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라

본문: 말라기 2장 17절~3장 5절

설교자: 조정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 여러 말로 그들의 불성실함을 경고하셨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까?(① 의로운 제물을 바치라 ② 맡겨진 역할을 다하라 ③ 서로를 진실로 대하라).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다시 신실한 백성이 되겠다고 고백했을까? 아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17절). 

그들은 말로 여호와를 괴롭혔다(사 43:24): “악을 행하는 사람마다 여호와께서 좋게 보시고 그분께서 기뻐하신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냐?”(우리말 성경). 그들은 아삽(73편), 하박국(합 1:13), 욥(욥 21:7-25)과 같이 불의한 백성을 포함한 모든 악인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달라고 겸손히 간청했던 것이 아니다(눅 18:5). 그들의 은 악했다. 불신이 가득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악을 행하는 모든 자를 미워하시며 정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지만(시 11:7; 33:5; 129:4), 그들은 그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오히려 하나님 눈에는 악인이 좋게 보이고 그들을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하다고 비방했다(3:14-15). 그들은 마치 요나와 같았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셨을 때, 요나는 하나님이 그럴 줄 알았다며 “매우 싫어하고 성”냈다(욘 4:1). 자신에게 기적적인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땐, 그렇지 않았으면서(욘 2:8-9), 그가 미워하는 이들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악인을 좋게 보시고 기뻐하신다고 화를 낸 것이다. 그는 자기 생명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이렇게 불공평하게 하실 거면 도로 내 생명을 가져가라’라고 분노하며 발악했다(욘 4:3).

이런 배은망덕하고 교만한 백성의 끊임없는 비방과 모욕의 말들에 하나님은 심히 놀라운 은혜의 약속으로 반응하신다. 우리는 그 약속이 이미 성취된 시대를 사는 새 언약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말라기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약속을 받은 백성인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신실한 삶을 결단하자.

1. 약속: 내 사자를 보내고 주가 임하시리라(3:1)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은 정말로 놀랍게도 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만나러 오시겠다는 것이다. ② 그리고 그 전에 하나님의 앞 길을 준비할 “사자”를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1절). ② 먼저, 하나님은 당신의 전령(“내 사자”)을 보내어 당신 앞에서 길을 준비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보통 왕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왕궁에 들어갈 때, 그 행차하는 길을 미리 준비하고 불필요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신하가 있었다. 선지자 이사야도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실 사자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했다(사 40:3-5):

3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마가는 이사야가 예언한 “사자”가 누구인지 확신했다:

2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 1:2-5)

세례 요한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 사자”였다. 그는 백성들이 회개하여 그들의 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을 했다.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죄에서 돌이키도록 했다. 예수님도 말라기가 예언한 사자가 요한이라고 확증하셨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요한)에 대한 말씀이니라(마 11:10).

① 말라기가 예언한 “내 사자”가 세례 요한이었다면, 그 이후에 말씀하신 “”, “언약의 사자”는 누구인가? 먼저, (아도나이)는 정관사와 함께 사용될 때, 항상 하나님을 가리킨다(시 110:1).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통치하러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말라기는 님이 “” “언약의 사자”라고도 말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는 대부분 사람인데,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신 분, 그리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러 오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새 언약의 중보자”, 히 8:6; 9:15; 참고: 눅 22:20).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원수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육신적)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메시아를 간절히 구하고 사모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더 위대한 일을 이루러 오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에 신실한 백성이 되도록 회복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이들을 심판하시는 일이다.

2. 회복: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리라(3:2-4)

먼저, 말라기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 그분 앞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2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신실함, 온전한 의로움을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을까? 혹 그분이 통치하러 임하시는 것을 막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든 사람이 심판받을 죄인이고(롬 3:23), 그 심판을 막거나 늦추거나 피하거나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그런데 2-4절까지 주께서 하실 일을 보면 심판의 메시지처럼 들리지 않는다: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2절).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3절). 연단(x3), 표백, 깨끗하게 (x2)…심판이 아니라 회복의 메시지다. 물론, 주님께서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여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실 것이다(슥 6:12-3).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자기 백성을 언약의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구원),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한 백성으로 회복하시는 일을 하실 것이다(말 4:5-6; 벧후 3:10). 

