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본문 : 사도행전 5장 17절~42절
설교자 : 조 정 의
최근에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 가운데 핍박에서 거의 완벽하 게 안전하다고 느꼈던 미국 같은 곳에서 교회가 박해받는 것을 본다. 지금도 공산주의나 무슬림 지역에 있는 교회는 우리가 상 상 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교회 건물을 박살 내고 수십 명 의 성도를 참수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회심하기 전까지 초대 교회는 끊임없이 핍 박을 받았는데, 주후 284-305년 집권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는 교회를 불태우고, 성경을 압수하고, 성직자를 고문하고, 그리 스도인 공무원은 시민권을 박탈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교회는 그 리스도로 인하여 짐승에게 찢겨 죽거나 참수형을 당하거나 십자 가에 달려 죽는 등 계속해서 순교의 피를 흘렸다.
교회가 순교 당할 때 보여준 놀라운 간증으로 회심한 교부 터튤 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죽이시고 우리를 고문하시고 우 리를 정죄하시오. 우리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버리시오. 당신 들이 우리를 소탕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자랄 것이오. 그 씨는 그리스도인들의 피요”(스토트, 175). 교회는 어떻게 이런 극심 한 핍박 가운데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순교자의 피 위에 교회가 굳건히 서는 것일까? 초대 교회가 겪은 고난과 그 가운 데 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살펴보며 그 이유를 알아보자.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 가지 시험을 받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으로부 터 참 위로와 힘을 얻기 원한다.
1. 교회는 그리스도로 인해 박해를 받는다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과 함께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손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과 신실하게 전파된 복음을 통 해 성령의 역사로 계속해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5:12-16).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라 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요 15:20),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 을 증거하다 잡혀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 산헤드린 앞에서 ‘다시 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는 위협과 경고 를 받고 풀려났다. 교회는 이런 박해를 하나님께 기도로 의탁하 고 성령이 충만하여 더 열심히 사명을 감당했다. 결과적으로 백 성의 칭송을 받고 구원받는 자가 늘어났지만, 그 대가로 그들이 받을 박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교회에 불어닥친 두 번째 박해는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아니 라 모든 사도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17-8절). 그들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교회를 박해했다 (17절). 백성이 유대인 사회 기득권층인 그들보다 그리스도를 따 르는 것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 력, 영향력, 인기, 명예 등을 위협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추종자 를 시기심 때문에 제거하고 싶었다.
나중에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던 사도들을 다시 한번 잡아다가
공회 앞에 세우고 어떻게 말했는지 보라(27-8절).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 엄금하였으 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28절)
그들은 예수의 이름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매 달아 죽였으니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또 그 이름으로 가르치며(그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함) 그 이 름으로 권능을 보이면서 그 이름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그 이 름을 따르는 공동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33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들은 크게 노하였고 사도들을 없이하고 자 했다. 그리스도를 미워했고 그분을 시기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공산 국가나 무슬림 사회에서 왜 기독교를 박해하는 가? 그들의 기득권에 거슬리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 는 자신들이 믿는 신만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의 기득권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경쟁 상대가 아니니 시기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믿고 따 른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전적으로 그분 말씀만 순종한 다. 교회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일본 천황 숭배를 거부하 고, 공산국가의 원수 숭배를 거부한다. 알라신을 거부한다. 그 자 리에 오직 그리스도만 앉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미워하는가?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희생적인 사랑의 대명사라고 그들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분이 자기 삶에 들어와 여러 가지 어두움을 몰아내고 잘못 된 생각을 바로 잡으며 삶의 주인 자리를 요구하실 때 그분을 미 워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 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20).
그러므로 국가든 집단이든 개인이든,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 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시기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고 요구하시는 그리스도를 미워한다. 국가의 권력, 집단의 기득 권, 자기 인생의 주권을 쟁취하려는 자는 그 강력한 경쟁 상대인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몰아낸다. 시기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참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무릎을 꿇는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한다(롬 14:8). 그 리스도는 내 인생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영원히 찬양받으실 주인 님이시다. 그분의 말씀은 취사선택이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 절대 로 따르고 순종해야 할 어명이다.
참 교회는 억지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의 큰 사랑 때문에 주님께 기쁨으로 순종한다. 교회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 신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은혜에 감동한다. 자기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께 죽도록 충성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다(롬 8:17). 그래 서 그리스로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이들로부터 박해를 받는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를 방치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교회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교회와 함 께 증언하신다. 초대 교회를 하나님이 어떻게 지키셨는가?
2.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를 지키신다
1) 교회를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보호하신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이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을 때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그들을 끌어낸 것 이다(19절). 주님께서 보내신 (사두개인이 믿지 않는) 천사가 사 도들이 갇혀 있던 옥의 문들을 모두 열고 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이것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다.
