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린양의 진노 Part3:아바돈의 황충들
본문: 요한계시록 9장 1-12절
설교자: 조정의
요한계시록을 적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① 과거 주의, ② 미래주의. ① 과거 주의는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환상과 계시가 과거 수천 년 동안 이미 성취되었다고 본다. ② 미래주의는 앞으로 장차 성취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미래주의 관점에서 계시록을 살펴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일곱인, 나팔, 대접 심판을 묘사한 성경의 기록이 과거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땅 사분의 일이 죽고,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됨,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어두워짐). 과거 주의 관점을 가진 이들은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지만(“그런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윌코크, 114p), 우리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라는 예수님의 예언을 신뢰한다(마 24:21).
미래주의 관점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도, 두 가지 원칙을 따를 수 있다: ① 상징주의, ② 문자주의. ① 상징주의는 계시록에 기록된 내용을 모두 상징으로 미래에 일어날 사건과(황충 =. 탱크, 전투기, 마병대 = 유브라데 부근 중동 국가) 연결한다. ② 문자주의는 계시록의 환상을 문자 그대로 성취될 미래의 역사로 본다. 예로 계시록 9장에 나오는 황충, 마병대는 문자 그대로 메뚜기와 군대다. 여성의 머리결을 가진 메뚜기?
우리는 상징주의와 문자주의에 치우친 해석을 모두 경계한다. 우리는 요한이 본 환상에 상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구약 예언 차용(메뚜기 떼, 욜 2장), ‘같다’x8). 하지만 우리는 그 상징을 미래의 어떤 구체적 대상이나 사건에 억지로 연결 짓지 않는다. 우리는 상징이라는 문자적 특징을 고려하여 계시록 본문의 가장 자연스럽고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령 요한이 묘사한 황충의 모습(7-11절)을 통해 우리는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황충으로 상징된 존재를 통해 미래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또한 각 부분이 주는 의미가 아니라 전체가 주는 메시지에 주목한다(직관적 감상).
미래적이고 문자적인 원칙에 따라 계시록을 해석하면, 1-3장까지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편지한 교회 시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휴거, 살전 4장)으로 끝나고, 하늘에선 천국의 예배가(계 4-5장), 땅에는 대환난(6-18장)이 일어날 것이다. 대환난의 기간은 다니엘의 칠십 이레 예언과(단 9장), 주의 날에 택하신 자를 위하여 환난 기간을 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예언을 고려할 때(마 24장) 7년이 될 것이고, 그 기간 안에 우리가 살펴본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이 쏟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일곱 인의 심판은 각각 거짓 평화, 전쟁, 기근, 사망, 우주적 지각 변동이었고, 앞선 네 번의 나팔 심판은 각각 수목, 바다, 강, 광명체(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을 파괴했다. 지금까지의 환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1/4), 하늘과 땅, 만물이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넷째 나팔 재앙이 끝나고 독수리가 날면서 화, 화, 화가 있을 거라고 경고했는데(8:13), 그 첫 번째 화가(다섯 번째 나팔 재앙) 이어진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나팔 심판의 특징은 귀신(악령)을 통한 심판이라는 것,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될 환난의 말씀을 들을 때(18장까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환난에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환난은 의인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악인을 심판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정의를 나타낸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 당한 이들이 제단 아래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 기도 응답으로서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셨다(계 6장). 둘째, 환난은 죄인이 회개하여 멸망을 피하고 은혜를 입게 하여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혜를 드러낸다. 144,000을 택하여 대환난 기간 동안 모든 민족과 나라 중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계 7장).
마지막으로 계시록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계 22:10-12). 계시록은 처음부터 교회에게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반복하여 명령한다. 미지근하지 말고 뜨겁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요구한다. 지금 불의와 더러움 가운데 있는 자가 계시록 말씀을 통해 경고받지 못한다면 그에겐 소망이 없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환난이 쏟아져 죽는 한이 있어도 결단코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눅 16:31). 한편 거룩하고 의로운 자는 계시록 말씀을 통해 더욱 주님을 기다리며 충성한다. 행한 대로 갚아주실 주님이 앞으로 하실 일을 분명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결국 계시록은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충성할 것인지 확실한 결단을 요구한다.
