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증거는 무엇인가?

본문 : 요한일서 5장 6절~12절

설교자 : 조 정 의

요한일서는 특별한 위험 가운데 처한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를 지키려고 사도 요한이 급히 처방한 백신과 같다. 교회를 위험에 빠뜨린 대상은 그리스도의 원수이자(요일 2:18, 22) 교회를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교사)였지만(요일 4:1), 그들은 한때 교회 구성원이었고 아마도 교사이면서 동시에 지도자였을 것이다(디오드레베, 요삼 9; 요일 2:19). 

요한은 두 번째 편지에서 이런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요이 10-11).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로 성도를 미혹하기 때문이다(요이 7). 그런데, 무슨 근거로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있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이 질문은 매우 적실하고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마다 성경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교회” 간판이 붙은 곳을 다닌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교사와 목사의 이름으로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요한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증거가 무엇인지 확실히 밝힌다(하나님의 증거). 그러면서 이 증거를 가진 자는 생명이 있고, 이 증거를 거부한 자는 생명이 없다고 말한다. 진짜 영생을 가진 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참으로 거하는 자를 이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증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훼손하려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경고했다.

당신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 영생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인가? 요한이 어떻게 그 증거를 제시하는지 살펴보면서 당신 스스로 점검해보고, 당신이 즐겨 듣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소위 ‘교사’, ‘목사’는 어떤지 분별하자.

1. 증거는 무엇인가?(6-8, 10-12절)

본문의 핵심은 “증거”이다. 동사형 “증언하다”(마르투레오)가 네 번, 명사형 “증거(언)”(마르투리아)가 여섯 번, 총 열 번이나 등장한다. 본문은 ‘증거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증언하시는지’에 관해 주로 설명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외적인 증거, 나머지 하나는 내적 증거이다. 둘 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제시하신다.

1) 외적 증거(6-8절)

당시 교회를 미혹한 거짓 가르침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기독론)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누구신지를, 하나님이 친히 증언하신 외적 증거를 통해 밝힌다. 무엇에 대한 증거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이다. 누가 제시하는 증거냐?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하신 증거이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6-8절)

플럼머는 ‘신약에서 가장 난해한 말씀’이 이것이라 말한다. 예수님이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피와 양수로 성육신? /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 / 성례? 물은 침례, 피는 성찬? “임하셨고” – 부정과거분사, 단회적인 역사적 사건). 성령과 물과 피 셋이 합하여 하나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요한은 두 가지 외적인 사건,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성령과 더불어 증언하신 역사적 사건을 그리고 로 설명한다. 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받으신 침례를, 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씻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각각의 사건에 성령께서 함께하셨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각각의 사건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참으로 증언하셨다(요 14:17; 요일 4:6).

①물(요한복음 1장 29-34) –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②피(롬 1장 2-4) –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③성령 – 각각의 사건에서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이

④셋이 합하여 하나 – 예수님에 관한 공통된 증언, 하나의 주장을 한다(두세 증인의 충분한 증언효력, 신 19:15; 민 35:30).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표현에 주목하라. 당시 케린투스(도케티즘)라는 거짓 교사는 인간 예수가 침례 받을 때 그리스도가 임하셨고, 십자가에 오르기 전 떠나셨다고 주장했다. 요한은 그 거짓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님이 증언하신 외적 증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진리의 성령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의 침례뿐 아니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분명히 증거를 제시하셨다.

2) 내적 증거(10-12절)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침례, 죽으심,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었다. 그래서 서신서 초반에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말했다(요일 1:1). 하지만 요한의 독자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60여 년이 흐른 뒤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증언하신 예수님의 외적 증거를 직접 경험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독자에게 요한은 내적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10절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자기 안에 있는 증거’ 곧 내적 증거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내적 증거를 오롯이 느낌이나 감정, 경험이라고 오해한다. 특별집회에서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은 경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찬송했던 경험,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해지는 느낌,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적인 돌봄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의 경험 등.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내가 믿고 있다는 증거,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증거(영생의 증거, 생명이 있는 증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신자 안에 있는 생명, 하나님과 누리는 영생의 결과가 위와 같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내적 증거는 절대로 외적 증거와 동떨어진 경험과 느낌이 아니다. 10절을 계속 보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그분과 관계가 있다는 느낌이나 경험이 분명하고, 섬김과 봉사의 삶에서 보람을 느끼고 칭찬을 받아도,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결국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과 같다. 당신은 하나님이 친히 제시하신 아들에 관한 증거를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으로 믿고 따를 수 없다(당신이 한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당신은 믿어요?).

