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주님의 경고
본문 : 누가복음 21장 34절
설교자 : 조성훈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세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구절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제가 어릴 때에는 참새를 잡는 덫이 있었습니다. 참새가 좋아하는 먹이를 두고 덫으로 그것을 잡았습니다. 바로 그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각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많은 질병이 세상을 휩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증상입니다. 최근 국내에 메르스라는 질병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질병에 걸리면 그 사람에게 모든 걱정 근심을 없애주고 고통도 질병도 더 이상 없는 특권이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아마 너도 나도 그 질병에 걸리고 싶을 것입니다. 천국이 바로 그런 곳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 질병에 걸려 죽으면 천국에 가는데 왜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입니까? 믿는 사람들은 크게 염려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에게 어떤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영혼의 질병입니다. “너희가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은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문제라서 자신이 문제가 생겼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 성경 말씀이 그러한가 생각하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영혼이 지금 잠자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앙은 좋은 상태에서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고 신앙에 외식이 들어오고, 금세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이 땅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와 변화에 대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세속에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먹이에 눈이 팔려 덫이 덮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늘 깨어있으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염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메르스에 걸린 환자가 세상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세상을 염려해야 하는데 오히려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무뎌져 주님의 오심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지 않도록 주님은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방탕함은 술이나 여자, 놀음에 빠지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덜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것들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참 많습니다. 여러분이 생활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빼앗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은 스마트폰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그것에 얼마나 매여있는가 하는 것은 그것을 한 달 간만 안 가지고 있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 많습니다. 그것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 그만큼 우리는 주님과 많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이 무뎌집니다. 저도 처음 텔레비전을 켤 때는 뉴스만 보려고 생각합니다. 절대 다른 것은 안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뎌져서 뉴스가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연속극을 봅니다. 우리의 마음이 점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지 메르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전화해서 지금 텔레비전을 보라고 하면 바로 전염됩니다. 결국은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좀먹는 가장 큰 적은 우리의 삶이 너무나 태평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1960년대와 비교하면 현재 우리는 갑부들입니다. 텔레비전에, 전화, 자동차까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늘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더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은 ‘집’입니다.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24평 아파트도 처음에는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또 좁아집니다. 그 때 기도를 합니다. 주님께 손님을 접대하려고 집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주셨다고 간증을 합니다. 누구도 넓은 아파트가 좋으니 좀더 넓은 아파트를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아파트를 사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수년이 걸립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들딸 시집 장가보내고 나면 넓은 집에 두 사람만 덩그라니 남는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녀가 영적으로 잘 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교육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녀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면 부모는 자녀교육에 실패한 것입니다. 어떤 자녀들은 군대에 다녀와서, 어떤 자녀들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씩 세속에 물들어 한 번 두 번 교회에 나오지 않다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가진 것이 참 많습니다. 옷도 많고 신발도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여있어서 신앙이 병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것에 대해 까마득히 잠들어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월호 같이 침몰해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안주하며 사는 것이 바로 병든 마음입니다. 현재 날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늘나라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관련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신앙의 질병에는 몇 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목자가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설교가 좀 길어진다고 불평하는 것은 질병의 증상입니다. 그에게는 점심을 먹는 것이 더 급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는 감사하는 말이 더 많습니까, 처한 환경에 대해 불평하는 말이 더 많습니까. 불평이 더 많다면 그것은 병든 증거입니다. 하루동안 살면서 내가 하늘에 머물러 있는지 이 땅에 머물러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나의 생각이 더 좋은 집과 안락한 삶, 더 편안한 노후, 이 땅의 즐거움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자신의 권리와 행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병들어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영혼이 둔해지고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것에 대해 통회하는 심정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자신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제가 사람입니까 돌입니까’라고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고백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는 영적으로 병든 사람입니다.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가서 산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움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타락되고 있고 처처에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눈에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잠들어 있는가를 생각하고, 바리새인들과 같이 외식에 빠지지 않으며, 우리의 눈이 밝아 영적인 것들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돌아보시고 주를 향하여 돌아서기 바랍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나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 점검해보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것에 감사가 많은지 불평이 많은지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안락함을 추구하고 있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의 손에서 멀어지면 우리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경고에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