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도에게 일어난 가장 기쁜 일

본문: 요한삼서 1장 1절 – 4절

설교자: 조정의

모든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의 잘됨을 간절히 비는 것처럼 장로도 사랑하는 성도의 잘됨을 위하여 진정으로 힘써 중보한다. 하나님께서 성도가 바라는 형통으로 응답하실 때 함께 기뻐한다. 건강을 되찾게 하시고, 믿지 않는 가족을 교회로 인도하시고, 배우자 혹은 자녀를 주시거나 부동산을 매매하게 하시고, 입학과 취업과 승진과 합격을 허락하실 때. 하지만 종종 하나님이 ‘아직’ 또는 ‘아니’로 답하실 때가 있다. 여전히 질병 중에 있고, 믿지 않는 자녀의 방황이 끝나지 않고, 계속 독신 또는 자녀 없이 살게 하시거나, 경제적 부담을 더욱 지게 하신다. 간절히 원하는 진로가 막히거나 하고 있는 일의 장래가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기도 중에 주님께 묻는다. ‘하나님, 이 일만 허락해 주신다면, 저 가족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될 텐데요’,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저 성도들에게 더 큰 믿음과 감사가 생길 것 같은데요.’ 하지만, 나보다 주님이 훨씬 잘 아신다. 또 훨씬 더 자비로우시다. 참 부모이신 하나님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고 또 주신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주시는 것도 주시지 않는 것도 모두 우리를 위한 일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다(롬 8:28). 우리 눈에 형통한 것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을 통하여 결국 이루시는 “”(아가톤)이 바로 하나님이 성도의 삶에 주시는 가장 기쁘고 좋은 일이다. 그것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

본문은 장로인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성도 가이오를 위하여 축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한은 가이오가 범사에 잘되기를 진심으로 간구한다. 그러면서 가이오의 영혼의 잘됨을 가장 기쁜 일로 여긴다. 이 짧은 축복의 기도문을 통하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성도들을 축복하기 원한다. 주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1.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간구하노라(1절)

열 다섯 구절의 짧은 편지 중에서 본문은(1-4절) 인사말 부분으로 편지의 발신자, 수신자, 축사로 구성된다. 1) 발신자: 곧 사도 요한으로 그는 자신을 “장로”로 소개하길 원했다(1절). 일반적으로 나이든 사람을 칭하기도 하지만 신약에서는 지역 교회 감독 직분을 가리킬 때 사용됐다. 2) 수신자: 가이오에 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심지어 가이오가 요한이 목회하는 지역교회 성도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요한은 장로로서 자신의 영적인 돌봄 아래 가이오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가이오를 가리켜 “사랑하는 가이오”(1절)라 부르고, 다시 한 번 “내가 참으로(알레떼이아)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라고 강조하며 말했다. 축사할 때 또 다시 “사랑하는 자여”라고 불렀다(2절). “속히 보기를 바라”고 “대면하여 말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14절). 가이오는 요한이 사랑하는 “자녀(성도)”중 하나였다(4절).

요한은 또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형제들을 통해 듣게 되었을 때 “심히 기뻐”했다(3절). 그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들을 나그네 대접하듯 신실하게 사랑으로 영접한 것을 칭찬했다(5절). 마치 아버지가 아들이 칭찬받을 때 자기 일처럼 뿌듯해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교회 앞에서 접대받은 자들이 가이오의 사랑을 증언할 때 요한 역시 가이오로 인하여 기뻐했다(6절).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한 자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목회적 권면도 빠뜨리지 않았다(11절). 요한은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듯, 장로로서 성도인 가이오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잘됨을 진심으로 바라고 또 간절히 구한 것이다.

자신을 장로로 소개한 또 다른 사도, 바울은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다고 했다.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후 11:28-29).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를 인도하는 자들을 가리켜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라고 했다(히 13:17). 양들의 큰 목자이신 예수님이 자기 양들을 아시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불러 작은 목자로 세운 자들 또한 맡기신 양들을 사랑한다. 날마다 그들을 위하여 염려함으로 그 속이 눌린다. 누가 약하면 같이 약해지고, 죄로 넘어지면 창자가 끓는 것처럼 애탄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 분의 소명에 따라 맡겨진 영혼을 위하여 자신이 청산할(계산할) 자인 것처럼 일하고 또 기도한다. 

장로는 사랑하는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 진심으로 그들의 잘됨을 바라고 간구한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엡 1:16),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골 1:3),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살전 1:2),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너를 말함은”(몬 1:4).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장로는 성도를 위하여 쉬지 않고 간절히 기도한다(삼상 12:23).

