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 충만 교회
본문: 사도행전 2장 37-47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성령께서 베드로의 성경 중심적, 그리스도 중심적, 실천 중심적 설교를 통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살펴보기 원한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청중을 변화 시켜 교회가 되게 하셨고 성령 충만한 교회로 기능하게 하셨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가 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건강한 교회로 기능한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자.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를 바르게 정의하고 모두가 건강한 교회의 지체로서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고자 갈망하게 되길 원한다.
- 교회 되다(37-41)
베드로의 성령 충만한 증언을 들은 청중은 41절 말씀처럼 “신도”가 되었다(44절, “믿는 사람”). 성도, 구원받은 사람, 거듭난 사람, 참 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참 교회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참 교회가 된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단지 등록 교인이 아니었다. 실제로 교회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등록했으면 등록 교인이라 부른다. 성령 충만한 설교를 듣고 참 교회가 된 삼천 명의 신도는 단지 등록한 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42절 말씀처럼 적극적으로 교회의 활동에 참여했다(가르침, 교제, 예배-떡을 뗌, 기도).
둘째, 그들은 단지 출석 교인이 아니었다. 교회 매주 빠짐없이 참석하는 성도 나아가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도를 출석 교인이라고 부른다. 오순절에 교회 편입된 신도들이 교회의 공적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활동이 그들을 교회가 되게 한 건 아니다.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고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셋째, 그들은 단지 세례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군선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장병이 30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이 모두 참 교회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례는 참 교회가 되었다는 공적인 선포이지만 절대로 세례가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그들은 단지 성령의 체험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기도원에서 체험한 하나님, 성령의 뜨거운 임재, 방언과 병 고침 등 초자연적인 체험을 참 교회가 된 증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삼천 명의 신도는 그 어떤 가시적인 성령의 체험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받았고 세례를 받았고 신도로 더해졌다(41절).
정리해보자. 교회 등록했다고 해서 참 교회가 되는 게 아니다. 교회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 해서 참 교회가 되는 게 아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참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령 체험을 했다고 해서 참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 교회가 될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당신이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베드로의 말과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참 교회가 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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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
베드로의 성령 충만한 설교를 들은 이들은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들은 먼저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찔리거나 구멍이 뚫릴 때 느끼는 격한 고통’을 의미하는데(행 16:30; 22:10),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이다. 베드로가 성경을 열어 그들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어 모욕적인 십자가형을 받게 한 예수께서 성경의 예언을 모두 성취하신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보게 하였고, 그 사실을 마주한 그들은 자기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깨닫고 심한 양심의 고통을 느꼈다.
베드로는 어찌할 줄 몰라하는 그들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라”(38절). ‘회개하라’는 명령은 ‘가지고 있는 견해, 생각을 바꾸라’는 의미이다. 다른 말로는 ‘삶의 목적이나 방향,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라’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것,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쪽으로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눅 13:5; 행 3:19).
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다. 그들은 41절 말씀처럼 베드로의 말을 받아 회개했다. 그래서 교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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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베드로는 그들에게 두 번째로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명령했다(38절). 당시 많은 유대인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요한의 세례를 통해 죄를 뉘우치고 회개했다. 하지만 베드로가 말한 세례는 요한의 세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죄를 회개하는 세례가 아니라 죄 사함을 받는 세례다. 예식이 죄를 씻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일에 동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걸 의미한다(벧전 2:24).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신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일에 믿음으로 동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기의 죽음으로 믿는 자가 교회가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기의 부활로 믿는 자가 교회가 된다. 그런 자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으며 세례를 통해 자기 내면에 일어난 영적 실체를 공적으로 고백한다. 오순절에 탄생한 첫 교회는 41절 말씀처럼 세례를 받고 신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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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38절). 참 교회는 성령을 받는다(고전 3:16). 방언, 예언, 병 고침 등의 은사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성령은 여전히 참 교회의 지체 안에서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한다(롬 8:15).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열매를 맺는다(갈 5:22-23).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고(엡 4:3).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요 16:13), 구원을 보증하신다(엡 1:13-14).
참 교회는 성령을 받았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 즉 교회가 아니다(롬 8:8).
회개, 세례, 성령 이 세 가지가 당신이 교회가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만일 당신이 죄에서 돌이킨 경험이 없고(과거, 현재), 당신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으며, 성령 하나님이 당신 안에 거하심을 조금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당신이 교회에 등록이 되었어도, 열심히 출석하고 봉사한다 해도, 세례를 받았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으며, 심지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아도, 당신은 교인인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교회가 될 수는 없다.
한편, 교회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완고한 고집으로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는 패역한 세대에서 교회를 불러 모으셨다(눅 9:41). 베드로는 청중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은혜가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 나아가 먼 데 사람 곧 이방인(약속의 외인, 엡 2:12)까지 미친다고 선포했다. 베드로의 선언처럼 교회가 되는 것은 오직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교회인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당신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당신을 파멸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셨다. 하나님 쪽으로 회개하도록 마음의 방향을 바꾸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씻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행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요청에 따라 성령을 당신에게 주셨다. 그리하여 당신을 영원히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보증하셨다.
아직 교회가 아닌가? 베드로처럼 당신에게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한다. 당신은 구원을 획득할 수 없다. 쟁취할 수 없다. 열심으로 선행으로 봉사로 교회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두 손을 하나님께 내밀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당신이 교회가 되기를 원하신다.
