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본문: 잠언 4장 23절 외

설교자: 조정의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는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 우울증, 불면증, 암” 등 다양한 질병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일차적으로 몸이 아니라 마음에 해를 끼친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해를 입으면 마음에 일어난 문제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증상을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 그 증상의 근본 원인인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한다. 가장 지혜로웠던 왕 솔로몬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난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혹은 어디일까?(심장? 두뇌?) 마음은 “모든 생각과 인격 전체”를 가리킨다(두에인 개릿, NAC, 106p). 컴퓨터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있다면, 사람에겐 마음과 몸이 있다. 하드웨어가 제 기능을 하려면 소프트웨어가 안정되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제 기능을 한다. 소프트웨어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하드웨어가 먹통이 되는 것처럼, 마음이 병든 사람은 점점 몸의 생명력까지 잃게 된다. 솔로몬은 그래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명령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의 근원인 마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손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하셨다(마 15:18).

우리가 “더욱” 지켜야 할 것은 마음이고, 마음에서 모든 행위가 시작된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보통 마음을 다루지 않고 행동만 교정하려고 할 때가 많다. 행동의 교정이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을 직접 다루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마음의 건강을 챙기려고 전문가들을 찾는다. 하지만 엄청난 권위와 인기를 누리는 마음 전문가들이 마음을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먼저, 그들은 마음을 창조하신 분을 부정하고 그분이 주신 마음에 관한 설명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물을 사용하는데, 때로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몸을 이완시키고 처지게 만드는 것으로는 마음의 병을 본질적으로 고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또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그들 모두(모든 인생)마음을 지으시며”(시 33:15).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예리하게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히 4:12). 요컨대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는 데 필요한 최고의 의사와 치료 도구가 있다. 

앞으로 일곱 가지 병든 마음을 성경으로 예리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밟으려 한다(BHC: Biblical Heart Care): ① 불평하는 마음, ② 염려하는 마음, ③ 분노하는 마음, ④ 무기력한 마음, ⑤ 우울한 마음, ⑥ 자책하는 마음, ⑦ 낙심한 마음(공통적 문제).

1. 마음을 지키시는 분을 만나라(인격적)

교회에서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마음의 문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성경으로 처방을 내릴 때, ‘성경 읽기’와 ‘기도’가 마음을 고치는 주요 치료법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마음은 여전히 괴로운데, 거기에 성경 읽기와 기도라는 과제가 얹힌 것처럼 부담과 죄책이 가중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다. 기도할 힘이 생기지 않고, 말씀을 읽고 싶은 마음이 거의 들지 않는데, 어떻게 이것으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 걸까?

엘리야는 목숨에 위협을 받고 심각한 우울감에 빠졌다. 욥도 재산, 가족, 건강을 모두 잃고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불평, 염려, 분노, 무기력함, 우울감, 자책, 낙심 등이 이들에게 모두 발견되었다. 특별히 욥은 성경에 해박한 친구들의 길고 긴 상담을 받았지만,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의 고침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들을 각각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고 그 마음을 회복시켜 주셨을 때였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으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결국, 우리가 마음을 더욱 지키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기도에 힘쓰는 이유는 단지 그 행위로 마음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 마음을 지으시고 지켜주시는 분을 만난다. 그분에 관하여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진실로 믿을 때, 우리는 그분께 마음을 내어 맡기고, 우리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시 51:10). 마음의 문제가 심각할수록 우리 영혼의 치유자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날마다 나아가야 한다.

2. 마음을 지키시는 분께 회개하라(도덕적)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인격적이고 또한 도덕적인 일이다. 불평하는 마음, 염려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무기력한 마음, 우울한 마음, 자책하는 마음, 낙심한 마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품지 말아야 할 악한 마음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고 하나님께 원망과 분노를 쏟는 악행이며,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멈추는 반역죄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에 깊이 박힌 상처가 너무나 크고 고통스러워서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누구 때문에, 어떤 일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나는 고통받고 있다’라고 말하기가 더 쉽다.

하지만, 마음을 지키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 없이는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할 수 없다.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했다(욥 42:6). 그가 당한 일 가운데 그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일에 관한 욥의 마음이 분명 잘못되었기 때문에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진정으로 회개한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해부하여 우리가 품고 있는 마음이 왜 잘못된 마음인지 밝히 보여주신다. 우리가 그 진단에 동의하고 그분의 처방을 따를 때, 회복은 이루어진다. 마음의 회개가 마음의 회복을 일으킨다.

3. 마음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라(복음적)

완치에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마음의 치유를 위하여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악한 마음을 버리고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그 일을 하지는 않는다.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그럴 마음이 아니라서 등등 이유는 많다. 하지만 마음의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에서 자기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다(신 6:5; 마 22:37).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이들에게도 주님은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정죄하셨고(마 15:8), 주님을 위하여 많은 수고와 봉사를 한 교회에도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면서(계 2:4),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라고 명령하셨다(계 2:5). 마음을 지키는 일은 그만큼 급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최고 우선순위에 두고 헌신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19편을 기록하면서 만물과 말씀을 통하여 그가 만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찬양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우리는 매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우리 마음에 주님께 열납될 수 있는 많은 묵상을 채워야 한다. 그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만물과 말씀을 바라봐야 하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해야 한다. 주께서 받지 못할 더럽고 추악한 마음을 수시로 버리고, 그분이 기뻐 받으실 마음을 계속해서 채워야 한다. 

이것은 복음 외에 우리가 추가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보혈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면서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겔 36:26).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마음의 병도 만성과 급성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겪은 매우 극단적인 일로 인하여 크게 낙심하고 불평을 쏟아내지만, 어떤 사람은 불평이 만성이 되어 무엇을 하든지 궁시렁대면서 산다. 둘 다 복음으로 고쳐야 할 마음이다. “수군수군하는 자”로 특징지어지는 사람은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롬 1:29). 어떤 일을 겪는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이 가진 믿음은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고 이겨내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히 10:39).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친밀하지만, 마음에 여전히 상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아서 마음에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문제가 있지만 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죄다. 복음을 잘 알고 실천하고 있지만 마음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복음을 잘 모르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도덕적, 복음적 관계 회복이 곧 마음의 회복인 것이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