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자유로운 신앙의 강압적인 훈련?
본문: 여러 본문
설교자: 조정의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의무이기 앞서 특권이다. 우리는 억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반역한, 영원히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을, 창세전에 택하시고, 독생자의 핏값으로 구원하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모든 신령한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에 진실로 감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직 신앙이 없는 그들의 자녀의 경우엔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
과거엔 매우 ‘강압적인’ 방법으로 갓난아기일 때부터 자녀를 예배의 장소로 끌고 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신앙이 생겨나기를 기대하는 좋은 마음으로. 최근엔 그 과정에서 부작용을 경험한 젊은 세대가 자녀에게 스스로 신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옳다는 변화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예전엔 울든지 자든지 일단 예배의 자리에 두려고 애썼다면, 지금은 본인이 원하지 않거나 와서도 예배의 참 의미나 가치를 맛볼 수 없다면, 굳이 예배의 자리에 데리고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긴다. 오히려 다음날 학업에 지장을 주거나 생체 리듬을 파괴하는 것을 더 염려한다.
하지만, 자녀가 자라서 “어른 예배 참석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할 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특히 ‘원하든 원치 않든 예배는 무조건 드리는 거’라고 강제하지 않아 온 부모는, 자녀가 분명히 자기 의사를 밝힐 때, 대답할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자유로운 신앙을 부모가 강압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
1. 하나님은 부모에게 무엇을 명령하셨나?
하나님은 부모에게 “너희 자녀를…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명령하셨다(엡 6:4). 잠언 말씀은 자녀에게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라고 요구하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다(잠 1:7-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하나님이 자녀를 선물하셨다면, 그들의 의무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훈과 법을 가르치고 자녀가 이를 지키며 살도록 양육하는 것이다. “여호와”라는 언약의 이름은 구약 시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연상하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셨다고 했다(신 6:1-2). 그러면서 부모에게 그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신 6:7).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렇게 대대로 여호와의 언약 백성의 복을 전수하게 하신 것이다.
새 언약의 백성에게도 하나님은 같은 것을 요구하신다. 그들이 대대로 평생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들에게 명한 것을 지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자녀 양육을 명령한 에베소서 본문 앞부분에는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하신 사실을 밝히는데, 그 목적에 관하여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라고 했다(엡 2:7). 어떻게 여러 세대에 그분의 풍성한 은혜가 전수되는가? 부모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함으로 되는 것이다. 새 언약의 백성인 부모에게서 난 자녀는 그래서 큰 특권과 축복의 기회를 타고난다. 어려서부터 높은 신분이나 빵빵한 재정 지원을 받는 금수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극히 높은 신분과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소유하는 풍성한 은혜를, 부모를 통해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은 그의 어머니 유니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외조모 로이스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딤후 1:5). 반면, 하나님은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훈육하는 일에 실패한 엘리를 심히 책망하시면서 가족 전체를 벌하셨다(삼상 3:13, “금하지 아니하였음”).
2.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지 않는가?
대부분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예수님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이라고 하셨다(마 7:11). 그리스도인 부모는 그래서 자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복락인 영생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고, 성경을 읽게 하며, 복 있는 자의 삶을 살도록 훈련한다. 하지만, 자녀가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 부모의 고민이 시작된다. 특히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원치 않는 신앙 교육을 강제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거다.
먼저, 자녀는 자기의 정욕대로 되지 않을 때, 언제나 분노한다. 공격적으로 분출하거나 수동적으로 응축하는 모양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금하거나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는 부모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결국 ‘자녀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뒤에 나오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과 병행할 수 없다. “양육”은 주님 말씀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이끄는 데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는 자녀가 원치 않아도 많은 것을 강제로 하도록 만든다. 아이가 먹기 싫어해도 먹이고, 학교나 학원을 빠지려고 해도 보낸다. 하루 종일 유튜브나 게임을 즐기는 것을 금하고, 아무리 먹고 싶어 해도 그 나이에 해로운 건 못 먹게 한다. 아이가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신앙 훈련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자녀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자녀에게 마음껏 선택하도록 자유를 주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악한 본성에 따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기보다는 멀어지는 것을 택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믿지 않는 친구를 사랑하고, 설교보다 세상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 앞에 자기를 굴복시키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 뜻을 앞세우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무시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강압적인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면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일은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일을 악하고 부도덕하게 할 수도 있다. 폭언이나 폭력을 퍼붓는 것, 과한 기대와 실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것.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신앙을 권하는 것이라는 걸 자녀가 믿지 못할 때, 그 귀하고 가치 있는 신앙도 심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낙심할까 함이라”, 골 3:21). 깊은 쓴 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3. 그러면 어떻게 자녀의 신앙을 훈련할 것인가?
첫째, 먼저 신앙의 본을 보이라: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교회에서 젊은 남자를 가르칠 때,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했다(딛 2:7).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녀는 부모가 말하는 것보다 더 크게 부모의 삶을 통해 배운다. 그래서 옛 언약의 백성에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시면서 하나님은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은 너는(부모)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다(신 6:6-7). 새 언약의 백성에게 요구하신 자녀 양육 또한(엡 6:4), 앞서 제시한 거듭난 자로서 부모의 합당한 성품, 교회 생활, 부부 관계 등이 전제된다(엡 4:1-5:3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자녀의 신앙을 훈련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결국 부모의 변화된 삶이다. 탁월한 설교를 자랑하는 목회자의 자녀가 엇나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모두 부모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가르침과 삶의 심각한 괴리감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러므로 자녀의 신앙을 훈련하고 싶다면, 먼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가 돼라. 부모가 좋아하는 프로 스포츠팀을 자녀가 이어서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왜? 부모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신앙도 그렇게 전수된다.
둘째,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신앙은 강요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주시는 선물이다(엡 2:8-9).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만 그럴게 아니라 장성해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눅 18:7). 또한 주님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눅 11:13). 자녀의 건강, 학업, 진로, 결혼, 출산 등 여러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항상 부르짖는 부모는 그 무엇보다도 그들의 신앙을 위해 낙심하지 말고 간구해야 한다. 부모의 기도는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응답받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라. 다만 간절히 구하라.
셋째, 모든 일을 신앙 훈련 기회로 삼으라:
보통 우리가 신앙 훈련이라고 하면 가정 예배, 성경 읽기 등의 주요한 활동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신앙 훈련이 될 수 있다. 수요일 또는 주일에 아이를 교회 데리고 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일 오후에 독서실이나 학원이 아니라 교회 남아 중고등부에 참석하게 하는 것(우선순위 정하기), 일상의 대화 가운데 하나님과 복음을 연계하기, 부모의 선택과 결정을 통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기 등. 아이는 성장할수록 부모와 나누는 대화가 줄고 보내는 시간이 적어진다. 다른 교육도 조기에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신앙은 정말 어렸을 때부터 범사에 훈련하는 것이 좋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부모는 언젠가 자녀를 떠나고, 그들의 길을 신앙으로 이끄는 일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의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도하시는 것만큼 자녀에게 복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모든 상황을 신앙 훈련의 기회로 삼아라. 언제든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의지하도록 가르치라. 일상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당신을 가리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출 3:6). 그 하나님이 이제 모세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자녀의 하나님, 우리 손자⋅손녀의 하나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새 언약의 복을 이어받기를 원한다.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전수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단 하나의 소원이 아닐까? 그러므로 맡겨주신 귀한 자녀에게 부지런히 신앙을 가르치자. 먼저 본을 보이고,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모든 일을 기회로 삼아 자녀를 주께 인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