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본문: 사무엘상 8장

설교자: 최종혁

 

삼상 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늙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에 대한 이 말씀은 사무엘상의 독자에게 불안감을 준다. 사무엘의 등장과 함께 언급되었던 엘리와 그의 아들들을 떠올리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었다(삼상 2:12).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을 뿐 아니라(삼상 2:17),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기까지 했고(삼상 2:22), 그 악행을 모든 백성들이 알 정도였다(삼상 2:23).

이런 엘리의 아들들과 대조되면서 등장했던 사람이 바로 사무엘이었다. 당시는 사사 시대로서 엘리의 아들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가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다(삼상 3:1). 하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을 불러 자신의 대언자로 세우시고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삼상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그 후로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또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신실하게 하나님과 백성들을 섬겼고, 이제 그도 나이가 들어 자신의 아들들을 후계자로 삼았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또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사사기를 보면 사사는 항상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다고 말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사무엘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문이 명백히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앞선 엘리와 아들들의 예나 이런 꺼림직한 부분이, 뭔가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갈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주고, 실제로 2-3절은 그 염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삼상 8:2–3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과 같지 않았다. 12장에서 보면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에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누구를 속이거나 압제하거나 뇌물을 받거나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백성들도 그 사실에 동의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삼상 12:3-4), 그의 아들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 사사(재판관)로서의 가장 기본이며 핵심인 자질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사무엘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엘리의 경우, 그가 아들들에게 한 말을 보면 그가 엄하게 해야할 부분에 있어 그렇게 하지 않은 모습이 보이지만, 사무엘의 경우는 특별히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성경의 예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경험을 봐도 그렇고, 자녀 양육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는 다르다. 공식이 있어서, 그렇게만 하면 항상 원하는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말씀에 따라 양육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수 밖에 없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는 자녀 양육에도 적용된다. 사무엘은 좋은 본이었지만, 아들들은 그 본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3절이 말하는 바이고, 여기까지가 본문의 배경이다. 이제 본격적인 사건이 진행된다.

삼상 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왔다. 이들은 분명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나왔다. 이스라엘이 현재 전환점에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사무엘이 늙었다. 사무엘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이제 나이가 들었고, 예전처럼 일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사무엘이 그렇다면 그를 대신해서 일할 사람을 세워야 한다. 사무엘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다. 사사가 왕위처럼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약간 꺼림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또 그렇게 못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명기 16:18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라고 율법도 있다. 이 말씀에 따라서 사사를 세웠다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사사로 세워진 사람들이 사무엘의 아들들이었냐 아니었냐는 아니었다. 사무엘을 찾아온 장로들도 그 부분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자질이었다. 그들은 사무엘과 같지 않았다. 엘리의 아들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른 백성들이 알았던 것처럼, 사무엘의 아들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이미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요구했다(5절). 왕정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음 세대 지도자를 세워야하는 상황에서 지금 당신이 세운 자들은 합당하지 않으니 좋은 지도자를 세워달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들의 의도가 아님이 곧 드러난다. 일단, 이에 대한 사무엘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삼상 8: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사무엘은 장로들의 제안을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과 아들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그럴까? 좀 부족하고 정직하지 않아도 자기 아들들을 다음 지도자로 세우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을까? 정직했던 사무엘의 성품을 고려하면 그런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기도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삼상 8:7–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하나님은 그들이 단순히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것이 아님을 아셨다. 그들이 더 영적이고 그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할 수 있는 왕을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아셨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리더였다. 그래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도 아니고, 사무엘 같은 사사도 아니고, “모든 나라와 같은 왕”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것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때부터,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렸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능력과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고, 그들과 친밀한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을 진정한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데 계속해서 실패했던 것이다. ‘실패’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오히려 ‘거부’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매일 베풀어 주신 만나를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신들을 인도한 신이라고 예배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애굽 카드를 꺼냈다는 점이다. 처음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이 했던 말을 들어보라.

출 14:11–12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누가 애굽에서 구원해 달라고 했냐는 것이다. 구원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구원해 놓고 이제 와서 여기서 죽게 한다고 이들은 원망했다. 먹을 것 때문에 원망할 때도 애굽이 언급됐다.

출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민 11:4–6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이들은 마치 애굽에서 풍족하게 먹으면서 만족한 삶을 잘 살고 있었는데, 굳이 하나님께서 거기서 자신들을 빼내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결정적인 것은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직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이다. 그들은 정탐꾼들을 말을 듣고 밤새 통곡하며 새로운 지휘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모의했다.

