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참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먹는 음식부터 의복까지 세세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칭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하는 말로 “참 지긋지긋하게 말을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도 그와 비슷한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렘2: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자 늘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은 그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결국 많은 실패와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너희의 구속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속자’라는 말은 값을 주고 다시 산다는 말입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자신의 관계를 알려주시기 위해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취하라고 명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와 같은 음란한 백성, 하나님을 모르던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음란한 여인은 호세아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호세아에게 명하시기를, 그녀를 돈을 주고 사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구속’의 개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라고 표현하시고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식을 이용하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녀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배가 고파하는데 돌을 가져다 주는 부모가 있습니까? 악한 사람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편안한 삶, 행복한 삶을 위해 부단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그것들을 부모님의 잔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는 말씀이며 마땅히 가야할 길로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평강이 강과 같았으리라는 말은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권세가 많아지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환경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손해 보신 분 있으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주의하고 따른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은 만난다 해도 우리의 평강이 강물과 같았을 것입니다. 또한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과 공의가 바로 서게 되고, 많은 자손을 두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당시에는 많은 자손을 두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음)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들은 우리의 행복은 위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결혼 상대의 조건을 보더라도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시하신 결혼의 모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과 배우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즉, 영적인 것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와 직장, 가족사항 등을 고려합니다. 하나님의 원칙이 오늘날의 결혼 제도에 있어서는 시대에 뒤진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혼율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그러한 세상의 흐름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칙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을 보면 건전하고 믿는 사람다운 교제가 아닌, 세상의 문화를 누리고 어울리는 시간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실제 자신의 문제나 자신의 자녀의 문제에 봉착하면 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정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원칙에 멀어져있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구식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분명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이가 90이 되어도 사라는 남편을 ‘주’라고 부르며 순종했습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오고 여성은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와 성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오늘날의 원칙은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성은 배필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내는 배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에 세우신 이와 같은 질서가 성립될 때 가정이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벧전 3:5,6)”
또한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방법이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이 무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자녀양육방법이 무시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모든 교육에 앞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들의 평강이 강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것들이 무시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평강과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자녀교육이야 말로 진정 성공하는 자녀교육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생활할 때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6:5)”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국가에 세우신 지도자나 직장의 상전에게 합당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대로 순종한다면 마음의 평강이 강과 같을 것이며 우리가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우리 삶과 결혼생활, 가정생활, 자녀양육, 사회생활 등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은 무시되고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활동이 활발해지고 교제가 많아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서 멀어질 때 우리는 참다운 신앙에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녀양육도, 부부관계도, 직장생활에서도 다시 말씀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남편, 아내, 자녀, 종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그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주의한다면 평강이 강과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현재 우리의 삶에 평강이 없다면 우리가 정도(正道)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적인 방법을 적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