하나님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자 안에 생명을 주신다. 영생 곧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살아 있는 친밀한 관계, 영원한 사귐을 누리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 안에 그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아들을 하나님이 증언하신 증거대로 믿는 자만이 생명을 얻는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그가 보내신 아들을 통해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들을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거부하면 생명이 없다. 11-12절을 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참고로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증언하시는 이로써 아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증언하신다. 그분의 나심, 침례,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등 아버지께서 친히 증거하신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셨다. 그리고 오늘날 말씀을 접하는 이들의 영혼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증거를 받게 하신다. 하나님의 증거에 따라 아들을 증언하신다(요 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했다(참고. 살전 1:5).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령을 통해 계속해서 증언하고 계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다. 참 그리스도인은 모두 성령의 내적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2. 증거를 받는다면?(9절)

우리는 사람들의 증언도 중요한 증거로 채택한다. 우리는 몇 사람의 합의된 주장을 신뢰한다. 증인의 말이 일치하면 대체로 믿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제시하신 증거는 얼마나 더 크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믿어야 하겠는가?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증거를 보여주실 때 얼마나 더 그 증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9절)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참 증거를 받아 아들을 제대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자로서 우리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태도/자세를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아들이 누구신지에 관한 증언뿐만 아니라 아들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 반대로 미워하시는 일 등에 관하여도 성경을 통해 증언하셨다. 성령께서 그것을 성경에 기록하셨다. 그러므로

첫째, 성경을 인정하라. 하나님의 증거를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성경을 시대착오적 주장이 섞인 고대문서로 보거나, 당시 문화와 관습에 매여있는, 제한을 받는 내용이라고 말하거나, 그래서 오늘날 독자의 상황에 맞게 내용이나 의미를 변경,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주의하라. 물론 성경은 당시 문화, 역사, 저자를 고려하며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나님의 증거인 성경은 결코 문화, 역사, 저자에 제한을 받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볼 때 오류가 있고 불충분한 책이 아니다.

성경(하나님의 증거)에 대한 태도가 곧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다. 성경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만큼 인정하라. 하나님이 실수하지 않으시고 오류가 없으신 것처럼 성경 또한 그렇다. 오직 하나님으로 충분한 것처럼 오직 성경이면 하나님의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사는 일에 충분하다(딤후 3:16-17).

둘째, 성경을 사모하라. 진리가 무엇인지를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그래서 성경의 권위를 철저하게 인정하고 자유주의, 인본주의를 외치는 이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 중에 안타깝게도 성경을 사모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을 거짓과 싸우는 무기로 이용할 뿐,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알고 경험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증거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기를 나타내시지만, 세상에서 가장 또렷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나타내신 아들을 통해, 그 아들을 증언한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다. 이보다 더 좋은 증거는 없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 119:14). 하나님의 증거를 멀리하고 사모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절대 사랑할 수 없다. 

셋째, 성경에 순종하라.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물으셨다(눅 6:46).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분이 말하는 것을 행해야 한다고 하신다. 성경은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 말씀은 순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나는 주님을 따르는 자이지만, 몇몇 동의하기 힘든 말씀은 따를 수 없습니다’라는 말도 주님을 우습게 만든다. 성경에 순종하는 당신의 태도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 당신의 태도를 반영한다.

결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 생명이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삶의 아무런 고난이나 핍박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죽을 것같이 괴로운 고난과 핍박 중에 부활의 능력,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이다. 세상의 온갖 거짓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미혹될 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아니다. 온갖 거짓에 파묻혀도 우리 안에 참 진리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더불어 우리와 영원한 사귐을 가지신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고난은 끝나지 않고 거짓의 유혹도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모시고 그분과 함께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증언하신 증거, 그 증거를 성령이 기록하신 성경을 가까이해야 한다. 성경을 인정하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순종하라. 그러면 우리는 베드로의 권면처럼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것이고(벧후 3:18),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사귐, 기쁨 충만한 영생을 누리며 모든 환난과 거짓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