2.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2절)

그래서 2절에 나오는 장로 요한의 간구가 자연스럽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간구는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성을 갖는다. 요한은 시간을 내어 마음을 쏟고 가이오를 위하여 계속해서 이렇게 기도해 왔을 것이다(에우코마이). 간구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영적 잘됨(“영혼이 잘됨”) 그리고 육신의 잘됨(“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 번영과 건강). 먼저 후자를 생각해 보자. 

육신의 잘됨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주께서“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염려와 근심을 버리라는 말씀이지 모든 윤택하고 평안한 삶에 관한 것을 일체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눅 12:29).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원칙에는 “일용할 양식”과 매일의 영적 필요에 관한 간구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마 6:11-13).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어떤가?(골 3:2). 이 또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고 위에 계신 그리스도께 속한 지혜를 구하라는 말이지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축복을 도무지 구하지 말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응답은 주께 달려 있지만,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기뻐하신다는 진리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라. 기도에 응답이 늦는다고 생각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날마다 치열하게 기도하라.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며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호소했던 것처럼 밤낮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눅 18장,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당신을 위하여 기도한다. 당신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 이 땅에서의 모든 평안과 번영과 건강과 행복을 빈다. 고통은 그치고, 질병은 사라지고, 갈등과 상처는 아물고, 건강을 되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녀를 낳고 기르며,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 소망 가운에 영원한 하늘 나라 가족으로 복을 누리기를, 고요하고 평안하고 단정한 삶을 살기를,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며 정직하고 성실한 일꾼으로 인정받고, 교회에서 받은 은사로 섬기며 사랑과 은혜를 누리기를.

3. 영혼이 잘되기를 간구하노라(3-4절)

이제 장로 요한이 축복한 전반부를 살펴보자: “영혼이 잘됨”이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가이오는 그 영혼이 형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나머지 육신의 축복도 똑같이 따라오기를 구한 것이다(2절). 그의 영혼이 잘되고 있다는 것을 요한은 이렇게 전해 들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3절). 그러니까 영혼이 잘된다는 것의 의미는 진리를 계속해서 붙잡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진리를 굳게 지키는 것과 그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행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다. 단지 가이오 뿐만 아니라 어떤 성도라도 그/그녀가 이렇게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소식은 장로를 가장 기쁘게 한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4절).

하나님께서 교회에 장로(목사)라는 직분을 세우신 이유는 바로 양들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함이다.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경계하고 선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진리를 굳게 붙잡게 하려는 것이다(딤후 4:1-2). 게으른 자를 책망하고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오래 참는 이유는? 그들이 진리 안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다(살전 5:14).

성도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 은혜와 놀라운 지혜로 장로의 모든 기도와 수고에 응답하시고 그들을 도구로 삼아 성도에게 가장 기쁘고 좋은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셨다는 증거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올 한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진리로 지켜주시고 진리 안에서 행하게 하신 은혜에 참으로 감사드린다. 계속해서 주 안에 서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이 가장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잘됨과 육신의 잘됨 중 당신은 무엇을 더 원하는가? 무엇이 더 기쁜가? 둘 다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축복이고, 둘 다 성도에게 일어난 기쁜 일이 되겠지만,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다. 육신의 형통은 때로 우리의 영적인 형통에 유익이 되기도 하지만 올무가 되기도 한다(구약 이스라엘 백성, 잠 30:8).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육신의 잘됨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더 큰 영적 은혜와 능력을 주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시기도 한다(고후 12:9). 하나님은 육신의 잘됨을 맹세하지 않으셨지만, 영혼의 잘됨은 보증하셨다(살후 3:3).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의 잘됨을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결국 모든 것이 합하여 우리 영혼이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항상 성도에게 가장 기쁜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다. 지금 주어진 환경, 상황,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복, 족한 은혜가 주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질병에 걸리고 사랑하는 가족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경제적 압박을 받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염려되는 일을 왜 주시는가? 우리 속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시기 위해서다. 우리를 더욱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려고. 우리가 범사에 잘되거나 강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영혼은 잘될 수 있다. 언제나 진리 안에서 굳게 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모두 주의 크신 은혜이고, 주님은 족한 은혜로 당신의 삶에 가장 기쁜 일을 신실하게 이루고 계신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잘되게 하시는 것이다. 범사에 잘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시기를 구하지만, 혹 그렇게 응답하지 않으시더라도 당신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일하시기를 간구한다. 당신의 믿음이 더 자라고, 당신의 사랑이 더 깊어지며, 당신의 성품이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당신의 소망이 더 하늘에 고정되고, 당신의 기쁨과 만족이 더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지며, 세상에 속한 수많은 거짓을 버리고 오직 진리를 굳게 붙잡게 하시고, 그 진리 가운에 행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그렇게 또 새해를 맞이하게 하시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어진 경주를 완주하게 하시기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