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장은 인격으로 말한다
본문: 디모데전서 3장 1~13절
설교자 : 이병권
오늘 본문은 교회 인도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혹시 국회에서 진행하는 인사 청문회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가 그 후보를 검증하는 절차입니다. 국회의원들은 후보자가 공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업무 능력과 인성적 자질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청문회를 보면 많은 경우에는 검증을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후보자를 깎아내리고 그만두게 하려고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그렇게 인사 청문회를 하는 것처럼 본문을 가지고 인도자의 자격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이 기준을 온전히 만족시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사 청문회를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흠을 찾아내고 실격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영적 성숙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서 인도자를 세울 때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또한 인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성숙한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인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에 모이는 사람이 달라지고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인도자는 그 모인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그 모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교회 인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면 성도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인도자의 삶은 그 교회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도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들이 갖추어야 하는 자격은 하나님이 모든 성도에게서 보기를 원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자는 교회가 보여 주어야 하는 모습을 앞장서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온전히 이루었다기보다 계속 이루어가는 과정이기에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명령에 따라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 주님이 우리의 목표가 되십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그래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주님에게까지 자라려고 한다면 비록 나는 교회의 인도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본문에 대해서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성장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수고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인도자의 위치는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본문의 지침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준이기에 우리는 이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은 주님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더 주님을 닮아가며 범사에 주님에게까지 자라가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1)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말하며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 말은 신뢰할 수 있는 참된 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모하다는 ‘자신의 마음에 어떤 것에 두다’라는 뜻인데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는 것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되는 것이며 그 마음에 선한 일을 두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감독의 직분’이라고 하니까 좀 어색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라는 명칭이 교단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는 장로와 감독을 같은 직분으로 말씀합니다.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감독과 장로를 구분 없이 함께 사용합니다(행20:17, 28 벧전5:1-2, 빌1:1, 딛1:5-7). 감독과 장로는 모두 목회자로서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로는 유대적인 뿌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표현이고 감독은 헬라적인 표현으로 도시를 다스리는 관원을 가리킬 때 사용했던 단어를 자연스럽게 목회자에게 적용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감독, 다시 말해 장로의 직분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분을 두고 세상적인 가치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을 성취나 보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직분을 받으면 회사에서 승진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일반 성도로 있다가 봉사를 많이 하면 직분이 주어지고 어떤 경우는 돈으로 직분을 사기도 하고 사회적 위치에 따라 예우차원에서 직분을 주기도 합니다. 신앙의 연수가 있는데 아무런 직분이 없으면 괜히 눈치가 보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직분을 얻으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자격과는 관계없이 교회에서 직분을 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단순히 직분이 아닙니다. 직분보다 그 직분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직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직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얻으려는 것, 선한 일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직분을 얻으려고 그 직분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이고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다음 질문입니다. 어떤 모습이 성장한 모습일까요? 어떤 모습이 자격을 갖춘 모습일까요? 본문에 그러한 모습이 나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인도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알려줍니다. 2절부터 7절까지 나오는데 본문을 두 구절씩 묶어서 세 가지 영역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영역은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2-3)
제일 먼저 나오면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책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죄 없이 완벽하다거나 잘못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누구도 감독의 자격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성품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망신스러운 일로 훼손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성품을 평가하는데 기본적인 기준이 됩니다. 모든 성품에 대해서 완벽할 수는 없지만 책망을 받을 수 있는 성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맞을 수는 없지만 0점이 있는 과목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선을 행하고 온유하며 뛰어난 은사를 가졌다 하더라도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결혼생활에 신실하지 못하다면 그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여 범죄에 빠졌다면 그 직분을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영역은 가정입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4-5)
교회는 회사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형제, 자매가 모여 있는 공동체입니다. 내가 속한 가정보다 더 확장된 대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의 자격은 그가 이끄는 가정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보여 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에게 보여 지는 모습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녀에게 본이 되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더 성장해야 할 부분입니다. 고치고 자라가야 합니다.
