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리라

본문: 말라기 3:13-18

설교자: 조정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참 하나님의 백성이었을까? 옛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렇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이방인은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심판하기로 작정한 악인이고, 이스라엘은 아무리 하나님을 거역하고 방탕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이 축복하기로 선택한 의인이라고 믿었다(선민사상).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도 이런 심각한 거짓 사상에 빠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분 말씀을 거역하며 악하고 교만한 삶을 살아도 의인이라 영생의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이나 받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도덕적 청결함과 겸손이 무슨 소용이냐고 비웃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 말라기를 통하여 언약의 백성에게 하신 경고는 그들의 거짓 믿음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18절). 언약의 백성이 의인악인으로 나뉠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말이다(롬 9:6).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마음에” “할례”받은 “이면적 유대인(참) 유대인”이다(롬 2:28-9). 세례 요한은 선민사상에 찌든 유대인을 강하게 꾸짖으며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라고 외쳤다(눅 3:8). 오늘날 세례 요한이 기독교인에게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기독교인이 되게 하시리라’라고 호통쳤을 것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많은 봉사와 헌금을 한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라고 고백한다고 해서 참 하나님의 백성인 것도 아니다. 그러면 누가 진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인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 참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고하신 말씀을 청종하라.

1. 악인의 분별(13-15절)

① 첫 번째 악인의 특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에서 나타난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13절). 여호와께서 직접 언약 백성(너희)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지금껏 완악한 말 대적해 왔다고(민 21:5; 시 78:19, 현재완료-특성). 그들은 하나님께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그들은 14-5절에 나오는 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엔 이 완악한 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외적으로, 제물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고, 십일조와 봉헌물도 바쳤으며, 율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흠 있는 제물, 온전하지 않은 십일조와 봉헌물, 혼결과 이혼은 그들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사랑이 없다는 것을 확증했다. 두 번 반복되어 나오는 “대적하다”는 거칠고 심하게 원망하고 반역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 교만하게 대적한다(출 32:9). 악인은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워한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에게 분명한 중심을 요구하셨다: “겸손하게…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미 6:8),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라(신 10:12). 하나님은 새 언약의 백성에게도 동일한 중심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참 제자인 베드로의 중심을 계속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7). 사도 바울도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포했다(고전 16:22).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받은 악인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진실로 주 예수를 사랑하는가? 

② 두 번째 악인의 특징은 그들이 하나님께 했던 완악한 말 가운데 발견된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14절). 악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 섬기는 것을 멈추거나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기 죄를 뉘우치는 모습까지도 보일 수 있다: 슬프게 행하는 것. 그러나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이렇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런다고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것도 아닌데…’라는 불신과 원망이 자리 잡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못 박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한다고 단언했다(히 11: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악인의 불신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불신).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도 하나님은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으시는 무익한 존재라고 불평한다. 그래서 결국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다(신 10:12). 

바울은 참 성도에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권면했다(갈 6:9). 부활하신 예수님도 미지근하게 주님을 섬기는 완악한 교회에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라고 책망하시면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계 3:19, 21). 악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선을 행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포기한다.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게 뻔하다고 불평하며 겉으론 하나님을 섬기는 척해도 사실은 외식한다.

③ 세 번째 악인의 특징 또한 그들이 한 악한 말에서 드러난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15절). 악인은 하나님을 거역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이란 표현을 통하여 악인들이 이런 거짓 믿음을 공유하고 따르도록 서로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두 사람의 악한 생각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함께 품고 있는 신념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헛된 신념은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시 31:23), “악을 행하는 자를” “땅에서 끊으”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으며(시 34:16),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는 자에게분“”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시 78:41). 그런데 어떻게 이 명백한 진리를 거부하고 정반대의 거짓을 맹신할 수 있을까? 

악인이라서 그렇다. 주님은 당신을 믿지 않고 거역하는 유대인을 향해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라고 책망하시면서, 그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무섭게 정죄하셨다(요 8:39-44). 마귀는 첫 사람 아담부터 똑같이 거짓으로 미혹했다. ‘정녕 죽으리라’라고 경고하신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속였다(창 3:4). 심판이 없을 거란 말이다. 악인은 그들의 아비 마귀를 신뢰한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시험해도 형벌이 없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사도 베드로도 말세에 임박한 심판을 조롱하는 자들이 자기 정욕대로 살면서 이런 거짓 믿음을 보일 것이라고 경고했다(벧후 3:3-4):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이 불사르기 위하여 잠시 말씀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이 반드시 온다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다(벧후 3:7). 사도 요한은 진리가 그 속에 있는 자들(의인)의 특징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라고 했다(요일 1:8-10). 악인은 진실로 회개하는 법이 없다. 후회하고 뉘우치는 척할지 몰라도, 진심으로 자기 죄 때문에 애통해하지는 않는다. 죗값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그것을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잘 모른다. 다만 심판이 없다고 맹신하고 안심하며 계속 죄 가운데 방탕하게 살아간다.

2. 의인의 분별(16-17절)

악인은 ① 하나님을 대적하고 ② 전심으로 섬기는 것을 무익하게 여기며 ③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믿는다. 그러면 의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어떤 기준으로 의인을 분별하실까? 악인이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할 때, 의인은 이런 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도록 피차 격려했다(16절):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의인은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계신 것을 확실히 믿는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중심의 생각을 분명히 들으신다고 굳게 믿는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더 형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낙심이 되고 “거의 넘어질 뻔”하더라도(시 73:2),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익하다거나 그러니까 거역하며 살아도 문제없다는 마귀의 거짓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자분명히 들으신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붙잡기 위하여 투쟁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히 11:1). 사도 바울은 참 그리스도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에 관하여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후 4:16, 18).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다(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음으로 보는 자다. 의인은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분께 합당한 마음을 품는다. 하나님을 경외고 그분의 이름을 존중히 여긴다. 악인의 중심에 불신과 원망과 반항심이 가득했다면, 의인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떨며 즐거워하고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며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외식적인 종교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 껍데기만 남은 신앙생활을 견딜 수 없다. 마음에 할례받은 참 백성이라 그렇다. 그래서 자기 이름이 “여호와의 “기념책”에 기록되었다고 확신한다(에 6:1).

그리고 그 확신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1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천하 만민을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 뜻을 거스르거나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분이 하신 날에, 반드시 의인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아버지가 (사랑으로 순종하는) 아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하는 것처럼 반드시 복 주실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내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부르셨다(벧전 2:9). 그들에게 긍휼을 아낌없이 베푸셨다(벧전 2:10). 그들이 누구인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실로 그리스도를 보배로운 모퉁잇돌로 여기는 자다(삶의 중심축).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선포하는 자들이다. 

3. 적용

최근에 “잘잘법: 잘 믿고 잘 사는 법”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하나님의 구원론”을 보고 자기 구원에 의심이 생긴 신자를 상담한 적이 있다. 30년 가까이 신학을 연구한 교수는 구원은 결국 하나님과 장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로운 삶으로 영생을 사거나 불의한 삶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거짓 복음이다. 성경은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에 이른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그러면, ‘믿는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살든지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는 복음은 옳은가?

틀렸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8-29).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는 그 나라를 오직 은혜로 받는다. 우리는 언약에 불성실할 때가 많고 온전히 의로운 백성이 되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신실하시고 온전히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우리도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는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우습게 여겨도 되는가? 불신하고 원망해도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여전히 거룩하신 불이다. 모든 더럽고 완악한 것을 태우신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거듭난 자, 참 하나님의 백성, 진짜 그리스도인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긴다. 중심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사랑으로 채우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보이는 보상이나 심판이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린다. 당신은 어떻게 분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