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으로 산다는 건
본문: 갈라디아서 5장 25~26절
설교자: 이병권
우리는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그 증상을 보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합니다. 몸에 열이 나면서 계속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감기에 걸렸음을 생각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합니다. 갑자기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장에 문제가 생겼음을 생각하고 병원에 가거나 약을 챙겨 먹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증상만으로 문제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간단한 병일 경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심각한 병일 경우에는 문제를 파악하는데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워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병도 있습니다.
영적인 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병들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도 육체의 병처럼 다양합니다.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죄악 된 모습들이 영적으로 병들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죄로 병들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병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영적인 병은 육체의 병과는 달리 치료 방법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치료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있는 영적인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성령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인해 진리에서 벗어났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갈라디아 교회를 치료하기 위해 오늘 본문의 처방을 내리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5-26)
오늘 본문은 5장의 마지막 두 절입니다. 사실 오늘 이 두 절의 말씀은 단락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자들도 다양하게 단락을 구분하는데 어떤 사람은 5장과 한 단락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6장과 한 단락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25절은 5장으로, 26절은 6장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의 내용이 전 단락의 말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본문의 내용이 다음 단락의 말씀과도 잘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오늘 본문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을 요약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단락의 주제를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을 잠깐 복습하면 우리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계속되는 싸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길 때도 있지만 싸움에서 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분을 좇아 살아간다면, 계속되는 싸움에서 승리하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가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더 풍성히 맺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다 실제적인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했던 표현으로 한다면, 영적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령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성령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믿는 자의 삶을 시작하게 하시고 완성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그 인도하심에 따라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25)
여기 말씀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이라고 합니다. 그냥 보면 마치 사실이 아닌 것을 두고 가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 말씀은 이것이 정말로 나에게도 사실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만드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난 정말 성령으로 생명을 얻었나?’ ‘난 정말 성령으로 살아있는 자인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에이, 너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는 거야!’ 이렇게 대답하며 생각을 거기서 멈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살아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허락하신 생명이 그 생명력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나는 구원 받았어, 난 괜찮아’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내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면 이어지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25)
우리는 여기서 오늘 말씀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주체는 성령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행해야 합니다.
여기 행한다는 말은 걷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도, 우리 삶의 주체가 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기에 우리는 성령님과 발맞추어서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보조를 맞추고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의 욕심과 죄의 유혹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성령으로 행합니다. 성령이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벌어지는 계속되는 싸움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나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산다는 건,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지침을 줍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6)
여기 반복되는 것이 서로입니다. 이어지는 6장에서도 보면 2절에 “서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짐을 서로 지라” 바울은 성령으로 행하는 것, 그 실제적인 적용을 말하면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났을 때 우리는 교회로 더해졌습니다.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생명을 얻었고 교회에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로서 믿는 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며 그 관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신 역사는 우리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밖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나 혼자만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고 비밀스럽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각 개인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각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구원받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행하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후에는 어떻습니까? 거듭난 이후,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후 내가 성령님의 능력을 사는 것은 개인적인 것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그 열매는 나 혼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사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미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13)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그 일을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우리가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에게 목적을 두고 내 욕심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를 섬기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산다면, 육체로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자기에게 집중하고 자기만족을 최우선에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사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으로’(26)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 말씀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건, 무엇입니까?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으로 번역된 단어는 ‘텅 빈 영광’ ‘비어있는 명예’라는 뜻인데 헛된 영광을 구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사람이 주는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받으려고 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난 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야! 난 저 사람보다 더 신실해! 난 저 사람보다 더 경건한 사람이야! 난 저 사람보다 더 쓸모 있어!‘
혹시 여러분이 때때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려는 생각이든다면 그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 헛된 영광을 구하는 일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나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그러한 외적인 율법의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 없는 헛된 영광을 추구했을 때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서로를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6)
여기서 말씀에서 “노엽게 하다”는 말은 사람을 앞으로 불러낸다는 말인데 그 사람을 화나게 해서 도발하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투기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때 둘 중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낫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우월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우월감에 빠지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더 낫기 때문에, 내가 더 잘 생각하고 내가 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손해 보는 일입니다. 무시해야 합니다.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고 인정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열등감에 빠지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기와 질투가 일어납니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시기하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이 있고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을 감추려고 거짓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허세가 삶에 자리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면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월감에 빠진 사람이든, 열등감에 빠진 사람이든, 서로를 비교하면서 텅 빈 영광을 위해 가짜를 얻으려고 서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왜 싸우는 일이 생길까요? 헛된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것을 좇으며 서로 비교하고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자기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우월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있는 것에 대해서 자기 수고의 결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룬 업적을 자랑합니다. 은혜라는 사실을 잊은 것입니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잊어버리고 없는 것에 마음을 두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까 늘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비관적이고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 이러한 늪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의 늪이든지, 좌절의 늪이든지, 우리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영적인 생명력을 갉아먹고 우리를 옭아매어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결국 우리를 죄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헛된 영광을 구하면 공동체는 서로 싸우게 됩니다. 조심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스스로 영광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며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보상받고 싶은 마음과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그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성령으로 살 때 다툼은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와 만족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 때 헛된 영광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진짜 영광을 바라보며 진짜 영광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는 세상이 주는 가짜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헛된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참된 생수를 마신 자는 가짜 생수를 먹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과 진짜 영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기대하시고 그것을 위해 성령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우리 눈을 열어 주셔서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나를 보고 성도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럴 때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고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기 위해 맺어진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고 우리를 새로운 가족으로 불러주셨고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내가 너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보다 낫다’는 사실에 질투하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정말로 중요한 사람입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다 VIP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생명을 내어주시고 피 값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절대로 쓸 수 없는 존재였는데, 폐기처분했어야 했는데 주님의 희생은 우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새로운 관점으로 나를 보고 사람들을 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정말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진 것, 그대로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내가 아무 것도 한 것 없을 때 주님께서 나를 받아주셨습니다. 내가 뭔가 더 한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높아지고, 내가 뭔가를 못한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주님의 생명의 가치를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이보다 높은 가치를 매길 수 없고 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 안에서 무엇보다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주님을 통해서 나를 보고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인정하신 것이 진짜 나의 가치입니다. 때때로 우월감이든 열등감이든 헛된 영광을 구한다고 느낄 때, 주님 안에서 내가 어떤 자인지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3:26)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모습이 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부족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말씀에 나오는 이것이 진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고 성령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