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롬 3:21~31)

by

제목: 그러나 이제는 본문: 로마서 3장 21~31절 설교자: 이병권   여러분은 이력서를 쓰신 적이 있으십니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학력이나 경력을 증명하고 내가 회사에 필요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력서를 씁니다. 그래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력서에 더 좋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종교가 취업을 […]

예수를 따르면서 거짓을 믿어도 될까?②(요일 2:18~29)

by

제목 :예수를 따르면서 거짓을 믿어도 될까?② 본문 : 요한일서 2장 18절~29절 설교자 : 조 정 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을 따르면서 거짓을 믿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은 거짓을 믿고 따르다가 결국 진리의 하나님과 그 백성을 떠난 자들(적그리스도)을 책망했다. 남은 성도들이 진리 안에 거하여 아들과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주가 강림하실 때 담대하게 주를 […]

우리 안에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찬양(시편 66편)

by

제목 : 우리 안에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찬양 본문 : 시편 66편 설교자 : 최종혁   시편 65편에서는 세상에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었는데, 66편에서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반응을 좀 더 생각해보기 원한다. 시편 66편은 감사의 찬양시다. 지난 주일오후성경공부 시간에 배운 것처럼, 감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신 일에 대해서 내가 보여야할 합당한 반응인데, 기도의 형태로 직접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본래 감사의 의미에는 더 적합하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그런 감사한 마음을 찬양으로도 표현한다.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리도 누군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너무 클 때는 그 사람에게만 감사를 표할 뿐 아니라, 그런 감사한 일을 한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게도 말한다. 그것이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감사 찬양의 모습이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그런 고마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도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알고 함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놀라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높일 뿐 아니라 감사의 기쁨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다. 오늘은 시편 66편을 통해 그런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의 감사와 찬양을 점검해하며 교훈을 얻기 원한다.   찬양의 초청(1-4) – 찬양의 이유(5-12) – 찬양의 실례(13-20)   I. 찬양의 초청(1-4절) 먼저 1-4절은 찬양으로의 초청이다.   “1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2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1-2절) “온 땅” – 초청의 대상. ‘온 세상’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이어지는 말씀, 특히 3절에서는 하나님께 직접 말하는 것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온 세상 사람들’의 의미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다른 시편에서 보면 사람이 아닌 모든 피조물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다양한 피조물들보다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을 시편 기자는 초청한다. 마치 자기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해야할 것을 독려한다(루폴드).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찬양하고”, “찬송할지어다” – 초청의 내용. 즐거운 소리를 내는 것은 환호하는 것,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을 말하고, 2절의 찬양은 악기를 동원하여 노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찬양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고 그런 일에 초청을 하는 것이다.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는 찬송이 찬송의 대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 대상은 바로 영화로우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그의 이름의 영광을” – 그들의 찬양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다. “이름”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영광”은 그런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여러 모양과 방법으로 드러내시는데, 여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하신 일을 크게 강조한다. 그래서 찬양의 구체적인 내용도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것이다.   “3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3-4절) 먼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찬양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 일이 어떠한지만 언급을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엄위’하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너무 크고 놀라워서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엄위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고 이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결국 그 권능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뻐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3절처럼 복종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복종” – 자발성은 배제. 힘에 밀려 억지로 굴복하는 것을 의미. 참된 마음 없이, 원하지 않는 거짓된 복종을 의미. 힘이 없어서 그렇지 할수만 있다면 절대 복종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빌 2:10에서 말하는 것처럼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데, 어떤 이들은 자발적으로 어떤 이들은 강제적으로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온 자들은 구원의 기쁨으로 노래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구원이든, 심판이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 지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런 두려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초청이기는 하지만 뭔가 ‘정중함’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명령형’으로 되어 있어서 이 찬양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함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찬양’은 “하나님의 찬양”이다.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8절) 찬양을 드리는 것은 사람들이지만, 그 찬양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찬양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마땅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두려운 일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이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지를 증명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다.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엄청나게 잘하면 내가 기쁜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 팀을 응원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할만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있어 시편 기자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오히려 자신감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면 모두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 확신이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5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16절)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라고 하고 들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II. 찬양의 이유(5-12절) 먼저 5-12절에서는 왜 하나님께 찬양이 합당한지를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심 엄위하신 일 때문이다. 그 일은 크게 보면 6-7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9-12절에서는 하나님의 단련하심이다.    구원하심(6-7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할 때 항상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출애굽이다. 여기서도 그와 관련된 사건이 언급된다.   […]

예수를 따르면서 거짓을 믿어도 될까?①(요일 2:18~29)

by

제목 :예수를 따르면서 거짓을 믿어도 될까?① 본문 : 요한일서 2장 18절~29절 설교자 : 조 정 의 신자가 관상을 보고 혈액형에 따라 팔자를 정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신다는 진리를 믿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얼굴 생김새와 혈액형만 가지고 운명을 결정하는 거짓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쉽게 […]

우리는 나으냐?(롬 3:9~20)

by

제목: 우리는 나으냐? 본문: 로마서 3장 9~20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는 나으냐?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겸손히 돌아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되새겨지고 도전이 되어서 나를 점검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되는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장 18절에서부터 시작된 서신의 첫 번째 본론, 하나님의 진노에 […]

예수 안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해도 될까?(요일 2:12~17)

by

제목 : 예수 안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해도 될까? 본문 : 요한일서 2장 12절~17절 설교자 : 조 정 의 요한일서는 충만한 기쁨으로 시작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그분과 더불어 아버지 하나님과 사귐을 누리자고 말했다(요일 1:1-4).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럽고 특별한 사귐인가! 그런데 그 이후 요한은 독자가 당황할 만큼 흑백논리, 강력한 […]

바울이 묻고 바울이 답하다

by

제목: 바울이 묻고 바울이 답하다 본문: 로마서 3장 1~8절 설교자: 이병권   한 신학교 교수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20년 넘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정확하게 학생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무슨 질문을 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어떤 내용이 학생들에게 질문이 되는지, 어려워하거나 […]

예수 안에 살면서 형제를 미워해도 될까?(요일 2:7~11)

by

제목 : 예수 안에 살면서 형제를 미워해도 될까? 본문 : 요한일서 2장 7절~11절 설교자 : 조 정 의 347년경 태어난 4세기 신학자 제롬은 사도 요한의 일화를 들려 준다. 사도 요한이 나이 들어 기력이 쇠약해져 더 이상 설교할 수 없게 되자, 에베소 교인들 앞에서 한 마디 권면하는 것으로 만 족하게 되었는데, 그는 권면할 때마다 “어린 자녀여, 서로 […]

누가 진짜 하나님의 사람인가?(롬 2:17~29)

by

제목: 누가 진짜 하나님의 사람인가? 본문: 로마서 2장 17~29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는 직접 물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세요?’ 직업을 물어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디에서 오셨어요?’ 출신을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입은 옷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으면 […]

무엇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깝게 만들까?(요일 2:1~6)

by

제목 : 무엇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깝게 만들까? 본문 : 요한일서 2장 1절~6절 설교자 : 조 정 의 요한일서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아름다운 조각 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빚어진 권위 있고 은혜로운 요한일서 작품의 기초를 감상했다(1:1-4). 영생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 게 나타내신 바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