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왜 사냐고 물으신다면
본문 : 사사기 17장 7-13절
설교자 : 이병권
여러분은 혹시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평생을 걸쳐서 대답해야 하는 어려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 때, 아직 예수님을 모를 때 친구들에게 질문했었는데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넌 왜 사는데?’, ‘그냥 사는 거지 이유가 있냐?’, ‘너 어디 아프냐?’ 여러 대답을 들었지만 만족할만한 답은 없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왜?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내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질문과 답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답으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나의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다양한 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잘못된 답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유,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살면 결국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후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서 바른 답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무엇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오늘은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오해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었던 미가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미가의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손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됩니다.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7)
레위 지파에 속한 한 청년이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청년은 그곳에 더 있을 수 없어서 머물 곳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에브라임 산지로 갔고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됩니다. 아마 부유했던 미가의 집에 묵을 곳이 있을까 싶어서 들렀을 것입니다. 이렇게 미가와 청년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입니다.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9)
레위 청년은 미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인지를 말합니다. ‘나는 레위 사람인데 머물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가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제사장이 없어서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던 미가에게 레위 사람이 제 발로 찾아온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머물 곳을 찾고 있다니 미가에게는 정말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협상에 들어갑니다. 연봉을 제시하며 레위 청년과 계약을 맺는 겁니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10)
특별히 미가는 “나를 위하여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버지라는 표현이 주목할 만합니다. 미가는 분명 레위 청년보다 나이가 많았을 텐데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양자로 받아달라는 말일까요?
아버지는 집안의 리더로서 가족을 인도하는 권위 있는 위치입니다. 그래서 여기 아버지가 되라는 표현은 그런 의미에서 레위 청년도 이 집안의 제사장이 되어 권위 있는 사람으로서 그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미가의 이런 제안에 대해서 레위 청년은 어떻게 합니까? ‘말씀은 고맙지만, 그런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봉사해야합니다.‘ 이렇게 대답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 청년은 사사기에 잘 어울리는 결정을 합니다.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11)
레위 청년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고 미가의 뜻을 따릅니다. 미가의 집에 머무는 것을 만족했고 머물면서 미가의 아들과 같이 됩니다. 미가의 집에서 처음에는 아들이 제사장과 같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제사장이 아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미가는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가뿐만 아니라 레위 청년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미가의 집에 속한 제사장이 되어서 우상을 섬깁니다. 레위 사람이 자기 신분에 따르는 책임을 무시하고 잘못된 방법과 잘못된 동기로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레위 사람에게 어떤 명령을 주셨는지, 어떤 임무가 주어졌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7장에서 한 가정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어서 레위 사람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잘못을 가르쳐주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역할을 해야 할 레위 사람은 자신의 사명과 관계없이 미가의 뜻을 받아들이고 미가를 위해 제사장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미가는 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굳이 레위 사람까지 자기 집으로 끌어들여서 이런 일을 했을까요? 미가는 신당을 두고 신상뿐만 아니라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었고 이번에는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미가가 이렇게 하는 이유,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는 걸까요?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13)미가가 이렇게 했던 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중심에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자신에게 복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다만 복을 받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미가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잘못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답을 나에게 두고 내가 중심되어서 나를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 인생의 목적을 성공에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공을 위해, 성공에 방해가 되는 더 소중한 것들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공에 더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인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에서 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내 인생의 목적을 자녀에게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언젠가 자녀에게 실망하고 삶의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참된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인생의 목적을 둔다면 결국 그 자녀를 통해서 인생의 허무함을 뼈 저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사는가?’하는 질문에 답을 하려면 우리 인생의 목적, 우리가 사는 이유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삽니다. 그래서 말씀과 상관없이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다양한 일들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착각 속에 사는 것입니다.
레위 청년 또한 그러합니다. 그는 레위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따라 삶을 꾸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이용합니다. 앞뒤가 바뀐 잘못된 인생의 모습입니다. 앞에 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뒤에 따라옵니다. 하나님을 앞에 두고 일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에게 목적을 두고,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허락된 것을 사용한다면 그만큼 인생은 낭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고 그 목적을 이루는 일에 헌신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복을 그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이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대로 살다가 영원히 멸망 받는 것이 마땅했는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럼 달라진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왜 사는 겁니까? 우리 삶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은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을 바꾸셨고 그 능력으로 나는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합니다.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고, 예수님이 희생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우리는 이것을 다른 말로 예배라고 합니다. 예배라는 단어 자체가 섬기다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삽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섬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섬기기 위해 다른 것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방심하면 우리는 하나님까지도 나를 위해 이용하려 합니다. 미가처럼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깨어서 내 인생의 목적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 목적이 바뀌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균형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괜찮을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좋아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목적을 바꾸는 순간,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의 시작은 인생의 목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여러분 삶의 목표가 되십니까?
혹시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십시오. 한 때는 정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마음으로 뜨거웠는데, 지금은 아닌가요? 한 때는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최우선이었는데, 지금은 아닌가요? 한 때는 하나님을 섬기며 수고하는 일이 즐거웠는데, 지금은 아닌가요? 혹시 많이 지치셨나요? 생활의 염려와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식어져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무뎌져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먼저 그 마음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크심과 위대하심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그 광대하심을, 그 위대하심을 생각한다면 그 분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높으심과 경이로우심에 자연스럽게 엎드리게 되고 그분을 섬기는 일을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일로 여길 것입니다. 그분을 따르며 섬기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어떤 마음으로 섬기느냐?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냐? 이 모든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정말 놀랍고 위대하신 분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서 그분을 섬기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 중요한 분이지만 나 자신보다는 덜 중요한 분, 내 기분에 따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그런 정도의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그렇게 크게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냥 우상정도로 내가 만들 수 있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미가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 정도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부어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내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도움을 얻는 정도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그 정도의 하나님이라면 내 기분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달라질 것입니다. 내 주변의 환경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꾸 핑계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나에게 램프의 요정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정도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할 일은 하나님을 그 온전하심 그대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내 수준으로 낮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분이십니다. 말씀만으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모두를 만드셨습니다.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와 모든 생명과 모든 지식과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해계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하나님을 섬기고 계십니까? 혹시 이런 하나님은 아닙니까? 나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생각나는 하나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하나님,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하나님, 내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내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무능한 하나님,
누가 하나님을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까?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겨우 이정도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는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분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성경은 하나님을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작게 만들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무능력한 분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그냥 내 마음대로 바꾸며 내 편한대로 길들일 수 있는 분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정말 교만하게도, 정말 겁을 상실해서, 정말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진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섬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섬기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주인과 종이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의 이유, 그 목적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제대로 보십시오. 내 작은 눈으로 하나님을 작게 보고 하나님을 작게 만들지 말고 눈을 감고 크신 하나님을 그냥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을 내 머리 속에 가두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을 그냥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생각할 때, 그 놀라운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할 때, 그럴 때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인생을 살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점검해보십시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크심을 생각하시고 내가 받은 사랑, 그 은혜를 다시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크신 하나님이 작고 작은 나에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말이 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분의 크심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받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하찮고 아무 것도 아닌, 우주에서 한 낱 점도 되지 않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분을 섬깁니다.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는 그분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정말 그분만을 섬기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그분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받은 사랑을 기억함으로 사랑으로 행하고 사랑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 그 목적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