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자녀를 위한 세 가지 선물
본문: 신명기 6장 4절-9절외
설교자: 이병권
여러분은 어린이날이 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극심한 교통체증, 사람들로 가득한 공원, 아이들에게 끌려 다니는 부모들, 좀 더 좋은 것을 생각한다면 ‘선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선물을 기대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합니다. 어린이날에 선물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니까 부작용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마치 당연히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날이 되면 아이들이 당당하게 선물을 요구합니다. 어린이날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아야 하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린이날은 옛날에 못살고 배고프던 시절,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굶어 죽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했던 시절에 아이들이 사람 취급도 못 받았던 어려웠던 시절에 만들어진 날입니다. 지금은 매일 매일이 어린이날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래도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 시간에 제 나름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제가 줄 수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선물을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준비한 선물은 말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세 가지 선물”입니다. 이 세 가지 선물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선물이 아니라 조금 가지고 놀다가 금방 싫증이 나고 고장이 나는 그런 선물이 아니라 정말 평생토록 필요한 선물, 특별하고도 중요한 선물입니다.
물론, 세 가지 선물은 제가 직접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선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 선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이 세 가지가 각 사람에게 선물이 되도록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을 통해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여기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귀한 선물이 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우리 각 사람이 속한 가정 가정마다 더욱 이 선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세 가지 선물은 ‘666’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 나오는 6장을 세 번에 걸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6장의 말씀을 세 번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666입니다. 그럼 이 세 가지가 어떤 선물인지 차례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선물은 신명기 6장입니다. 첫 번째 선물은 가장 직접적이고 영향력이 큰 선물입니다. 우리 자녀가 이 선물을 받았다면 정말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선물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바르게 자라도록 하는 기본을 갖추는 것입니다. 타락한 문화와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고 유혹을 이기며 살도록 돕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손에 쥐는 거와 같습니다. 이 선물은 그만큼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이들 문제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수많은 가정의 문제들, 깨어진 가정의 모습들,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들,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해서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아이들, 요즘 왜 이런 일들이 많은 걸까요? 문제가 되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아이의 문제는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원인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있습니다. 아이의 문제는 그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선물은 “좋은 부모”입니다. 부부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부모를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가 좋은 부모를 가진다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철이 없는 아이들은 그 사실을 당장은 모를 수 있고 좋은 부모의 가치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의 모습과 좋은 부모의 모습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서 정말 귀한 선물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질문해보겠습니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부모는 어떤 모습입니까? 자녀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 부모, 자녀에게 부족함 없도록 모든 것을 채워주는 부모, 그런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요? 요즘 하는 말로 자녀가 ‘금수저’가 될 만큼 성공한 부모라면 좋은 부모라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 가진 것이나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좋은 부모를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판단 기준으로 좋은 부모를 따진다면 말씀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잘못된 평가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좋은 부모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좋은 부모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정말 부모가 이렇게 한다면 자녀 입장에서는 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원리에 따라 분명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부모는 좋은 부모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자녀에게 옳은 것을 가르칩니다. 부지런히 가르칩니다. 집에 있을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누워있든지 앉아 있든지 계속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모든 방법을 사용합니다. 우리에게 도전이 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생각해보십시오. 자녀들이 부지런히 말씀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봅니다. 스마트폰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앉아 있든지 일어나 있든지 누워 있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집에 있든지 학교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스마트폰과 함께 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인생을 배우고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갑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접하고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것에 노출됩니다. 어른들을 흉내 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녀에게 무엇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지 알고 자녀를 가르치고 자녀를 위해 수고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는 보다 우선적인 명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구체적인 방법에 마음을 두고 실제적인 것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앞의 명령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4-5)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누구에게 한 말씀입니까? 자녀입니까? 부모입니까? 자녀가 아니라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기 전에 먼저 순종해야 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가르치는 부모이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고 나서 부모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린이날을 맞아서 정말 최고의 선물을 자녀에게 주기 원한다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그 선물은 내가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부모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부모입니까? 다시 같은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부모로서 여러분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녀들이 보는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자녀가 여러분을 보면서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는 하나님을 사랑해’라고 생각할까요?