- 교회 하다(42-47)
교회는 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하다”라는 표현은 교회가 교회로서 역할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 역할을 잘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 둘을 하나로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두 사람을 부부가 되게 하고 나아가 부부 (역할을 잘) 하게 만든다. 교회가 교회로서 역할을 건강하게 잘하는 힘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힘에서 나온다(골 2:19).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신부인 교회가 깊이 경험할 때 교회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성령을 받아 교회가 된 이들이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교회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이 초대 교회에서 발견되었다.
42절에 기록된 교회의 여러 활동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의 요약이며, 43-7절까지는 더 구체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건강한 기능을 보면서 성령 충만한 교회로서 우리가 어떻게 기능해야 할지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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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침(42-43)
삼천 명의 성도(26배)가 더해진 교회는 절대적으로 사도의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들에겐 구약 성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와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배울 신약 성경이 없었다. 사도의 가르침이 그들에겐 신약 성경이었다. 그들의 배움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가 아니었고, 46절 말씀처럼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집에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사도의 가르침엔 권위가 있었는데,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하나님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게 하셨다. 사람마다 그들의 가르침을 두려워하며 권위 있게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43절).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부른다(딤전 3:15).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언제나 진리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명령한다(벧후 3:18). 영적 성장, 영적 건강은 지식수준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배우지 않고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 듣자. 성경 공부를 하자. 좋은 신앙 서적도 읽고 매일 경건의 시간과 성경 읽기를 하자. 단, 그 목적은 그리스도를 더 알기 위해서다. 꾸준히 하자. 교회가 된 이들은 교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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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제(42, 44-46)
교제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이다. 기본적으로 나눔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시간과 물질, 대화 등을 공유하여 삶을 함께 나누고 세워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붙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교제다. 42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일방적인 돌봄이 아닌 “서로 교제”를 나눴다. 그들은 같은 장소를 공유했다(“다 함께 있어”, 44절). 그들은 물건을 공유했다(“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4절). 심지어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서로의 필요를 채워줬다(45절). 그들은 날마다 시간을 공유했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 등 감정을 공유하며 음식을 함께 공유했다(46절).
오늘날 교회의 큰 위기 중 하나는 서로 교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몇 사람과 교제하지만, 초대교회처럼 서로 교제하며 삶의 거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깊은 교제권을 교회 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주일 예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된 교회가 된 이들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교제가 부족할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된 것처럼 서로 하나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때 건강을 잃는다. 외롭고 힘이 든다. 그러므로 서로 교제하라. 구역집회 참여하여 삶을 나누라. 교회 안에 홀로 있는 가정을 찾아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 집에 초대하고 찾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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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을 뗌(예배, 42, 46)
초대 교회는 “떡을 떼”는 일에 헌신했다(42절). 삼천 명의 사람이 한 곳에서 떡을 떼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집에서 떡을 떼었다(46절). 보통 우리는 떡을 떼는 것을 주의 만찬 혹은 만찬 예배로 보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 형식과 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예배 형식은 46절에 기록된 것처럼 예배와 교제가 함께 어우러진 형식이었다. 집에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시간 즉 교제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절정에 떡과 잔을 나누며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예배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예배에 기쁨이 있었고 순전한 마음 직역하면 ‘단순한 마음’,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높이려는 하나 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참된 교회는 예배 공동체다. 하나님이 교회를 불러내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에 그러한 기쁨이 있는지 점검해 보자. 우리가 예배 시간에 그리스도를 높이고 기억하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렇게 하는 방법은 각 사람이 건강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자의 삶을 살고, 예배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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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42)
초대교회는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42절). 기도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46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성전에서 매일 세 차례 드리는 기도 예식에 함께 참여했다는 말이다. 아마도 유대인이 교회를 핍박하고 쫓아내기 전까지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성전 예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들이 믿고 섬기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하나님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또한 집에서 날마다 떡을 떼며 교제할 때도 함께 기도했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눅 19:46). 교회의 각 지체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집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몇몇 성도가 모였을 때, 교제하는 중에, 온 교회가 함께 공적으로,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구하고 철저히 그분을 신뢰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는 교회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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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47)
찬미(찬송) 역시 초대교회가 날마다 헌신했던 일 중 하나였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할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했다(골 3:16). 사도의 가르침과 서로 권면하는 교제가 풍성했던 초대교회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일에 헌신했고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교회는 말씀과 교제만 넘쳐서는 안 된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야 한다. 날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함께 찬송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교회의 각 지체가 날마다 살아가며 감사로 채워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함께 드리는 예배의 찬송과 찬양 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심과 감사가 넘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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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47)
마지막으로 초대교회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48절 말씀처럼 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가르침과 교제, 예배와 찬미, 기도가 풍성한 건강한 교회는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온 백성에게 선한 간증을 나타냈다.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때 주님은 그들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교회가 되게 하셨다. 구원하셨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교회는 계속해서 교회를 낳는다. 단지 수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출생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로서 제 역할을 다할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하여 새로운 영혼을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돌아가자고 외치는 초대교회의 건강한 모습이다.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이며, 신약교회의 원리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성경적인 교회는 가르침과 교제, 예배와 기도, 찬미와 전도 모든 영역에서 건강한 활동을 하는 교회다. 당신은 교회인가? 당신은 건강한 교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