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께 받은 떡과 잔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3~30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우리가 매주일 행하는 “만찬예배”, 떡과 잔을 앞에 두고 행하는 예식에 관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매주일 반복적으로 드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져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무의미하게 드리기 쉬워집니다.

또 만찬예배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못한 채 참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9월부터 더 많은 형제님들의 참여와 보다 질서있는 만찬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 만찬예배의 참된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주께서 직접 우리에게 전해주신 만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만찬예배에 참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고린도전서 11장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듯,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분열, 간음, 고소 등). 그 많은 문제 가운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바로 만찬예배 문제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7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그들을 책망합니다.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바울이 명하는 이 일은 20절에 나오듯 “주의 만찬”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만찬예식을 볼 때 칭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오히려 해롭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임이 해로운 이유, 그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모일 때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8절). 성도가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찬예배 가운데 드러나는가? 그것은 20-21절에 말하고 있듯, 어떤 사람은 와서 자기 만찬을 가져다가 배불리 먹고 많이 마셔 취하는데, 어떤 사람은 늦게 와서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습니다. 서로 함께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주의 만찬에 진지하게 기쁨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서로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만찬예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표현입니다. 조금 떼어 먹는 떡과 한 모금의 잔으로 어떻게 누군가는 배부르고 취할 수 있을까요? 바울 당시에 만찬예배가 성도가 함께 모여 식사하고 교제하면서 동시에 떡과 잔을 통해 주님을 함께 기념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아주 간소화하여 기념하고 있지만 말씀 이후 애찬시간(love feast)을 포함하는 것이 과거의 만찬예배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애찬시간마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성도들이 더 많이 먹으려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못먹는한이 있어도 많이 가져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나중에 내려오는 집사들이 맨밥을 먹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무슨 “애(사랑)찬”입니까? 

바울은 이런 행태를 가리켜 22절에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 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의 만찬을 이런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절대 칭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만찬의 의미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23절부터 그 가르침을 기록합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가 드리는 만찬예식에 대해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칭찬할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우리의 만찬 모임은 유익할까요? 아니면 도리어 해로울까요? 우리의 예식 가운데 이기적인 모습은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만찬시간에 다른 성도의 유익을 구하려 애쓰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성도가 유익을 얻든 말든 나의 편안함과 안락함만 추구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태도가 주의 만찬에 합당할까요? 칭찬받을 만할까요? 바울의 따라오는 가르침을 살펴보며 우리의 예식, 그리고 그 예식에 참여하는 우리 마음을 점검해봅시다.

목적1: 주의 죽으심 기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왜 만찬예배를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주의 만찬) 주께 받은 것이니

떡과 잔을 가지고 드리는 이 예식이 바울이 만든 예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전통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더 나쁘게 표현하면 안 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그런 예식이 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예식은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전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눅 22:19).

예수님이 이 명령을 주신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예식을 행할 때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떡과 포도주를 먹는 행동양식을 반복적으로 하라고 하신게 아닙니다. 이를 통해 무언가 기억하기 원하신 것입니다. 되새기기 원하신 것입니다.

23절 후반부터 보시면 주님은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또 25절을 보시면 식사를 마치고 나서(애찬) 잔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잡히시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은 이렇게 떡과 잔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24절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25절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주님께서 당하실 일(죽음)과 그 이유에 관해 기념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대신하여 그 몸이 찢기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그 피를 흘리셨습니다. 대속의 원리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대신 맞고 피흘리며 죽으셨습니다. 그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떡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면서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우리가 매주일 아침마다 기념합니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누며 주의 죽으심을 묵상합니다. 그 죽으심이 우리에게 미친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만찬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떡과 잔을 먹는 행위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변해가는 마음을 정신차리도록 일깨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만찬예배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만찬예배가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 인생이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다는 확실한 은혜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남긴 유품을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 물건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게 하는 강력한 물건입니다. 혹시 잃어버릴까 항상 주의합니다. 누군가가 그 물건을 함부로 대하면 분노합니다. 

바울이 지금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그런 공분을 표출합니다. 어떻게 너희를 사랑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을 기념하는 모임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느냐? 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그것도 잡히시던 날 밤 기억하라고 명하신 이 만찬을 이렇게 가볍게 대할 수 있느냐?

우리도 스스로를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만찬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주님을 대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주님이 직접 명령하시면서 기억하기 원하셨던 그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깊이 진심으로 기념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주님이 빠진 만찬예배는 절대로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지루하고 형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찬예배라면 우리는 회개하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목적2: 주의 죽으심 선포

만찬예배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떡을 떼고 잔을 나누면서 주님의 죽으심과 그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은혜로운 새 언약을 기억하기 원하십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26절에 만찬예배의 목적에 대해 설명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새언약을 기념하는 것이 그 첫째 목적이었다면, 두번째 목적입니다.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울은 만찬을 통해 그들이 하는 일이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포”입니다. 엄숙한 선포를 의미하는데 이 표현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가리킬 때 여러번 사용되었습니다(행 4:2; 13:5; 17:3; 빌 1:18; 골 1:28). 특별히 고린도전서 2장 1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증거를 너희에게 전할 때”라고 말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만찬은 선포행위입니다. 

