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본문: 민수기 6장 22-27절
설교자: 조정의
민수기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의 암울한 역사를 가득 담고 있는 책이다. 메추라기를 먹다 말고 심히 큰 재앙으로 심판받은 사건(11장), 미리암이 나병에 걸린 사건(12장), 가나안 정탐 후 백성이 원망했다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약속의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받은 사건(14장), 그 경고를 무시하고 약속의 땅에 쳐들어갔다가 아말렉과 가나안인에게 무참히 죽임당한 사건(14장), 모세에게 반역했던 고라 자손을 땅이 갈라져 삼키고 동조한 이백오십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의 불이 불살라 죽인 사건(16장), 그 사건을 못마땅히 여겨 불평한 만 사천칠백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께서 염병으로 죽이신 사건(16장), 모세마저도 불순종하여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가게 하신 사건(20장), 길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을 불뱀으로 죽이신 사건(21장),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이유로 이만 사천 명의 백성을 염병으로 죽이신 사건(25장)이 모두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민수기 초반에 레위 지파 각 족속이 각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부분 가운데 본문이 등장한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22절). 여호와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23절). 그냥 듣기 좋은 말을 해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같이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약속하셨다(27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기를 기뻐하셨다.
본문을 ‘아론의 축복’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여호와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것이 합당하다. 아론이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축복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유효할까? 물론, 그렇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요한은 사랑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간구했다(요삼 1:2). 신약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뢰면 평강을 주셔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고 약속한다(빌 4:7). 또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강권한다(히 4:16). 모두 본문에 기록된 축복들이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으로 구약 성도나 신약 성도나 차별 없이 복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새해 첫 주일, 본문에 기록된 축복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축복하기를 원한다. 올해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당신의 삶에 가득 부어주시기를 간구한다.
1.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24절)
우리는 이 문구를 보고 가장 먼저 여호와께서 주실 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그것에 모든 관심을 쏟으려 한다. 하지만 모든 복의 근원은 “여호와”라는 언약의 이름에 있다. 아무리 하나님이 생명에 속한 모든 복을 가지고 계시고(약 1:17)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소유하고 계셔도(엡 1:3)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더 정확히 말해 원수 관계에 있는) 분이라면 그 어떤 복도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특별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은 새 언약의 백성이다(히 9:15). 우리가 받는 모든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 하나님께 받는 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라고 말씀하시면서(27절) 언약의 이름 여호와를 빠짐없이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와는”(24, 25, 26절). 또한 언약의 대상인 “너”도 반복해서 나온다(24, 25, 26절).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라서 우리는 그분께 복을 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복을 구할 수 있을까? 사실 너무나 많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약 1:1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엡 1:3). 모든 신령한(영적인) 복과 그 밖의 모든 좋은 선물(은사)를 우리 하나님이 주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바라는 때에 바라는 방식대로 주시지는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복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때에 최고로 좋은 방식으로 주시기 때문이다. 새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한다.
2.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4절)
하나님께 우리를 지켜달라고 구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누군가로부터 보호하신다. 우리는 두루 다니면서 우리를 삼키려 하는 원수가 누군지 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다만 악에서(악한 자에게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제자들과 그들을 통해 구원받을 모든 사람을(우리 포함) 위한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예수님은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아버지께 요청하셨다(요 17:15). 악한 자 곧 마귀에게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마귀적 위협과 유혹에 빠져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간청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참된 복이다.
우리는 육신이 건강한 것을 복이라고 여긴다. 건강하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여러 가지 질병이나 사고를 겪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영적인 건강 또한 마찬가지다. 영적 질병이나 실족을 겪지 않고 건강한 속사람을 가지고 진리 안에서 견고하게 서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하는가?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 119:114).
