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베뢰아 사람의 설교 듣는 법

본문: 사도행전 17:10-12

설교자: 조정의

마게도니야의 한 성읍인 베뢰아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데살로니가에 이어서 방문한 선교지였다. 데살로니가에서 삼주간(“세 안식일”, 행 17:2)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때(17:2-3),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17:4). 그러나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했고, 그래서 밤에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피신시켰는데, 바울은 “자기의 관례대로” 베뢰아 회당에 들어가 강해 설교를 시작한 것이다(17:10). 그리고 여기서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평가가 나온다. 그들이 어떻게 말씀을 받았는지.

한때, 삶의 모토가 ‘한 베뢰아 사람이 되자’였다. 본문이 그들의 어떤 점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그것이 내 삶에서 항상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진실로 이것은 설교를 듣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반드시 갖춰야 할 태도이다. 나아가 설교하는 모든 이들이 듣는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추구해야 할 설교 목표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11-12절). 베뢰아 사람들은 “더 너그러”웠다고 칭찬받았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어서”(우리말 성경), “고상한 사람들이어서”(새번역). “신사적이어서”(개역 한글).

1. 간절히 받으라

이것은 베뢰아인의 성품이나 학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직 그들의 말씀 듣는 태도와 관련된 칭찬이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그것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 말씀 듣는 자세, 너그럽고 고상하며 교양 있는 태도였다. 베뢰아 사람들은 기꺼이 들으려 했고, 무엇이든 유익한 것을 얻으려는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간절히 원했다. 왜? 바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으로(“경건한 헬라인”) 이미 성경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사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다시 확인하는데, 이는 그들이 처음 말씀을 들었을 때, 의심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분명히 받아들였고 이를 거듭 확증한 것이었다.

그전에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그들보다 더 말씀 듣는 마음 자세가 좋았다. 그만큼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그들 가운데서 더 많이 역사했다(“믿는 사람이 많고”, 12절). 이 사실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청중을 감동시킬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간절히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구해야 한다(고전 2:4). 듣는 사람은 설교자가 누구인지, 얼마나 학식이 뛰어난지, 표현이나 예화가 탁월한지,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전달하는지 등으로 말씀을 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요구되는 합당한 태도를 가지고 말씀을 간절히 받아야 한다. 설교를 사람의 말로 전하거나 받는 자는 역사하는 힘이 적고,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거나 받는 자는 역사하는 힘이 많을 것이다.

2. 철저히 따지라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말씀 듣는 태도가 좋았던 것은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행동을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났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이방인의 사도이며(갈 2:8)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고후 3:6). 그러나 바울이 얼마나 대단한 하나님의 일꾼인지 알았다고 해도, 결국은 절대적인 권위가 담긴 하나님 말씀 즉 성경으로 바울이 전한 말을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설교자의 말이 정말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날마다”)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 또한 말씀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 설교자는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안 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설교한 방식을 보면 그는 “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증언”했다(2-3절). 성경에서 찾은 주제를 세우고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 강의한 게 아니다. 본문을 읽고 나서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나 원리 하나로 감화를 일으킨 것도 아니다. 성경의 본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성경대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했다(3절). 이것은 예수님의 설교 방식이기도 하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 둘에게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눅 24:27). 이후에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라고 말씀하시고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눅 24:44-5). 이는 또한 사도들의 설교 방식이기도 했다. 베드로의 설교(행 2, 3, 10장), 스데반의 설교(행 7장), 바울의 설교(13장)에서 모두 발견되는 특징은 그들이 성경의 본래 의미를 풀어 그리스도를 증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 설교를 가르친 제리 바인스와 짐 섀딕스는 <설교의 능력>이라는 책에서 (강해)설교를 “성령이 의도하는 의미와 동반하는 능력이 현대 청중들의 삶에 부여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의 본문을 열어 보여 주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41p). 설교자는 반드시 본문을 열어 보여 주는 과정을 통하여 듣는 사람이 이것이 그러한가 직접 성경을 상고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설교를 듣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설교자의 말과 지혜, 설득력 있는 호소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거듭 확증하며 들어야 한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설교 링크를 보내면서 ‘이 설교 어떠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듣고 난 후에 ‘이건 설교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감동적이었고 열정적이었고 교훈적이었지만, 단 하나의 성경 구절도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씀을 듣는 자는 항상 궁금해해야 한다. 알고 싶어해야 한다. “설교자가 한 말이 정말 그러한가?” “성경 어디에 설교자가 말한 내용이 나오는가?” 설교자가 성경의 뜻을 풀어 그렇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을 때, 굉장히 아쉬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신 말씀, 그 순전한 말씀을 있는 그대로 맛보기를 원해야 한다.

3. 영생을 맛보라

설교의 목적은 결국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무엇을 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12절). 설교의 목적이 단지 성경 본문의 의미를 더 밝히 아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 바로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가 되어야 한다(Christ-centered Preaching). 그리고 모든 설교 듣기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기 위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듣기가 되어야 한다(벧후 3:18).

예수님은 성경을 헛되이 연구하는 종교인들을 꾸짖으시면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 5:39). 또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그래서 설교란 결국 영생의 주님과 사귐을 누리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제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성경 읽기나 설교 듣기라는 너무나 평범한 수단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인 앎과 사귐을 맛보게 하신다. 어쩌다가 간혹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성경을 열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를 만나주시고 말씀해 주신다.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119:171). 주의 말씀은 반드시 찬양을 일으킨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먼 타지에서 외국어로 더 좋은 설교자가 되기 위하여 집중 훈련을 받은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13년 가까이 베뢰아 사람처럼 설교를 듣고, 사도들처럼, 예수님처럼 설교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어쩌면 성경을 한 절 한 절 설명하는 강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어려운 성경 교리를 논증하는 발표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헌신했던 것 그리고 앞으로 변함없이 헌신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성령께서 의도하신 본래 뜻대로 풀어서 보여 주는 과정이 충실하게 드러나는,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그리고 결과적으로 듣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더 알고 믿고 사랑하게 하는, 그런 말씀 봉사로 교회를 먹이고 돌보고 섬기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 4:11). 베뢰아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누가 들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이 하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말하는 사람도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처럼 전해야 하고, 듣는 사람도 설교를 하나님 말씀처럼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성경을, 있는 그대로 풀어 설명하고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나타내 보이시도록 간절히 구해야 한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라고 중보를 요청한 바울처럼 설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한다(엡 6:19). 듣는 이들의 마음이 길 가, 흙이 얇은 돌밭, 가시 떨기 같은 밭이 아니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좋은 마음 밭이 되게 해달라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마 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