‘우리 아빠는 스마트 폰이 빠져 계셔’ ‘우리 엄마는 TV에 빠져 계셔’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는 부모가 자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마음 상한 일을 가지고 불평하고 자녀 앞에서 성도들을 흉보면서, 자녀가 선생님에 대해서 안 좋게 이야기 할 때 함께 선생님을 욕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하는 말은 자녀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부모가 부정적인 말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면, 자녀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크면서 부모의 말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행동입니다. 부모가 하는 것을 자녀가 봅니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말보다 부모가 하는 행동을 더 크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아무리 교회가 중요하다, 아무리 주님이 우선이다, 아무리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말을 해도, 부모가 그와 다른 삶을 산다면, 그와 다른 선택을 하고 세상의 가치에 따라 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웁니다. 내 자녀가 나의 모습을 보고 따라합니다. 내가 아내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내 부모에게 어떻게 하는지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이들이 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통해 배웁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물론,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부족한 자입니다. 부모도 넘어지고 자주 실수하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배워갑니다. 뜻대로 잘 되지 않아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자녀를 양육해갑니다. 그러면서 부모도 자녀와 함께 자라가는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완벽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진실하다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주십시오. 우리는 완벽할 수 없지만 진실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게 진실함으로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녀가 그 하나님을 어려서부터 알아가도록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부모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고 자녀도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부모가 모이기를 힘쓰는 모습을 보고 자녀도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부모가 섬기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섬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녀도 그렇게 사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녀도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반대로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자녀가 그 모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빠가, 우리 엄마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더 사랑하는지 자녀가 알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선물은 에베소서 6장입니다. 첫 번째 선물에서 말씀에 순종해야 할 대상은 부모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선물은 다릅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할 대상이 자녀입니다. 자녀가 이 말씀에 순종한다면 약속된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선물이 자녀에게 직접적이고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선물이라면, 두 번째 선물은 자녀에게 현실적이고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선물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모든 사람이 받기를 원하고 추구하는 선물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원하지만, 정작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고 또 어떻게 얻는지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얻기를 바라는 선물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복”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빌고 복을 구하고 복 받기를 원합니다. 복을 받아서 잘 되기를 원하고 잘 살기를 원하고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그 복이 어디서 오는지 복의 근원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 복을 받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간절히 빌면 복이 올까요? 서로를 향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면 그대로 될까요? 아니면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착한 일을 하면 복이 나에게 주어질까요?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 3절을 보면 우리가 바라는 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3)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 약속은 계명대로 사는 사람이 복을 받고 오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고 장수하는 것은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약속이라고 말씀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이라고 부르는 이 선물을 받으려면 이 약속 앞에 나오는 명령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명령이 1절과 2절에 나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1-2)
여기에 두 명령이 있습니다. “순종하라”, “공경하라” 두 명령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자녀들이 이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릴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부모에게 잘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자녀가 복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자녀들은 똑똑히 듣고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누리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시고 부모를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따라 마땅히 순종해야 할 명령입니다. 뿐만 아니라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녀를 주의 교훈으로 양육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 명령은 무조건적으로 부모에게 다 순종하라 것은 아닙니다. 1절에 조건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조건입니다.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주님의 명령과 뜻에 반하지 않는 것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우선순위에 둘 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라”는 명령과 달리 “공경하라”는 명령은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입니다. 자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여기 공경하라는 말씀은 그 대상에 대해서 가치를 높이 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종이 주인을 대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자녀는 부모에 대해서 그러한 태도로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 있는 자녀 된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시되 순종하기 전에 먼저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불평하면서 원망하면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짜증내면서 인상을 쓰면서 투덜대면서 부모의 말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 된 분들에게도 말씀드립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자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십시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녀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때로는 정말 엄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녀를 위한 두 번째 선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선물은 로마서 6장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여기 말씀에서 은사라는 말이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이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어떤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어떤 대단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영원히 망하는 인생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선물,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최우선순위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과제이자 기도제목이자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다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가지고 그 죄를 따라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될 죄인일 뿐입니다. 지금은 웃고 떠들며 자기 꿈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인생에 대해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인생에서 그 행한 그 모든 것들이 헛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의미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모든 삶의 순간이 의미를 찾게 됩니다.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짧은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은혜를 경험하며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제대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여전히 죄의 문제가 남아있고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서 여전히 마귀의 권세아래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죽어있는데 무엇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생명이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명이 없으면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불쌍한 영혼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막막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정말 이 선물을 받기 원한다면, 이 선물을 정말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이 선물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합당한 때에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위해, 자녀가 이 선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이 선물을 구하는 자가 되도록 모든 방법과 수고와 마음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서부터 자녀와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신앙을 위한 활동을 다른 것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참여하도록 권하고, 부모가 실제적인 것들을 도와주며 교회학교 교사들과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하도록, 교회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부모가 할 수 없는 것도 있음을 기억하시고 자녀를 위해서,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곳에 오셔서 말씀을 듣고 계신 분들 중에 아이가 되었든, 어른이 되었든 관계없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한 분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선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정말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누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겠습니까? 누가 자신의 생명을 원수를 위해서 희생하겠습니까?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그 사랑의 넓이가 얼마나 광대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전과 다르게 하나님을 위한 감사의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선물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선물을 받은 자로서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받은 그 선물을 여러분의 자녀도 받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어떻게 자라길 원하십니까? 나의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정말 주님을 위해 살며 주님 안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발견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자녀가 되길 바라지 않습니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주님 안에 두고 주님 안에서 행복해하며 그렇게 주님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녀가 되길 바라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그것을 바랍니다. 제 자녀들이 모두다 주님 안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며 주님으로 만족하고 주님으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자녀에 대해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만약 여러분도 저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면, 오늘 말씀드린 자녀를 위한 세 가지 선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좋은 부모가 되십시오. 그리고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훈련시키시고 부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치십시오. 뿐만 아니라 자녀의 구원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일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참으로 귀한 축복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깨달아 알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그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녀를 사랑하기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완벽할 수 없지만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