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불경건이라는 죄의 습관 끊기
본문: 여러 본문
설교자: 조정의
“경건”은 종교 용어처럼 보이지만, 사전적 의미는 그렇지 않다. “굳세고 튼튼하다”,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의 뜻이 있는 경건은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매우 존경스러울 만큼 독실한 것을 뜻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행위와 바른 믿음”을 가리킨다(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경건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그분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합당한 삶을 사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경건하다’라는 말의 참 의미다. 영어 성경은 경건을 godliness로 번역하는데, 하나님을 뜻하는 god에 접미사 ly(형) 그리고 ness(명)가 붙어서, 투박하게 직역하면 ‘하나님스러워짐’, 성경의 표현을 따르면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 곧 경건이라고 할 수 있다(롬 8:29). 그러니까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게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외면까지 실제로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참 경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불경(건)은 무엇이며, 왜 경건하지 않은 것이 끊어야 할 죄가 되는 것일까?
1. 불경건이 죄인 이유
① 성경은 일관성 있게 경건하지 않은 자를 거듭나지 않은 죄인이라고 말한다. 유다서 1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대상을 이렇게 특징지어 말하는데,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1장 9절에도 율법의 목적은 죄인을 정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면서, “경건하지 아니한 자”가 그 대상이라고 했고, 베드로후 3장 7절에서는 하늘과 땅이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었다고 말하면서,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고 했다. 불경건은 확실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의 특징이다. 그들은 가족과 직장, 나라에 참으로 독실한 구성원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에 관해서는 그분을 찾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깨닫거나 따르기를 원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롬 3:10-18).
② 하나님은 우리를 불경건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불경건을 허용하는 것은 곧 구원의 은혜를 배반하는 죄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말한다(롬 5:6; 4:5). 우리는 경건한 삶으로 구원을 쟁취한 것이 아니다. 불경건했지만, 은혜로 값없이(믿음으로) 받은 것이다. 그런데,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불경건한 자를 경건한 자라고 부르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건하게 바꾸신다: “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1-14). 구원의 방향성을 주목하라: 불경건에서 경건함으로. 그래서 반대 방향인 불경건의 추구는 구원의 은혜를 거스르고 배반하는 심각한 죄다.
2. 불경건에 얽매는 과정
사실 불경건이란 죄는 너무 광범위하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 경건이라면, 반대로 하나님을 (도덕적인 면에서) 닮지 않은 모든 것이 큰 의미에서 불경건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고 미워하시는 일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좁게 설명해도,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의지,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 등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여전히 범위가 넓다. 불만족이나 불친절처럼 특정짓지 않으면 그 죄가 어떻게 우리를 얽매는 지, 어떻게 그 죄를 끊어낼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경건을 추구하라고 명령하는지 먼저 살펴보고, 반대로 그 명령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불경건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거꾸로 추적해 보려고 한다. 먼저, 성경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명령한다(딤전 4:7). 또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고 명령한다(딤전 6:11).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라고 명령하면서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더하라”라고 했다(벧후 1:6). 구원의 목적인 경건을 어떻게 추구하라고 했는가? ‘버리라’, ‘피하라’, ‘연단하라’, ‘싸우라’, ‘더욱 힘써 굳게 하라.’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가 경건을 이루기 위하여 투쟁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적당히 죄와 싸우는 것을 경계하고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히 12:4). 그래서 경건은 연습이나 훈련이 아니라, 목숨 건 전투다. 우린 매일 경건에 이르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면 불경건은 어떻게 우리 삶을 얽매는가? 주께서 책망하신 라오디게아 교회는 경건을 추구하는 일에 있어서 “미지근”한 행위를 보였다(계 3:16). 단지 행위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독실함의 문제였다. 주님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라고 꾸짖으셨다(19절). 그들은 경건에 이르도록 열심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님은 그들의 영적 실태를 제대로 진단하셨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절). 죄는 이렇게 경건에 이르는 전쟁을 치르는 우리를 나태하고 게으르게 만든다. 치열한 삶이 아니라 미지근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속인다. 그러면서 부요한 구원의 은혜를 풍족하게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실상은 불경건을 삶에 허용함으로 하나님 은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데도 그것을 못 보는 것이다.
경건의 전쟁은 마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른 전쟁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모든 적을 점령할 수 있었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했지만, 여러 핑계를 대며 불의한 자들을 남겨두었고, 쫓아내지 않았다. 결국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평생 하나님 백성의 가시와 올무가 되었다(삿 2:2-3). 우리가 허용하는 모든 불경건도 결국 우리를 찌르고 넘어뜨리는 원수가 될 것이다.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다. ‘죄를 죽이고 또 죽이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성경도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그럼 어떻게 죽여야 할까?
3. 불경건이란 죄의 습관 끊기
불경건을 삶에서 쫓아내고 경건을 추구하는 치열한 삶의 비결을 성경은 이렇게 밝힌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먼저, 오해하지 말라. 이 말씀은 수동주의자가 곡해하는 것과 달리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묘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알아서 나를 살게 하신다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말하지만,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여전히 나다. 그러나 삶의 목적과 동력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육신의 욕구대로 살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원하고 기뻐하는 대로 사는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다. 우린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아닌가!(롬 14:8).
가령 당신은 어떤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거나, 어떤 상황이 좀처럼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정말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대상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내버려두라고 불경건의 죄는 당신을 미혹한다. 육신이 원하는 욕심대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당신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래서 이제는 내 육신의 욕심대로 하지 않겠다’라고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원하고 기뻐하시든지 그것을 듣고 복종해야 한다(엡 5:10). 당신은 종종 경건에 이르는 싸움에서 패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패배는 전쟁 포기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지원을 구하는 기도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의 의미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인가? 베드로후서 1장 3-4절은 이렇게 답한다: “그(그리스도)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정욕대로 살지 않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 경건에 이르게 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패배하더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경건에 이르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유다. 죄를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 이유다.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골 1:22-23).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라!
1) 불만족, 예수님이 그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분이시거나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으로 만족하지 않는 죄. 2) 불친절, 예수님이 그만큼 우리에게 자비롭지 않으시거나, 우리가 예수님의 자비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는 죄. 3) 불경건, 예수님이 우리를 경건에 이르게 할 소원과 능력이 없으시거나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을 불신하고 경건에 이르는 열심을 내지 않는 죄. 죄와 끝까지 싸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