다음 날 아침 대제사장과 그 무리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아놓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 오라고 했는데,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21-2 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었는데, 문을 열고 보니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23절). 비밀 통로가 있거나 지키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나오거나 마술처럼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성전 맡은 자(성전 경비 대장)와 대제사장들은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두려워했다(24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 앞에 당황하고 무서웠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를 초자연적인 능력으 로 보호하셨다. 종종 우리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능력을 경험한다. ‘그분이 나를 보호하셨구나’, ‘교회를 지키셨구 나’ 인정하고 감사할 때가 있다.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데리고 나오셔 서 ‘힘들었지? 당분간 몸을 좀 사려라’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다. 주의 사자는 그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라고 명령했다(20절).
사도들은 그 말을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21절). 그들이 최초에 잡혔던 그 장소로 돌아가 주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를 경험한 교회는 단 지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이 아니다. 큰 기쁨으로 더욱 그리스도 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파한다.
2) 교회가 확신 가운데 말하도록 함께하신다
성전 경비 대장과 그 부하들은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 던 사도들을 다시 잡아 왔다(25-6절). 백성들이 칭송하고 있어 서 강제로 연행하진 못하고 잘 설득하여 공회 앞에 세웠다(27절).
‘이 이름으로 가르치거나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위협하는 공회 앞에서 사도들을 대표로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히 말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 그들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분명한 확신 가운데 있었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처럼 나무에 예수를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를 살리셨다(30절, 부활). 그들 은 예수님의 왕권을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 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31절, 승천).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 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위협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전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보고 들은 것을 확신 있게 말하게 하셨다(32절). 그러니 어느 편에 서야겠 는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산헤드린 공회 사람들은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했다 (33절). 사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 말 예수를 살리시고,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으며, 성령의 증언으 로 예수님을 전파하고 계신다면, 그들이 누구라고 하나님을 대적 할 수 있겠는가? 사도들을 죽인다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와 그 리스도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마땅히 31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회개함과 죄 사함을 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참 교회는 핍박 중에도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 있다.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두 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다. 그리스도께 서 세상을 이기셨다. 흑암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 당시 유대인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사도들이 담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실 때문이다.(마 10:28). 몸은 혹시 죽임 당할지라도,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하나님이 그들 편 이기 때문이다(마 10:28).
당시 공회에는 바리새인으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인품이 훌륭한 온건파 랍비 가말리엘이 있었다. 그는 공회 중에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34절), 나머지 사람들에게 지혜 로운 조언을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는 아니었 지만 아주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로마 황제 치하에서 일만 번 정도의 소요가 일어났다고 한다. 가말리엘은 그중에 두 가지 사 례, 즉 드다라는 사람(36절)과 유다(37절)를 언급하며 각각 그 들이 백성을 꾀어 일으켰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기했다. 드다는 약 사백 명의 추종자가 있었고, 유다도 많은 사람이 따랐 다. 하지만 드다와 유다가 죽었을 때 따르던 모든 사람이 흩어 져 없어졌다.
가말리엘의 결론은 이것이다. 그러니 두고 지켜보자는 것이다. 만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고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결코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 라는 것이다(38-9절).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면 그들은 지 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가말리엘의 말을 들은 공회 구성원들은 그 말을 옳게 여겼다(40 절). 사실 그들은 확신이 없었다. 사도들을 제거하면 백성의 지지 를 잃게 되고, 사도들을 인정하면 로마의 견제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만에 하나 사도들의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 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다. 불확실한 가운데 가 장 현명한 판단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불확실함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을 확신하며 따른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 있다.
3) 교회가 주를위해 고난받기를 기뻐하게 하신다
산헤드린 공회의 최종 판결은 사도들을 죽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냥은 못 풀어주고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 하였다(40절). 아마도 혹독한 매로 알려진 사십에 하나 감한 매 였을 것이다. ‘채찍질하다’는 ‘살가죽을 벗기다’라는 뜻이 있는데, 그들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채찍으로 죽을 때까지 남아있을 흉 터가 생기도록 등과 가슴을 맞았다.
놀라운 건 사도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 은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41 절). 또한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 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42절). 터튤리 안이 본 순교하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능 력이다. 교회가 짐승에게 찢기면서도 함께 모여 손을 잡고 하나 님을 찬양하고, 화형당하면서도 끝내 주를 부인하지 않고 찬송 을 읊조릴 수 있던 건 하나님께서 고통보다 더 큰 소망, 고난보다 더 큰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결론: 히브리서 11장 32-40절. 교회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을 이기시고 주관하시는 하나 님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를 지키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