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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순종하는 자식
본 문: 베드로전서 1장 13-19절
설교자: 조 성 훈
“그 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부 모가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순종’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인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식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었으니 이제는 ‘순종하는 자식’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바라보라
“그 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13)”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마음에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근신하라”는 말은 바른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라”는 말은, 주님이 오시는 날에 연약한 육체에서 해방 받게 될 날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에 새로운 몸을 입고 자유롭게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면서도 악이 함께 있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변화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축복을 생각하고 모든 고통이 끝날 것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선물을 가지고 온다고 하면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 안식의 날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식이 되라
“너 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14-15)” 여러분은 순종하는 자식입니까, 불순종하는 자식입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식에게 순종을 바라는 이유가 합당한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시는 이유 역시 합당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좇던 사욕과 헛된 욕심을 본받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삶이 결국은 헛되고 무익한 삶들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삶을 즐기다가 인생을 망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좋은 집에서 많은 부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삶이 결국 우리 영혼을 메마르게 했을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살다가 죽어 영원토록 고통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부르고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시는지를 실제적으로 체험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진실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실한 사랑을 하기에는 그들의 육체의 소욕이 너무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목숨을 내어 놓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오 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15)” 아버지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자녀인 우리도 그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녀는 아버지와 같은 가치관과 마음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6)”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신 것이 ‘거룩’이었습니다. 죄악되고 헛된 것에서 구별되는 것, 세상 사람들과 육체의 소욕에서 구별되는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육체의 소욕과 대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성품을 보라
“외 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17)”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는 말은 일한대로 보상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절대 누구를 편애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자 식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날에는 많이 배운 사람보다 못 배운 사람이 더 효도한다고 합니다. 네팔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에서 상복을 입고 한 달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부모가 언제 돌아가셨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대다수가 ‘61세’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독립할 만한 나이가 되면 부모가 필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에 경제논리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과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일한대로 보상해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잠시 살다가 하늘에 가게 될 나그네입니다. 이 땅의 나그네 삶을 통해 하늘에서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에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기록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지불한 값을 생각해 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1:18-19)”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하신 값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3억을 주고 사냥개를 샀는데 잠시 여행하고 돌아와보니 친구가 그 개를 보신탕으로 먹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친구는 그 사냥개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속하기 위해 지불한 값은 얼마일까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산 우리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존재입니다.
결론
하 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바라면서 순종을 요구합니다. 저는 얼마 전 ‘벤허’라는 영화의 일부를 보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엄청난 값을 지불하셨는데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고,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잠시 이 땅에 사는 동안 순종하는 자식처럼 주님을 따르고 거룩한 삶으로써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