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일꾼과 그 필요공급
본 문: 고린도전서 9장 3-10절
설교자: 조 성 훈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오늘은 일꾼의 필요를 어떻게 공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교회 당시 사도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12명의 사도 중에 가룟 유다가 돌아선 후 그를 대신할 ‘맛디아’를 세웠으므로 바울은 그들 중에 들지 않았으니 사도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직접 부르신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조건은 첫째가 주님이 직접 부르신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을 받았기 때문에 진정한 사도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일꾼으로서 마땅히 필요를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전국적으로 보면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이런 것들에 대해 항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일꾼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일꾼들에게 반드시 필요를 공급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도 게바나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두고 필요를 공급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는 복음 위하여 이와 같은 권리를 사용하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목자가 있는데, 하나는 삯꾼 목자이고 또 하나는 진정한 목자입니다. 삯꾼 목자는 돈을 위해서 양들을 돌아보는 자입니다. 양들의 상태에 관심이 없고 그저 돈 버는 데만 급급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목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는 한 달 월급이 교육비, 생활비 등을 제외하고 1억이라고 합니다. 업무용 차량이 있고 여가용 차량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런 목자들이 있는가 하면 한 달에 50만원 받아 어렵게 생활하는 목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목회자 자제가 목회를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또한 목회자 자신도 자녀가 목회를 하겠다고 하면 기뻐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단에서 나오는 제물을 가지고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과 밭과 먹을 음식을 공급받았습니다. 성경에서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들도 곡식을 먹도록 놔두라는 것은, 일하는 일꾼들의 필요를 공급하라는 말입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복무를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도 새로운 일꾼들이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에게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셨으므로 우리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급해야 하고 얼마나 공급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한 번도 쌀이 하늘에서 내려온 적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돌아보지 않아도 주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의 어떤 교회는 목자가 직접 성도들에게 헌금을 받습니다. 설교가 끝나면 목자가 뒤에 나가서 악수를 하는데 봉투를 주고받느라 바쁩니다. 어떤 교회는 헌금함에서 나오는 금액으로 목자에게 주는 교회가 있습니다. 때에 따라 성도들의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공급되기 쉽습니다. 어떤 교회는 매달 일정한 주를 정해놓고 그 때 나오는 헌금을 목자에게 줍니다. 그것 역시 불규칙하여 어려움이 됩니다. 성경에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합리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는데, 금액을 정해놓고 공급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주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 성도들이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10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다양합니다. 성도들의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 맞춰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너무 많으면 약한 성도에게 어려움이 될 수 있고 너무 적게 받아도 목회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교회의 일꾼이 교회에서 받는 금액이 각기 다릅니다. 일반적인 소득수준을 맞춰서 목자들에게 공급해주어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일꾼들의 책임이 있고 성도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일꾼들은 돈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주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말씀을 공급하고 교회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목자들의 필요를 합당한 수준에서 공급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목자는 목자대로, 양들은 양들대로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를 벌든지 생활하기에 부족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출이 많아지면 십일조에서 얼마를 가져다 쓰지는 않으십니까? 여유분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이와 같은 책임을 다할 때 교회가 발전해가고 부흥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