정련의 이미지는 이 섞인 광물을 뜨거운 불로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물질만 남기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마음을 연단”하시고(잠 17:3), 자기 백성을 연단하실 것이라고 말한다(렘 9:7; 슥 13:9). 신약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불 시험을 통하여 사랑하는 백성을 연단하시고(벧전 4:12), 신자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 있도록 귀하게 연단될 것이라고 말한다(벧전 1:7). 또 다른 이미지는 표백(빨래)인데, 옷에서 더러운 때와 오물을 벗겨내고 하얗고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안에서부터 근본적으로 깨끗하게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5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5-8)

바로 이 일을 그리스도께서 이루러 이 땅에 오셨다. 성전의 다스리는 자리에 앉으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에 오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한은 예수님 앞서 보냄을 받아 물로 세례를 베풀고 사람들을 회개하는 길로 이끌어 그 뒤에 오실 그리스도께 인도했다면, 그리스도는 성령로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고 정결하게 하셨다(눅 3:16).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먼저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연단하신다고 했다(3절). 그래서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여호와께 바칠 것이고,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여호와께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4절). 그리스도는 친히 십자가의 연단(고난)을 받아 신실하고 온전한 대제사장(레위 자손)이 되셨고(히 2:17-8; 5:8-9),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화목하게 하는 제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공의로운 제물이 되셨다(요일 4:10).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봉헌물여호와께 기쁨이 되었다. 옛날 모세, 다윗, 솔로몬, 요시야 등 백성이 진정으로 예배드렸던 고대의 일시적이었지만 신실했던 제사가 온전히 회복된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통하여 그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물로 아버지께 하나님께 바치신다(요 2:21; 롬 12:1-2).

말라기 시대 하나님의 백성보다 지금 우리가 더 나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가? 우리가 더 자기 역할에 충성하는가? 배우자와 성도에게 진실한가?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께 신실한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는가? 말라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공의로운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셨다.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허물을 깨끗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봉헌물이 되도록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신다(롬 8:28). 우리에게 그냥 허락된 환경, 사람, 상황, 사건은 없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이루시는 선은 우리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롬 8:29),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롬 12:1). 

3. 심판: 신속하게 심판하러 오리라(3:5)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죄를 행하며 살아가는 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답변하신다(5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먼저, 여기 언급된 대표적인 죄는 십계명과 적절히 연결되며 그래서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점치는 자)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죄(나머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죄라고 보셨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이런 죄가 하나의 습관이나 성향으로 자리잡은 죄인을 대상으로 말씀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말라기를 통하여 심판의 경고를 누구에게 하셨는지 주목하라: “너희에게.” 에돔과 같은 이스라엘의 원수 민족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자기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유대인 이방인 가릴 것 없이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 반드시 찾아내 그를 마주할 것이며(임할 것), 그 일을 속히(신속하게) 행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단번에 얻는 영원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6). 하나님의 징계와 연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생자”다(히 12:8).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든지, 얼마나 많은 헌금과 봉사를 바쳤든지, 얼마나 많이 성경을 읽고 또 성경 교리를 잘 알고 있든지 상관없다. 딱딱한 마음과 뻣뻣한 목을 가지고 교만하게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의 연단과 거룩하게 하심의 열매가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죄인은 교회는 다녔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은 사람, 배우자를 학대하고, 성도를 억울하게 하는 등 불법을 행하는 불의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날에 이렇게 말씀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골 1:21-23)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을 굳게 세우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한 화목을 얻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시기 위하여 연단하신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역사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간구하신다(롬 8:26).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하신 일을 잊지 말자. 날마다 믿음에 거하라. 우리가 들은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라. 복음의 소망 외에 다른 것에 흔들리지 말라. 거룩함을 입은 백성은 거룩함을 따른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