우리가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죽은 영혼에게 살아있는 복음을 선포하듯, 무지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진리를 선포하듯 “주의 죽으심”에 관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주가 오실 때까지”입니다.

현대인들은 교회 예식에 참석하여 진행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지켜보고 관람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들이 예배자라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여기 바울은 그것이 문제라고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너희는 지금 선포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을요? “주의 죽으심”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엄숙한 선포는 우리가 주가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성실하게 해야 하는 선포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고귀한 예배자,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말입니다(벧전 2:9). 무얼 하라고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고입니다.

만찬예배 시간에 참여하는 주의 제사장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제사장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선포합니다. 어떤 사람은 앞에 나와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찬송을 권하여 함께 부르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직접적인 참여에 화답함으로… 모두가 만찬예배에 참여하는 태도, 자세, 마음 속 깊은 묵상과 생각, 모든 것을 주님께 제물로 열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주의 죽으심”을 엄숙히 선포합니다.

성도의 모임 가운데 선포하고, 진리를 찾아 교회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통해 강력하게 드러나고 선포되는 시간이 바로 주의 만찬시간 입니다.

아무도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수동적으로 뒤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뒷짐지고 구경하면서 평가만 하는 사람이 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선포자입니다. 예배자입니다. “주의 죽으심”이라는 엄청난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만찬예식을 인도할 책임이 있는 형제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만찬 예배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분노하거나 다투거나 시기하거나 판단하지 아니하고, 형제들이 서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무조건 다 앞에나와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 나와야만 예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주의 죽으심이라는 고귀하고 엄숙한 메시지를 성도 가운데 선포하는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을 마다할 합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순종하여 행합시다. 

또 만찬예식에 조용히 참여하는 자매님들께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바울은 형제들에 대한 권면 직후에 자매들에게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명령합니다(딤전 2:8). 이것은 결코 수동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는 것은 적극적인 자세와 행동입니다. 형제가 다른 형제의 선포되는 가르침과 기도에 겸손히 듣고 배우듯, 자매들은 형제들이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말씀과 기도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배우며 그것으로 함께 예배하고 선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자매 모두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선포합시다.

3. 주께 하듯: 만찬 예배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바울은 주의 만찬을 결코 가볍게 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27절부터 읽어봅시다.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바울은 아주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떡과 잔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떡과 잔에 합당하지 않게 행하는 죄는 주님 귀한 몸과 보혈에 대한 죄다!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래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자기를 살피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먹고 마시면 그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죄 용서함을 기념하는 만찬을 대하는 것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만찬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찬을 대하기 전에 항상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참여하라”고 광고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진실로 감사하고 묵상할 수 있는 거듭난 사람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냥 다들 먹으니까 나도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당치 않게 먹는 것입니다. 성도와 원수로 등돌리고 있고, 죄를 회개하지 않고 즐기고 있는 상태에서 떡을 떼지 마십시오. 한 손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죄에 참여하는 중이라면 하나님이 어찌 이를 기쁘게 여기시겠습니까?

30절을 보시면 고린도교회에는 만찬을 함부로 대했다가 영적으로 혹은 육적으로 약해지거나 병들거나 심지어 잠자는 사람(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신 것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만찬을 함부로 대했다가 하나님께 이런 심판을 받는다면 말입니다. 누가 떡과 잔을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반대로 만찬이 갖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깊이 생각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하나님과의 새 언약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화평과 영광스러운 기업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그가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비밀이 이 떡과 잔을 통해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명령하신 중요한 예식입니다. 온 성도가 함께 이 예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만찬 예식을 함부로 대하고 멸시하고 원래의 취지에서 멀어져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취급하는 것은 정말 바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엄하게 책망하시고 징벌하신 것입니다.

34절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드리는 만찬예배는 다른 이가 보기에도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 이 명령을 주시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모임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만찬예배를 지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시간으로 삼지 마십시오. 수동적인 구경꾼이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이 만찬에 참여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떡과 잔을 대하면서 그에 합당하지 않은 죄를 즐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자리에 나와 죄를 회개하고 죄용서함의 근거가 되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만찬예배를 주가 오실 때까지 행합니다. 주가 오시면요? 주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면서 “내가…이제부터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이죠?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포도주로 주와 함께 우리가 만찬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예배를 죽임당하신 어린양께 세세토록 드리며 우리는 주와 함께 먹고 마실 것입니다.

그러니 매주 우리가 드리는 만찬예배는 영원히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예배의 예고편과 같습니다. 여기서 주의 죽으심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영원한 천국에서 주의 죽으심에 세세토록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주의 죽으심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일에 수동적이라면 영원한 천국에서 주의 죽으심을 세세토록 선포하고 찬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겠습니까? 이땅에서 지루하고 재미없고 형식적인 예배로 그리스도를 하찮게 대하면서 천국에서는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영광돌릴 것이라 기대한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모두 주께 받은 명령대로 주님을 선포하기 위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찬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그럴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교회인 유평교회 안에서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