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본문: 누가복음 21장 20~33절
설교자: 조정의
3주에 걸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서 나누신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감람산 강화”라고 부르는 이 말씀의 주제는 “종말”입니다.
감람산에 앉아 예루살렘을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종말론 강의는 바로 이 거대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40년 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은 무너졌지만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것은 종말의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환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시기 전에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앞으로도 없을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마 24:21). 그리고 그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고(마 24:29) 사람들이 무서워 기절할 것입니다(눅 21:26).
이것이 바로 “인자의 징조”이고(마 24:30), 그때,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종말론 강의를 함께 정리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왜 주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는지 깊이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종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지식적으로 유익을 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자녀를 두고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데, 한국에 일어날 엄청난 재난에 대한 소식을 미리 알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자녀들에게 그 재난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심정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잘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잘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해를 당하지 말고 잘 대처해서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정이 그와 같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무서운 환난을 잘 대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이 해를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그런 간절한 심정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종말에 관한 가르침을 정리해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주님의 제자인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 배우기 원합니다.
1. 예루살렘 멸망(20~24절)
21:20절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먼저 예수님이 바라보신 가까운 미래의 환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습니다. 20절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성 밖을 수많은 군대들이 에워싸는 것을 볼 때, 곧 이 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비할까요?
21절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21절). 환난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뿐만 아니라 주변 유대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안전한 지역으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진짜 심각한 지역은 예루살렘 성이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피신하라고 하시고,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촌) 성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에워싼 군대들이 곧 성을 파괴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이 완전히 파괴되고 백성이 죽임을 당하며 끌려간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BC 586년 바벨론에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수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하며 포로로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 무서운 재앙이 다시 한번 제자들이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예루살렘 성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일어날 모든 환난이 아무 의미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이라고 하셨습니다.
22절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무슨 의미일까요? 실제로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거역할 때 이와 같은 징벌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26장 31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대항할 때 “내가 너희의 성읍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 2세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광야에 모아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언약을 맺을 때,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한다면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신 28:53).
그 이후로도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호세아, 미가, 스가랴 등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를 대적하고 거절하는 백성을 징벌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사 34:8; 렘 5:29; 6:1~8; 26:1~9; 46:10; 50:27; 단 9:26; 호 9:7; 미 3:12; 슥 8:1~8).
특별히 제자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성전에 대한 징벌이 기록된 말씀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왕상 9:6~9).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실제로 586년(370여년 후) 하나님은 자기에게 돌아선 백성을 말씀하신 그대로 벌하셨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높은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이 재건되고 예루살렘 성이 복원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자기 하나님을 거절했을 때, 결정적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땅에 온 하나님을 그들이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때(요 1:11),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을 예루살렘과 그 성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 며칠 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손에 의해 죽게 될 것입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치며 자기 하나님을 십자가에 없애 죽이라고 외치는 백성들의 손에 의해 말입니다(마 27:25).
가까운 미래에,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40년이 흐른 뒤, 징벌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날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날에 어떤 재앙이 있을까요?
23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절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 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학살과 살육이 계속되는 그 날에 아이 밴자들(임산부), 젖 먹이는 자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큰 환난을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백성에게 임한 무서운 진노를 피해 빨리 도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수많은 사람이 칼날에 죽임을 당할 것이고, 또 수많은 사람이 이방에게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예고하신 예루살렘 멸망의 참혹한 모습입니다.
40년 후 실제로 예루살렘에 이러한 무서운 환난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로마 티투스 장군의 군대들이 성을 에워싸 완전히 고립되었을 때 굶주림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삶아 먹었습니다. 약 11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습니다. 9만 7천여 명의 백성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된 자들은 애굽이나 제국 여러 영토 곧 이방 지역에 사로잡혀 갔고, 건설 현장에서 강제노역하거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던져졌습니다.