민 14:1–4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이들에게 애굽은 마치 잊지 못하는 옛애인과 같았다. 여전히 사랑하는데 함께 할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짜증을 내고 비교를 한다. 아마 우리가 모세나 하나님이었다면, 애굽이 그렇게 좋으면 그냥 다시 애굽가서 바로나 섬기면서 살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거하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은 그들에게는 마치 너무 어려운 일 같았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도전하며 다짐을 받았다.

수 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호수아의 이 도전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언약의 증거로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워두기도 했다(수 24:24-27). 하지만 여호수아와 그 세대가 세상을 떠나자 그 자손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본격적으로 우상 숭배를 시작했다.
삿 2: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삿 2:10–12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은 책망하기도 하시고 징계하기도 하시고 사사들을 통해 구원하기도 하셨지만, 그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자기 눈에 좋은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사사기의 뒷부분에 기록된 끔찍한 일들은 그 결과였다. 그들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을 계속해서 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길로 행한 참혹한 결과였다.

그리고 사무엘이 등장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권위가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지금 백성들은 다른 왕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왕을 세우는 것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성경은 이스라엘에 왕이 있게 될 것을 예언했고, 사사기에서는 왕이 필요하다는 언급도 있다. 신명기 17장 14절부터보면 이스라엘이 이런 왕에 대한 소원을 가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럴 때에 어떤 왕을 세워야하는지에 대한 규례도 주셨다. 왕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이들이 사무엘에게 했던 말을 다시 유심히 보라.

삼상 8: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나라와 같이”라는 표현이다. 이들은 단순히 왕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왕과 같은 왕을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셨고, 사무엘을 통해 이 사실을 경고하라고 하셨다.

삼상 8:9–17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0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다른 나라와 같은 왕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다시 종살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경고하신 것이다. 정말로 다시 애굽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유와 만족이 있었던 곳으로 애굽을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은 종이 되어서 살아야 하는 곳이 애굽이다. 하나님은 이 약속의 땅이 애굽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자유의 땅이 다시 노예 생활의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더 안좋은 소식도 있다.

삼상 8: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애굽에 있을 때에 고통 중에 신음하고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구원하셨지만, 이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지금 너희가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뉘우쳤을까? 그런 생각까지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다른 좋은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라고 했을까? 아니다.

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이들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고 싶다. 우리는 특별하고 싶지 않다. 다른 나라에는 왕이 있어서, 눈에 보이는 왕이 백성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하는데, 우린 그런 왕이 없다. 우리보다 그들이 더 좋아 보인다.

이들의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실 때야 말로 그들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바로 앞인 7장의 사건만 봐도 그렇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다른 우상을 모두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면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실 것이라고 말했다(삼상 7:3).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을 때,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셨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싸우지도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의 에벤에셀이라 칭했다(삼상 7:12).

그 돌이 아직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더 이상 그런 전쟁과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도 다른 나라처럼 피흘리고 싸우겠다고 한다. 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왜 그동안 이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선택하려고 해왔을까?

다른 이유가 없다. 이들에게 그것이 더 좋아 보였다. 애굽을 나온 이후로 이들은 계속해서 애굽을 더 좋은 곳으로 생각했다. 가나안에 들어 와서도 하나님보다 다른 신들이 더 좋아 보였다. 그 신들을 섬기며 사는 이방인들이 더 좋아 보였다. 그 삶이 더 좋아 보이니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삶에 방해가 되는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서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겨도 아무 상관 없다고 하셨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레 20: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구별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모든 민족과 같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상(우상이 줄 수 있는 것들)과 하나님(하나님이 줄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우상 쪽에 있었고, 따라서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나님을 포기하고 우상을 선택하는 쪽을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이 왕을 요구할 것에 대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절)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신명기 17장에서 말하는 왕을 원했다면 사무엘도 그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신명기 17장이 말하는 왕이 어떤 왕인지 보라.

