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본문: 빌립보서 4장 6-9절

설교자: 조정의

빌립보 교회는 시작된 날부터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한 충성된 교회로 바울의 기쁨과 감사 제목이었다(1:5):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8). 그러나 10년이 지나 바울이 투옥된 시점엔 그리스도를 전파하기는 하지만 투기와 분쟁으로 하는 이들이 생겼고(1:15),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같은 복음 동역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으며(4:3),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와 섬김 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인 겸손의 부재 문제가 생겼다(2:1-3). 바울은 그들 가운데 있는 문제를 하나하나 복음으로 처방하면서, 본문에 기록된 기도의 명령과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남겼다: 염려하지 말고 아뢰고 행하라, 그리하면 지키시리라. 이 말씀이 복음에 참여한 우리들, 그러나 여러 문제에 봉착한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1. 명령: 염려하지 말고 아뢰라(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첫 번째 명령은 ‘염려하지 말라’이다.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관하여 예수님은 1) 염려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마 6:27), 2) 염려는 불필요한 괴로움을 더하는 일이기 때문(마 6:34), 3) 염려는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시고 우리를 귀히 여기셔서 신실하게 공급하실 하나님 아버지를 불신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마 6:30). “아무 것도”에 주목하라. 사실상 ‘모든 것’이 염려의 제목이 될 수 있다. 건강, 경제적 상황, 알 수 없는 미래, 가족, 사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어난 갈등과 어려움. 그 심각성에 따라서 며칠 가는 염려도 있고 몇 달 혹은 수년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염려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염려는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짐과 같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는 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염려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내 원망과 불만을 쏟아낸다. 혹은 자책하며 스스로 그 부담을 몽땅 지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자신도 타인도 염려의 짐을 온전히 해결할 능력이 없고, 그냥 없는 것으로 해결해 보려다간 한꺼번에 몰려들어 낭패를 본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염려를 맡길 올바른 대상을 가리킨다: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하나님께 아뢰라: 자연스럽게 두 번째 명령인 “하나님께 아뢰라”와 이어진다(“다만”). 염려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염려의 제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기도의 제목이 된다. 기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하라. 지금 겪고 있는 상황,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 염려하는 일과 두려워하는 일들. 간구: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하라. 당신의 뜻을 구해도 좋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이미 아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기도의 태도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께 기도로 나아갈 때 반드시 요구되는 태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함”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숨김없이 낱낱이 아뢰고, 또 내가 바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감사함이라는 옷을 입은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 자체에 관한 감격에 젖어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굳센 믿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든지,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는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선을 이루고 유익을 주는 것이라는 확신이 따라온다. 선물을 받은 아이가 전혀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서 부모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또 관심도 없다고 느껴서가 아닌가? 감사함으로 아뢰는 기도는 그 반대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셔도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굳게 믿는 기도가 감사의 기도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2. 약속: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8절)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5). 그러나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자판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한 기도에 건강을, 재물을 위한 기도에 재물을, 성공과 합격을 위한 기도에 성공과 합격을 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이다. 염려를 맡기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당장 그 염려거리를 제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반드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있다: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생각은 우리의 내부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는 일은 모두 외부에 있지 않은가? 건강, 부, 진로, 성공 등.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염려는 외부의 것을 대상으로 하긴 하지만, 분명히 내면의 문제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부에서 일어난 염려가 아무런 외부의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약속은 하나님께 우리 염려를 맡기면, 반드시 그 염려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절대적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염려를 가져가신다.

본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표현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건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건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설명한다. 한편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도구를 가리킨다. 왜 ‘모든 위로(자비, 사랑)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고 했을까? 이어지는 8절을 보면 바울은 언제든지 우리가 자각해야 할 것을 나열했다: 무엇에든지 참된 것, 경건한 것, 은 것,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 기림는 것. 염려할 때, 우리는 이것들을 도통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는 걸 원하지, 그 문제를 통하여 더 경건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근심의 대상이 사라져 버리길 구하지, 그 근심으로 더 정결해지는 걸 구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짧고 제한적인 우리의 지각은 염려하는 중에는 더욱 좁아지고 부족해져서 진짜 우리 영혼에 유익이 되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의 장단점을 아시고 기질을 아시며 허락하신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지, 유혹과 시험이 되는지 통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실 때 그 뛰어난 지각을 사용하신다. 염려가 들어찬 우리 마음에 그냥 어루만져주시는 느낌이나 감정을 채우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우리로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시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시며,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로 생각하게 하셔서,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주의 평강이 찾아들게 하시는 것이다. 

3. 또 다른 명령: 행하라(9절)

행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그 뛰어난 지각으로 아시고 보시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는가? 그래서 그분의 평강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시는가? 따라오는 명령을 보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절). 평강의 하나님은 우리가 행할 때, 함께 계심을 나타내신다. 무엇을 행할 때? 바울이 빌립보 성도에게 말한 건,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다. 바울은 필시 8절에 기록된 것을 가르치고 그대로 본을 보였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1:9-11). 바울은 자신에게 괴로움을 더하기 위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도(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고백하여 본을 보였다. 하나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순종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러나 염려 가운데 우리는 경건의 길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하나님의 지각을 얻을 방편을 멀리하기가 쉽다. 기도는 손에 잡히지 않고, 설교도 들리지 않으며, 성경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성도를 만나고 싶지 않고 공예배를 점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런 쉼(?)을 통해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짓을 믿는다. 그러나 평강의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대로 행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내신다. 우리 지각을 넓히시고, 볼 수 없는 걸 보게 하시고,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시며, 우리 관심 밖이었던 경건과 거룩과 정결과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의 성취가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추구하게 하신다. 그렇게 염려를 우리 마음에서 몰아내시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분 안에서 누리는 평강,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평안을 얻게 하신다(요 14:27). 

성경은 두 종류의 염려가 있다고 말한다(고후 7:10-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당신의 염려와 근심은 당신을 어떤 길로 인도하는가? 당신의 염려가 낳는 열매는 무엇인가? 분노와 원망과 불신, 비방과 다툼인가? 아니면 경건과 정결과 회개, 용서와 사랑인가? 우리 마음과 생각이 지켜지려면, 우리는 이 염려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이며, 결국 하나님께서 이 염려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란 확신이 서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평강을 가져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그 고민을 기도로 모두 털어놓으셨다(막 14:34). 그리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구하셨다(막 14:36). 예수님 마음에 평강은 언제 찾아왔는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을 때, 즉 이 염려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니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실 것을 신뢰했을 때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평강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