명령하신 이유이다(16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결혼과 이혼의 결정은 절대로 개인의 사적인 결정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분 앞에서 언약의 백성 간에 하는 결정이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밝히셨다: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배우자를 속이고 배신한 죄가 드러난 자) 미워하노라”(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러므로 만민이 그분의 이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배신하지) 말지니라”(16절). 물론, 이혼이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되는 건 아니다(시 85:2; 요일 1:9). 성경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이혼을 원할 때, 허용할 수 있고(고전 7:15), 음행한 배우자가 원할 때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마 19:9). 폭력과 파멸로 가정을 파괴하는 배우자와 일시적으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지혜로운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든지 “심령을 삼가 지켜”야 한다. 배우자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심판: “여호와께서 끊어 버리시리라”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녀를 변함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지만, 형제자매에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자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지는 않는다. 피해를 입은 자도 자녀이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자녀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 자체도 부모에게 깊은 상처와 수치심을 남기기 때문이다. ‘네 형제자매에게 또 그렇게 하면 다시는 널 안 볼 거다’, ‘너는 우리 집에 있을 자격이 없다’라고 무섭게 경고하는 이유는 결국 그 자녀가 회개하고 돌이켜 가족의 명예와 화목을 지켜내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관용표현: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대상 25:8)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12절). 

누구든지 상관없다. 하나님은 배우자(확장: 성도)에게 적대적으로 행하는 자를 심판하신다(마 18:35). 심지어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예배(제사)드리는 자에게도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무서운 진노를 쏟으신다. 반드시 백성(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내치신다고 하셨다. 배우자 또는 성도와의 수평적 관계에서 심각한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선 아무리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척을 해도,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가증하게 보신다(13-4a절):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덮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3. 적용

매주 우리가 행하는 떡과 잔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하나님이 지으신 새 언약 백성이 되었음을 선포한다(고전 10:17).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과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맹세를 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형제자매에게 한 것을 하나님께 한 것으로 보신다(마 25:40, 45). 남편 또는 아내를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얼마나 엄중히 여기는지, 나아가 언약의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신다. 

그래서 예수님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자매)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자매)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말씀하셨다(마 5:23-4). 물론 화목을 이루는 일은 쌍방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서 한쪽에서 전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다른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용서할 수는 있다. 주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자매)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8:35). 배우자나 성도를 미워하고, 적대적으로 대하고, 회피하며,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하지도 않고, 화목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며 섬기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며, 혹시 가능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의 손에서 예배를 다시는 받지 않으시고, 그들의 봉헌물(섬김, 봉사, 찬양, 감사 등)을 돌아보지도 않으신다. 회개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회개를 거부한다면, 거룩한 당신의 백성을 욕되게 하는 자를 반드시 끊어 버리실 것이다(육신적 심판: 엘리와 아들들, 삼상 2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행 5장, 영적인 심판: 고전 5:13,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빌 4:2-3, 유오디아와 순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하나님 사랑하는 건 쉽다. 하지만, 성도(배우자) 사랑은 어렵다’라는 말은 틀렸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