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본문: 잠언 4장 23절 외
설교자: 조정의
마음의 문제는 반드시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고(잠 4:23), 마음을 치료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빌 4:7), 하나님은 마음의 문제를 말씀으로 예리하게 진단 및 처방하신다(히 4:12).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생각, 감정, 의지를 품는 것도 아니다. 1)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이고, 2) 도덕적인 회개를 일으키는 일이며, 3) 복음의 지혜와 능력이 상처 입고 뒤틀린 마음속에서 역사하도록 간절히 구하는 일이다. 그러면, 불평하는 마음을 어떻게 말씀으로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을까?
1. 불평하는 마음 진단
불평을 들으면 불쾌하다. 왜 그럴까? 불평이 뿌리내린 마음에 적어도 세 가지 독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1) 거짓, 2) 교만, 3) 불신. 성경의 대표적인 불평꾼들인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들은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자(민 21:4), 이렇게 불평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할 순 있다. 문제는 그 상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회복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어 거짓과 교만과 불신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앞서 마음의 문제가 도덕적 회개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거짓, 교만, 불신과 같은 죄가 불평하는 마음에 들어차 있기 때문에 그렇다.
1) 거짓: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목적은 그들을 애굽이 아니라 광야에서 죽게 하려는 것이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신실하게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인도하셨다(신 1:31-3). 그들이 폄훼한 “이 하찮은 음식” 만나가 매일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실을 부정하고 거짓을 말했다.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마음이 분주”해진 마르다의 불평 속에서도 거짓이 발견된다(눅 10:40).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눅 10:40).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불평이 생겼을 때, 마르다는 동생이 자기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거짓, 그것을 예수님은 돌아볼 생각도 없다는 거짓을 여과 없이 뱉었다.
2) 교만: 애당초 이스라엘 백성은 왜 광야에서 방황 중이었나? 그들의 죄 때문이다. 사실상 그들은 지금 징계 중이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땅에 들어가면 되었는데, 그들은 그때도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하나님께 반역했다. 그들은 불평이 아니라 회개해야 했다.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그들이 배워야 했던 것은 다시금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를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 겸손해지기는커녕 교만하게 불평을 터뜨린 것이다. 우리는 이 교만의 끝을 요나의 불평 속에서 발견한다(욘 4장).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에 불평했다. 그리고 그 성이 망할 것을 바라며 초막을 짓고 지켜본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예비하여 요나가 뜨거운 태양을 피하도록 하셨다가 또 벌레를 예비하여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는데, 요나는 해가 머리에 직접 쪼이자 스스로 죽기를 구하면서 불평했다. 하나님이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물으시자,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대답했다(욘 4:9). 이 얼마나 교만한 마음인가? 우리의 불평은 이런 추악한 교만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나님보다 내가 옳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범사에 인정하기보다 항상 내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
3) 불신: 거짓과 교만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거짓을 미워하시고(잠 12:22),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교만한 자는 반드시 징계하신다(약 4:6). 불평이 만드는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를 해친다는 것인데, 바로 신뢰의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발견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고 싶어 하는 악한 신이다. 하찮은 음식이나 주는. 마르다의 불평 속에서 예수님은 사랑과 자비가 없는 분이다. 힘들게 봉사하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요나의 불평 속에서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침략한 원수 국가를 용서해 주는. 불평하는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자라지 않는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한다. 또한 복음이 우리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롬 1:17). 불평은 불신을 일으켜 복음을 역행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심각한 죄다.
2. 불평하는 마음 처방
길이 불편할 때, 마음이 분주할 때, 머리에 뜨거운 태양이 쪼일 때, 마음이 상하고 지치고 약해지는 것은 연약한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취약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마음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아니라 교만을 마음에 품는다. 현실을 뛰어넘는 믿음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심히 흔들리는 마음에 불신이 가득 찬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복음이 모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한다. 어떻게?
1)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롬 1:17). 자녀가 부모에게 실망할 때가 있을까? 친구가 친구에게 상처받을 때가 있을까? 있다. 그럼에도 부모와 자녀의 신뢰 관계, 친구 사이 우정이 어떻게 지켜지는가?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부모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실망이 제거되고 신뢰가 새싹을 틔운다. 지금까지 경험한 친구의 충절과 깊은 우정 앞에서 상처가 치유되고 굳은 믿음이 돋아난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복음이 그렇게 해소한다. 눈앞에 있는 문제나 상황 때문에 불평이 생길 때, 마음에 불신이 스며든다. 만성적으로 불신이 수시로 생길 수 있고, 급성으로 불신이 완전히 나를 사로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복음은 모든 불신을 몰아낸다. 복음은 불평하는 우리 마음에 이렇게 소리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우리가 불평할 때, 우리는 불평이 나올만한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다. 그때, 복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묻는다. 하나뿐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실을 바탕으로 상황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이라면 반드시 이것을 통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불신을 몰아내고 우리 마음을 차지한다(롬 8:28). 마음의 문제를 고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죄를 회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불신의 죄를 뉘우치게 한다.
2) 복음은 교만을 몰아내고 겸손을 들인다(골 3:13): 복음 앞에서 우리는 왜 겸손할 수밖에 없는가? 복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전능자의 실체와 그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부정한 우리의 본모습을 엑스레이처럼 투명하게 비추어 보여준다. 바울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고후 4:4). 그런데 어떻게 믿는 우리는 복음의 광채를 보았는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는니라”(고후 4:6). 하나님이 복음의 광채를 비추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혼미한 마음을 가진 채 영원한 멸망에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기 판단이 절대적인 것처럼 여기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불평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음의 광채로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춰주셨다면,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면, 우리는 혼미한 마음, 불평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마음으로 항상 감사하고 겸손히 하나님 하시는 일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다. 복음이 우리에게 ‘네가 불평하는 것이 어찌 옳으냐?’라고 물으면 우리는 요나처럼 ‘죽기까지 내가 옳으니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옳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이제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품겠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날마다 수시로 복음을 전하라. 높아진 마음을 낮추라. 특별히 사람에게 불만이 생길 때, 복음이 요구하는 바를 기억하라: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3) 복음은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좇게 한다: 복음으로 낮아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상황과 환경,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해석할 때 신중을 기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예리하게 판단한다. 마음에 들어찬 불평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도록, 감정이 분별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전부를 하나님께서 이루신 의와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모든 사실에 맞추도록 변화시킨다.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불평은 사실상 ‘복음의 진리’를 거치지 않고 그냥 튀어나오는 거짓과 불의의 열매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말했다(시 141:3). 이것은 단순히 입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이 아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왜곡된 마음을 고쳐 달라는 간구다. 우리에겐 복음의 파수꾼이 있다. 그 파수꾼이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불평의 마음을 붙잡아 세운다. 그 마음이 복음의 진실 앞에서 올바른 마음인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모든 거짓과 불의를 제거한 후, 선하고 온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세워주는 말이 나오도록, 복음에 합당한 입술의 열매를 내도록 도와준다. 복음은 우리 마음에 진리, 겸손, 믿음을 채워 불평이 아니라 감사, 신뢰, 용서와 사랑의 말을 내게 한다. 복음으로 불평하는 마음을 지켜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