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의 승천
본문: 누가복음 24장 50절~53절
설교자: 조정의
이제 누가복음의 마지막 본문입니다(129번째). 누가는 예수님에 관한 마지막 기록을 4구절에 기록했는데(1151구절), 이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을 담고 있습니다(행 1:2). “승천”(昇天)의 뜻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해 보니 “예수가 부활한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고 하늘(天)에 오른(昇) 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세속적인 사전의 정의지만 정말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받으신 후에”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 보이셨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3). 제자들이 보고 듣고 만져볼 수 있도록 자신을 나타내 확증하셨고, 말씀을 풀어 설명하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자신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기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리고 그 사역을 위해 위로부터 입혀질 능력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눅 24:49).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면, 그들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사명을 주신 후,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 땅에 주님께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시고(축복), 그들 앞에 마지막으로 놀라운 기적(승천)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축복), 마지막 기적(승천), 그리고 제자들의 반응(큰 기쁨)을 살펴보고, 오늘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제자로서 우리가 어떤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주가 맡겨주신 사명을 다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1. 마지막 말씀: 축복(50절)
50절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베다니 앞”에서 주어졌습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낼 때 숙소로 삼으신 곳이자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가 살던 동네이기도 했습니다(요 11:1).
제자들이 모여있던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베다니까지는 약 3km 떨어졌는데(요 11:18, “오 리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의 혼잡한 거리를 지나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감람산 서쪽 경사면을 올라가 동쪽 능선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베다니 앞”이라고 했으니까, 베다니에 아직 이르기 전에 있는 곳인 감람산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마지막 때에 관해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마 24~25).
예수님이 “데리고” 가신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 즉 사도와 여러 남녀 제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눅 24:33). 사도행전 1장 10절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을 보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락방에 모인 사람의 수가 120명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베다니 앞 감람산까지 나아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입니다. 아쉽게도 누가는 축복의 말씀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추측해볼 수는 있습니다.
먼저 손을 들고 백성을 축복하는 장면은 구약 레위기에서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했던 장면과 유사합니다(레 9:22; 민 6:23~26). 여호와 하나님은 제사장 가족인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백성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예수님이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신 내용도 이와 유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와 항상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너희에게 복주시고, 너희를 지키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누가가 기록한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에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구약의 축복과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자세히 보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돼라”는 명령어지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돼라”는 ‘너희가 이렇게 하라’는 말이지만, “되리라”는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 덧붙이면 예수님이 하신 축복의 말씀이 더 명확해집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 20).
한 마디로 예수님은 이렇게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약속한 성령을 통해 내 능력으로 너희를 지키고 은혜와 평강을 베풀며 담대하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실제로 사도들이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정말 놀랍게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엄청난 환난과 핍박을 당했지만, 유대와 사마리아로 피해 거기서도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땅끝까지 이르러 온갖 반대와 어려움을 만나도 끝까지 주님을 증거합니다.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 아니라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사도들이 신실하게 순종하여 예수님을 증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증인인 우리에게도 주님은 같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주님을 증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성령을 통해 주님의 증인이 되게 만드실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듭니까? 두렵습니까? 내 힘으로만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축복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 복을 주시고 은혜와 평강을 베푸시며 여러분을 지키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축복의 말씀을 아침마다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리고 주님 주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가 주신 사명대로 매일매일 예수님을 담대하게 선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 마지막 기적: 승천(51절)
51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마지막 말씀인 축복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마지막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승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구름이 가려서 제자들은 그분을 더 이상 보지 못했습니다(행 1:9).
사람이 땅에서 올려져 하늘로 간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일 즉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이 보여주신 ‘승천’을 보여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런 장면은 오직 에녹(창 5:24)과 엘리야(왕하 2:11)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승천은 에녹과 엘리야에게 일어난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단지 이 땅에서 들려져 하늘로 올려지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빌 2:9~11). 이렇게 예수님의 승천은 단지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누가복음 주석에 예수님의 승천이 담고 있는 의미를 11가지나 제시하고 있는데, 짧게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구원 사역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이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자기 비움이 종료되었고 이제 모든 능력과 권세를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위에서 얘기한 부분). 땅에서 하늘로 자리를 옮기셨을뿐 아니라 종의 형체로 자기를 비우신 모습에서 하늘 보좌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승천은 곧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실 것을 확증합니다(요 16:7). 예수님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실상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유도 예수님이 승천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과 함께할 거처를 마련하신다는 의미를 갖습니다(요 14:1~3). 예수님은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제자들을 떠나고, 거처를 마련하고 나서 제자들을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이유 중 하나는 우리와 함께 할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의 승천은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 복음 선포의 일이 제자들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엔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말입니다.
여섯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이제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엡 1:20~23), 일곱번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셨다는 것을 확증합니다(요일 3:8).
여덟번째로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보좌 옆에서 모든 자비로 우리를 동정하며 신실하게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히 2:17; 4:15; 7:25).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승천은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합니다(행 1:11).
이처럼 승천은 제자들에게 참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에서 승천의 기적은 이천년 전에 그 능력이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의 머리로 계시며,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신실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할 처소를 지금도 예비하고 계시고, 그 처소에 들어갈 백성을 우리를 통해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불러 모으고 계십니다. 이런 면에서 승천의 기적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 그 능력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놀라운 기적에 함께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저 하늘나라, 주님이 마련하고 계신 그 아름다운 처소에 함께 살아갈 백성들을 주님의 명령에 따라 불러 모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삶과 건네주는 말로, 회사에서 직장 동료에게 보이는 말과 행동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에 참여합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전하는 말씀과 학생회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 청년들과 함께 먹고 교제하는 가운데 우리는 계속해서 이 놀라운 기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우리 삶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똑같이 세상의 염려와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사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 제자의 삶일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하루 24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기적에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제자의 반응: 기쁨(52~53절)
52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절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이제 제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승천은 놀라운 기적이지만 한편으로 매우 슬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구름 속으로 사라진 예수님을 찾으려는 듯 하늘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행 1:10). 제가 당시 제자들 중 하나였다면 마음이 공허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무척 슬펐을 것입니다. 종종 삶이 힘들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장소를 찾아와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했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천사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크게 기뻐한 이유입니다. 주가 곧 오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주가 곧 오신다는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큰 기쁨으로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에 뛰어들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하는 일이 힘썼습니다(행 1:14). 언제든 성령이 오시면 그 능력으로 예수님을 선포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못 되어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얼마나 폭발적으로 모든 성도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담대히 증언했는지 누가가 기록한 두 번째 책 사도행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뜻이면 내년에 함께 그 생생한 역사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여러분, 왜 매주 드리는 예배에 늘 기쁨이 넘치지 못할까요? 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기 어려울까요? 왜 힘 있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요? 주가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머리로는 압니다. 언제라도 주가 오실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안 믿는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우리 마음이 눌어붙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여러분 우리의 힘은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경의 마지막 책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승천하신 주님이 우리를 만나러 다시 오시면 얼마나 기쁠까요? 다시는 눈물이 없는 하늘나라이지만 너무 기쁘고 벅차서 눈물이 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손과 발을 보며 정말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지면 정말 최고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결산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은사, 많은 기회를 통해 주변에 있는 영혼에게 얼마나 주님을 신실하게 나타냈는지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맡기신 사명이고, 주님이 제자들을 다시 만나 결산하실 일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