참 무서운 환난입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죽거나 끌려가고, 성은 박살 났습니다. 완전히 끝이 난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4절)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방인의 때”라는 기한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참 신비로운 표현입니다. “이방인의 때”. 그때가 다 차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찰 때까지 하나님을 거절한 유대인들은 억압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자기 골육 유대인을 간절히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여기에도 기한이 나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그때까지는 이스라엘의 더러가 우둔하게 됩니다. 유대인이 멸망 받음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풍성히 누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롬 11:11~12). 그동안 유대인 중심으로 흘러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 중심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럼 유대인을 위한 미래는 이제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방인의 때가 차고 나면” 밟혔던 유대인들이 속량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이 두 번째로 나오는 “인자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본 먼 미래에 어떤 징조와 함께 그날이 오는지 살펴봅시다.
2. 인자의 징조(25~28절)
25절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절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이방인의 때가 차고 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받고 나서,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피와 같이 됨-계 6:12),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하늘의 권능들(천체)이 흔들립니다(마 24:29; 사 13:10; 34:4). 계시록에 보면 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낮 삼 분의 일에 비춤이 없다고 말합니다(계 8:12). 온 세상이 암흑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바다와 파도에도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계시록 말씀에 보면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 땅에 쏟아져 땅, 수목의 삼 분의 일이 타 버릴 것”을 말합니다(계 8:7).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의 삼 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이 삼 분의 일이 죽습니다”(계 8:8~9).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면 무서운 파도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외에도 계시록에 기록된 이 날의 징조는 끔찍하고 무섭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갖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서워할 것입니다. 기절할 정도로 무서워할 것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염려하여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일 것입니다.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공포를 아십니까? 이 날엔 지구 전체가 그 비행기처럼 요동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마침내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27절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자주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십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능 그리고 영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시며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무서운 징조, 그리고 무한한 능력과 영광을 지니신 왕, 예수님의 재림. 이 일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절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이런 일 즉 하늘에 무서운 징조가 일어나고, 땅과 바다가 흔들리고, 마침내 인자가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는 것입니다.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났지만 뭔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전에는 일어나지 못했고 머리를 들지 못했던 것이죠. 2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방인들에게 밟혀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에 유대인들은 마침내 머리를 들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 “너희” 곧 유대인의 속량이 시작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태복음에 따르면 인자가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는 또 다른 대상이 등장하는데, 바로 “땅의 모든 족속”입니다. 이방인을 가리키는 표현이죠. 그들은 인자가 오는 것을 보며 통곡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0).
왜죠? 그들에게 주어진 기한이 이제 끝났고 그들에 대한 심판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일어나 머리를 들고 자기를 속량하실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유대인을 회복하실 때가 이른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날에 하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마 24:31) 천사들을 보내실 것이고, 그 천사들이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대적으로 온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막 13:27).
이것이 장차 유대인에게 임할 속량의 날입니다. 인자가 오시는 그 날에 이런 구원의 역사가 유대인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사도 바울은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고 나서 온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가 인용한 이사야 59장 20절 말씀처럼 시온 곧 예루살렘에 구원자가 임할 때,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구름을 타고 다시 임하실 그 때, 그분은 경건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돌이키시고 그들의 죄를 씻으실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분을 믿는 자를 속량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유대인과 맺으신 아브라함, 다윗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고 자기 백성의 땅을 찾아주시며, 자기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그 나라를 다스림으로써 말입니다.
3. 대비하라(29~33절)
자,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고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잘 알고 그 위기를 피하라고, 대비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 비유를 더해주셨는데, 29절과 30절에 그 비유가 나옵니다.
29절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절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예수님의 비유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였는데, 다른 모든 나무를 통해서도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감람산에 무화과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이 비유는 생동감이 넘치는 비유였을 것입니다.