예수님도 마귀의 공격을 말씀으로 이기셨다(마 4장). 현실에 믿음을 두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에 믿음을 두신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으로 하나님을 우리의 피할 은신처와 방패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언제 어디서나 눈동자처럼 보호하실 것이다(시 17:8). 아무리 당신의 믿음을 뒤흔드는 인생의 파도를 만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바라는 당신을 약속하신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지키실 것이다. 새해 하나님께서 당신을 언제 어디서나 보호하시고 원수가 당신을 해하지 못하도록 지키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3.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5절)
세 번째와 네 번째 복은 아름다운 신인동형론이 사용됐다. 의인화가 인간 외의 동식물과 사물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신인동형론은 하나님께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얼굴과 같은 형상이 없으시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사람이 얼굴을 누군가에게 비추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묘사한 것이다. 시적인 표현인 ‘얼굴을 비추다’는 시편에 많이 사용됐는데, 거의 대부분 하나님께 얼굴을 비춰달라는 요청과 함께 “구원”을 베풀어달라고 요구할 때 사용됐다(반대로, ‘얼굴을 감추신다’):
-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31:16)
-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3)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시 80:19).
그래서 25절의 축복은 구원의 은혜 베푸시기를 간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하나님은 구원하고자 하시는 이에게 사랑과 자비의 얼굴빛을 비추시고 은혜로 그를 구원하신다.
새해 간절히 바라는 복은 우리 가운데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사랑과 자비로 바라보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시 119:135).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비추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때, 말씀을 비춰 가르치심으로 그렇게 하신다.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롬 10:17; 벧전 1:23), 말씀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벧후 3:18). 새해 전파되는 말씀을 들음으로, 성도들과 교제 가운데 주고받는 말씀의 교훈을 통하여 영혼이 거듭나는 은혜가 부어지기를, 우리 영혼이 자라나는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4.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이 표현은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실 때 사용됐다. ‘얼굴을 비추는 것’과 거의 유사한 표현으로 봐도 좋다. 다만, ‘얼굴을 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들에게는 무서운 심판과 저주를 내리신다는 부정적 의미도 있다.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하여 그 대상을 향하여 얼굴을 든다. 스마트폰을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도 누군가에게 집중하여 의미 있는 말을 전달하거나 나의 모든 관심과 애정을 쏟을 땐 반드시 대상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 축복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애정을 쏟으시며 우리에게 집중하여 그분의 평강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신약 성경에서 성도를 축복하는 인사말에 대부분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는 것을 발견한다:
-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3)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2)
-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이 1:3)
-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유 1:2)
평강 혹은 평안은 참 놀라운 축복이다. 우리가 바라는 축복은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과 삶이지만, 죄 많은 이 세상은 그것을 약속할 수 없다. 만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절대적인 안정을 보장한다고 해도(가정) 우리가 연약하고 불안정하다. 우리가 가까스로 평안을 찾아 안정을 얻으려 해도, 세상은 갈수록 더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을 제공한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평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 마음에 피어오르는 근심과 두려움을 모두 몰아낸다. 우리 마음과 생각을 불안정한 세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와 그분의 사랑에 두게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키신다(빌 4:7).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 요동하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살아있는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게 하신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때로 불행한 일을 만난 그리스도인이 애통해하면서도 견고한 심지를 보일 때가 있다. ‘심지가 견고한 자’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서 자기 얼굴을 감추거나 피하지 않는 사람이다.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도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드는 사람이다. 욥이 그랬다. 애통히 여기고 울부짖으며 질문을 쏟아냈지만, 그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었다. 그분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예수님이 그러셨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시고 십자가에서 울부짖으면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셨다. 한결같이 신뢰하며 바라보시고 다른 누군가를 향하여 돌리지 않았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평강을 주시고 평강하도록 지키신다. 은혜와 평강은 그렇게 연결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자기를 한결같이 신뢰하며 바라보는 자들을 향하여 고개를 들어 마주보시고 평강을 주셔서 계속해서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게 하신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자기 얼굴을 비추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새해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것이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날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계속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견고한 믿음을 주시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셔서 당신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시기를 바란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