자, 그러면 일곱 나팔 중 다섯째 나팔 심판을 살펴보자.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1절), 무저갱이 열리고(2절) 거기서 황충이 나왔다(3절). 무저갱은 타락한 천사와 마귀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기 전 임시로 갇혀 심판받는 곳이다(눅 8:31; 계 20장, 화덕의 연기). 황충으로 번역된 아크리스는 메뚜기를 의미하는데(새번역), 선지자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임박할 때, 나팔 소리와 함께 모양이 말 같고 소리가 병거 소리 같은 불꽃처럼 파괴력을 가진 메뚜기 떼가 올 것을 예언했다(욜 2장). 황충의 모양, 고통, 목적을 살펴보며 그 정체, 파괴력, 의미를 생각해 보자.
1. 황충의 모양(7-10절)
황충들의 모양은 말들 같았다. 머리엔 금 관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고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았다(7절). 머리털은 여자의 머리털 같았고, 이빨은 사자 이빨 같았으며(8절), 철 호심경 같은 것을 착용하고, 날개들 소리가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았다(9절). 전갈 같은 꼬리와 살이 있었다(10절).
아랍 속담에 메뚜기는 말 머리, 사자 같은 가슴, 낙타 다리, 뱀 같은 몸, 여인의 머리 같은 더듬이를 가졌다는 말이 있다(마운스, 248p). 요한은 메뚜기의 원래 모양을 과장하여 설명하면서 요엘의 이미지를 덧씌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황충을 설명했다(‘같은’이 8번이나 사용됐다).
분명한 것은 본문의 황충이 일반적인 곤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왔다(3절). 단순한 해충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귀신)라는 말이다(초자연적인 악의 존재). 그러면 그들의 생김새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이들은 말처럼 막강한 전투력과 저돌적인 힘을 가졌다. 사람처럼 지적인 존재다. 금관을 쓴 승리자처럼 이들을 대항하여 이길 수 없다. 퇴치법이나 치료법을 찾아 맞설 수도 없다. 사자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사나운 힘을 가졌고, 철 호심경을 입은 군사처럼 결코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 물리칠 수 없다. 여성의 머리털처럼 치명적으로 매혹하고, 전갈 같은 꼬리와 살로 사람을 쏘아 고통스럽게 한다. 이들이 내는 소리는 고대 전쟁에서 최고의 공포심을 일으키는 많은 말과 병거의 돌진하는 소리다.
요한이 본 환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하나님은 대환난 기간 중반에 무저갱에서 악한 영적 존재를 풀어내어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를 미치게 하실 것인데, 이들은 사납고 무섭고 매혹적이고 막강하며 사람을 매우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2. 황충의 고통(1-6절)
보통 황충은 식물을 파괴한다. 2020년에도 동아프리카에서 8천만 마리의 메뚜기 떼가 3만 5천 명이 먹을 작물을 하루에 먹어 버렸다. 그런데 요한이 본 황충은 식물이 아닌 사람을 직접 공격했다.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4절).
그들이 해치는 건 사람, 그것도 하나님의 인침을 이마에 받지 않은 사람이다. 여섯째 인의 심판이 끝나고 일곱째 인을 통해 나팔 심판이 땅과 바다와 나무에 미치기 전,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셨다(144,000 이스라엘 전도자들, 계 7장). 이들과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선 이들이 황충의 목표물이다. 과거 애굽의 완악한 바로와 그 신하들과 백성들의 집에 메뚜기가 가득 넘치게 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대적하는 완악한 자들을 메뚜기를 닮은 악한 귀신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다(출 10장).