가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 지혜가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늘 부모에게 공손하고 항상 복종하는 자녀가 있을까요? 건강한 자녀들은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합니다. 때로 사춘기의 아이들은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조건은 넓은 의미에서 적용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한 주석가는 자녀에 대해서 이런 질문들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부모라면 이 항목에 대해서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평온하고 질서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둘째, 자녀들에게 적절한 기대를 품고 바른 성품을 길러주고 있는가?
셋째, 자녀들은 부모를 존중하며 존경심을 보이는가?
넷째, 자녀들은 훌륭한 청년이 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외부의 개입이 없는 한 장차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은가?
세 번째로 살펴볼 영역은 교회와 사회입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6-7)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직분을 맡기기에는 위험합니다. 교회는 물론 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쉽게 교만하게 되어서 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정말로 빠지기 쉬운 덫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신앙의 연륜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깨닫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하룻밤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인도자가 되려면 더더욱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얼마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정할 수는 없지만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신자의 경우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훈련되고 다듬어지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감독은 교회를 넘어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인도자로서의 책임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의 책임이 다가 아닙니다. 교회의 역할을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감독은 세상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어야 하며 세상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을 품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자격을 갖춘 사람을 인도자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돈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신분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잘하거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자가 자격을 갖추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고 헌신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격에 대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가 알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격 있는 사람을 인도자로 세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할이고 앞으로도 우리가 교회를 계속 건강하게 세워가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감독의 자격에 대해서 세 영역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자격에 대한 여러 항목 중에서 실제로 하는 일에 관련된 것은 하나뿐입니다. 그 하나는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 말고 모든 항목이 다 그 사람의 인격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을 세울 때 그 자격에 대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능력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인기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외모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가진 것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인격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닮아 가기 위해서 노력할 부분은 인격입니다. 인격을 다듬어가는 것이 선한 일이고 우리가 계속해서 마음에 두고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장은 인격으로 말합니다.”
다음으로 8절부터는 감독에 이어서 집사의 자격이 나옵니다. 교회에서 감독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실무적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집사가 필요합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세워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면서 “이와 같이”(8)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이와 같은 식으로, 마찬가지로’ 라는 뜻입니다. 집사의 자격도 감독의 자격과 그 기준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사의 자격을 보면 가르치는 항목 외에는 감독의 자격과 비슷합니다. 결국, 감독이든 집사든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격입니다. 성숙한 자로서 교회를 인도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은 인격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더 성숙하고 더 주님을 닮는 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격입니다. 우리가 감독이든 집사든, 교회 인도자의 자격으로 점검할 것은 무엇입니까? 인격입니다.
본문에서 집사의 자격을 살펴볼 때 좀 특별한 내용이 있는데,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는 중에 “여자들도 이와 같이”(11) 여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집사의 아내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집사라는 견해입니다. 이 단어는 둘 다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견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좀 어려운 문제인데 집사의 아내라고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집사의 아내가 되었든지 여자 집사가 되었든지, 어느 쪽이든 여자는 교회에서 구경꾼으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여자도 성숙한 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될 뿐만 아니라 섬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자에게는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13)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름다운 지위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얻는 영예로운 지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존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의 얻는 담대함을 의미합니다. 충성스러운 봉사는 그리스도인으로 가지는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합니다.
제가 집사에 대해서 정리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섬김입니다. 기본적으로 집사는 ‘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당시 이 단어는 사회에서 천한 일,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일을 했던 종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섬기는 일은 품위 있는 일은 아닙니다. 섬김을 받고 위에서 다스리는 일이 더 좋아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주님은 식탁에서 종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식탁에서 집사가 되어서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주님이 집사로서 제자들을 섬기고 스스로 종이 되셨던 본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장한 자의 모습이 바로 섬기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은 섬김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이 가셨던 길을 생각하면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감독이 되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집사로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여주신 본을 좇아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그분의 인격을 우리 삶에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성장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내어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깁니다. 그것이 성장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 만날 때까지 주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가 그렇게 자라가며 주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자격 있는 자가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인도자들은 앞으로도 성경 말씀에 따라 자격을 검증하고 합당한 자를 세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자신을 훈련하여 인격을 갖추어 가고 섬김으로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 가고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은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젊은 지체들을 격려하고 계속해서 그러한 자격을 갖추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회를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자라가며 기쁨으로 헌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