겨울에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습니다. 겨우내 딱닥 하고 생명력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가지가 연하여지고(마 24:32), 싹이 나고 잎사귀를 내면 곧 여름이 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5~6월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예수님은 단지 계절이 돌아온다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싹이 나고 잎사귀가 나면 곧 열매를 맺을 것을 너희가 알지 않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무가 보여주는 신호를 읽을 줄 알았습니다.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마 24:32; 막 13:28). 나무를 보면서 가지가 연해지는 징조, 싹이 나는 징조, 잎사귀가 나는 징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열매 맺는 날이 곧 올 것을 기대하고 대비하는 것처럼, 조금 전까지 말씀하신 징조들이 올 때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31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에게 속량이 찾아온 날부터 이 땅에 시작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아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실 것을 말합니다.
그 전에 일어날 여러 징조들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고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강조하며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큰 환난이 일어나고 일월 성신에 징조가 생기고 바다와 파도가 요동하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이는 환난의 시기가 길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한 세대 안에 징조의 시작부터 인자의 임재까지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 13:20)
환난은 극심하겠지만 그 기간은 아주 길지 않을 것입니다. 한 세대 안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징조가 일어날 때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구원하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속량의 날을 준비하는 그들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3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아주 강력한 표현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한 말은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말 계획표가 말씀하신 그대로 조금의 오차 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증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어떻게 말씀에 반응해야 했을까요? 흥미롭게도 그들의 세대 안에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징조의 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미리 이것을 알려주시고 피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AD70년 11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9만 7천명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은 정말 예수님의 경고를 기억하고 잘 대비했을까요?
유대인의 반란은 66년부터 열심당원을 통해 시작되었는데, 로마 정부는 그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여러 번 예루살렘을 위협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67년도에는 갈루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갑자기 공격하고 에워쌌는데 쉽게 점령할 수 있었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갑자기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거민의 많은 숫자가 그 공격에 놀라서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스도인 중 많은 사람이 요단 강 건너편 산지 마을 펠라로 숨었고, 일부는 리바누스 산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래서 70년 최후 대접전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무너지는 성에서 완전히 피신했습니다. J. C. 라일은 제자들이 “주님의 충고에 따라 행동했고, 마지막 포위 때에 있었던 비참함을 피했다”고 말합니다(351p). 그들은 잘 대비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의 말씀은 유대인에게 맞춰진 종말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은 “이방인의 때”입니다. 아직 충만한 수가 채워지지 않았고 유대인의 회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이 거절했기 때문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우리에겐 일월 성신의 징조가 없습니다. 천체가 흔들리고 바다가 요동치는 환난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 오실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주님께서 큰 소리와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죽은 자들 그리고 그 때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 순으로 그 음성을 듣고 공중으로 끌어 올려질 것입니다. 여기도 구름이 나오죠? 예수님께서 공중에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공중에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영원히 우리는 주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인인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주의 공중 재림입니다. 휴거라고도 부르는 이 날은 아무런 징조가 없습니다.
현상으로서 세상에 난리와 소요에 대한 소문이 일어나고 성도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겠지만, 유대인에게 있을 그런 대환난은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환난이 있기 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재난과 핍박을 경험할 때마다 주 오심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자세하게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는 주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주가 모든 믿는 자를 공중으로 끌어 올리실 때 당신은 이 땅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환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대환난 끝에 주가 이 땅에 임하실 때 그것을 통곡하며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대비하십시오. 믿는 자를 불러 공중으로 끌어올리시기 전에 그 속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시기 바랍니다. 그 방주에 타는 방법은 돈도 명예도 열심도 아니고 오직 믿음입니다.
둘째로 위로를 받으십시오. 바울은 우리가 어느날 주님의 호령에 따라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을 말하고 나서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살전 4:18). 이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를 다시 만나는 날입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와 근심을 벗어버리는 날입니다. 슬픔과 눈물이 씻기는 날입니다. 낮고 천한 삶을 살았더라도 높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반전을 맞이할 수 있는 날입니다. 주를 위해 한 일에 대한 칭찬을 받는 날입니다. 핍박과 고난에 대한 풍성한 보상이 주어지는 날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섬기는 그분이 약속한 모든 것이 실제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성취되는 날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살았던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 날이 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는 그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그 사실이 우리 삶에 진정으로 큰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