정확히 이 황충이 사람에게 어떤 고통과 괴로움을 줄 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은 그 고통이 전갈에 쏘인 고통과 같다고 말한다. 황충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다(3절). 그리고 그 괴롭게 함이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다(5절). 가장 독성이 강한 전갈은 2시간 이내 성인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심판 도구인 황충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다만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게 만든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6절). 그리고 황충은 정확히 다섯 달 동안만 사람들을 괴롭힌다(5, 10절, 메뚜기 수명, 추수 기간).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황충은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무시무시하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극심한 고통을 주면서도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식물이 아닌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만 전갈처럼 공격할 수 있도록 명령과 권세를 받았다.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고 괴롭게만 할 수 있고 다섯 달이라는 제약 아래 있다. 누가 이들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인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3.황충의 목적(11-12절)
황충들에겐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다(11절). 그는 무저갱의 사자라 불리는데, 히브리어로는 아바돈, 헬라어로는 아볼루온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둘다 ‘박멸자’, ‘파괴자’라는 뜻인데, 사탄 세력 중 높은 계급의 귀신으로 추정된다.
황충은 분명 아바돈의 황충, 아볼루온의 황충이었지만, 모든 것을 철저하게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다스리시는 분은 따로 있다. 바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섯째 천사의 나팔과 함께 땅에 떨어진 별 하나 즉 심판을 수행할 천사가 무저갱을 열쇠로 열였는데, 그 열쇠는 주께서 주신 것이다(받았더라, 1절).
황충에게 전갈의 권세를 주신 분도 주님이다(받았더라, 3절).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분도 주님이시다(이르시되, 4절). 황충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신 분도 주님이시다(5절).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게 하시고 죽음이 그들을 피하게 만드신 분도 주님이시다(6절). 마귀가 욥을 무참히 사납게 해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마귀를 철저하게 통제하시고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게 하신 것처럼, 대환난 때 아바돈의 황충들도 아무리 무섭고 사납고 막강해 보여도 철저하게 주님의 권세 아래 주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심판의 권세를 주셨고, 어린양이신 아들 예수님은 그 권세를 가지고 지금 진노를 땅에 쏟고 계신다(요 5:22).
그러면,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목적이 뭘까? 심판?(9:20). 회개의 기회를 베푸시는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죄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구원자시며, 지금은 부활 승천하여 영원한 왕으로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높아진 마음을 낮출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온갖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돌이켜 예수님만을 주로 시인하고 경배할 기회,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 의를 내세우며 사는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자랑하는 삶을 살게 하는 영생을 믿음으로 얻을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대환난 중반에 황충의 심판을 통해 그 기회를 주시는 주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 그 기회를 주신다. 지금 회개하라.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딱딱한 마음을 가진 완악한 사람은 황충 심판에서 살아남아도 절대 회개하지 않는다(계 9:20-21).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본문을 통해(비현실적,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 그리스도인이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종말의 심판은 나태한 삶을 깨운다. 하나님께서 심판할 세상에 속한 것들에 미련을 버리게 한다. 나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당신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마귀는 이 세상이 영원하고 전부라는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주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영적 각성을 통해 어린양 예수께서 하실 일을 밝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심판 아래 있다. 우리는 마음을 그곳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어야 한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있다(주인과 손이 바뀐다, 사물의 경중이 뒤바뀐다는 말). ‘주종전도’ 되는 삶을 살지 말자(주인 되신 예수님과 종인 우리가 바뀐 삶).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주 우리는 모든 것을 나의 영광을 위해 하고 그것을 위해 주님을 소홀히 대한다. 나의 원함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분명하신 뜻을 거역하고,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내팽개친다. 내가 기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주가 기뻐하시는 일을 미룬다. 이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계시록은 경종을 울린다. 소속이 불분명하다고 경고한다. 주님이 정말 당신 삶에 주인이 되시게 하라. 주께서 당신께 신실하신 것처럼 주님께 신실한 종이 돼라. 언제 주가 다시 오시든지 준비된 삶, 깨어 있는 삶을 살다가 기쁨으로 주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