신 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17장에서 말하는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다스리는 왕이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권위로 다스리는 왕이다. 이 왕은 애굽에 내려가지 않는다. 병마를 많이 두지 않는다. 아내도 많이 두지 않고, 은금을 쌓지도 않는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왕은 국가의 안보는 생각하지도 않는 왕이다. 병력을 기르지도 않고, 정략 결혼으로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고, 많은 재물로 전쟁을 억제하지도 않는다면, 나라를 어떻게 지키겠는가. 하는 일은 평생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그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는 왕이라니, 이들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런 왕을 세우라고 하셨을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고, 그것으로 백성들은 평안하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승리와 평화는 다른 민족들과 다를 것이었고,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런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니, 최소한 당신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세워주십시요라고 요구한 것이었으면 아마 사무엘도 기쁜 마음으로 그런 왕을 하나님께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을 세워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기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였다. 그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다른 민족과 같이 되고 싶었다. 거기에 그들의 기쁨과 만족이 있었다. 광야에서 계속해서 “누가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해 달라고 했느냐”고 했던 것처럼, 지금 하나님께 “누가 우리 왕이 되어 달라고 했느냐”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탄이 최초의 사람들을 속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고 하나님을 떠나면 참된 자유와 행복이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창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다른 나라들이 그래 보였다. 다른 나라들을 보니 왕이 진두지휘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것 하나가 좋아 보이자 사무엘이 말한 여러가지 어려움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도 왕이 있어야한다는 욕구만 남았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은 오히려 족쇄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왕을 요구했다.

그렇게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주라고 다시 한번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삼상 8:21–22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이후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 세워진 왕은 사실 상 하나의 심판이었다. 그후의 왕들도 백성들을 바람과는 달리 그들의 필요를 모두 채우지 못했다. 다른 민족처럼 되어 봐야, 같은 결말에 이를 뿐인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해 보자.

먼저, 이들이 원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이들이 원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통치다.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상관 없었다. 다만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절대 원하지 않았다.

이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통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측면을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이 왕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왕이셨다. 예수님께서 폭풍과 성난 물결을 잠잠하게 하셨을 때,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의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는 바람과 물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놀랄 일인가! 이미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더한 것들도 봤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빛에게 존재할 것을 명하셨을 때 빛이 있었다.

시 33:6–12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그 자리를 절대로 다른 무엇에게 양보하지 않으신다. 요한계시록은 왕의 대관식이라 할 수 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에게 승리하시고,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다스리실 것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만국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 계신 곳에 들어가 예배하게 될 것이다. 모든 죄의 저주가 사라진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계 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나님은 왕이시다.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만약 통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힘들 때 위로해 주고, 시험 문제 몰라서 찍으면 맞게 해주거나 공부한데서만 문제가 나오게 해주는 하나님, 절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내가 필요할 때만 내 옆에 계시는 하나님, 어쩌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도 아니고, 실존하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우리가 내 입맛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것을 생각해 보자. 이들은 무엇을 원했는가? 이들은 애굽을 원했고, 우상을 원했다. 결국 세상과 같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세상과 구별하시려고 구원해 내셨는데, 이들은 그런 하나님의 구원을 싫어 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 했다.

어쩌면, 이들의 이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벧전 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는데, 흑암의 권세가 그립다. 거기가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굳이 왜 나를 어두운 데서 불러 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두운 데 두었다가 나중에 세상 떠나기 직전에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면 되는거 아닌가 싶다. 괜히 일찍 구원 받아서 재밌는거는 하나도 못해본게 억울하다.

그래서 계속 비교하고 불평한다. 애굽에 있었을 때 이렇게 좋았는데 하면서 지금의 삶을 비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나라처럼 왕이 있어야겠다고 어리석은 요구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세상과 같고 싶어 한다. 세상이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옛애인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세상과 비슷해 보이는 것은 착시가 아니다. 세상과 같고 싶어 하니, 세상과 같아지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구원 받은 자라면, 우리의 이런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를 구별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나님을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죄를 의로우신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내려 오셨다. 세상과 구별됨이 우리 구원의 목적이다.

그런 우리가 구별되는 것이 싫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굽에서 구원했더니 애굽이 더 좋다고 하는 백성들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죄에서 구원했더니 죄가 더 좋다고 하는 우리를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좋아 보이는 것은 세상에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로 좋은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또 다른 왕을 요구하지 말자.

끝으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생각하자. 하나님은 왕을 요구하는 이들이 원하는대로 왕을 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복이 아니라 심판이었다. 때로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대로 주셔서, 혹은 내버려 두셔서 심판하신다. 사실 그 심판은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말 무서운 심판이다. 내가 구한 것을 얻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셨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응답은 때로 심판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왕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시다. 그 왕은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그런 하나님의 다스림이 싫은 사람처럼 살지 말자. 그 다스림에 감사하며 순종으로 우리 왕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백성들이 되자.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와 같이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자.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그 길로 가야 한다. 딴 길로 가지 말자. 대신 세상과 다른 길로 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