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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서로 차별하지 말라
본 문: 야고보서 2장 1-11절
설교자: 염 창 훈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혹 시 여러분들은 살아오시면서 차별대우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차별대우를 받게 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차별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집에서 부모는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차별하고 딸과 아들을 편애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는데, 어머니는 야곱을 사랑하고 아버지는 에서를 사랑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일반 교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어서 따로 모인 맹인 교회나 베트남인 교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들을 차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그런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올바로 제시하지 못한다(1절) – 주님의 본과 대치되는 것으로
야 고보가 본문 말씀을 쓴 이유는 이와 같은 일이 교회 안에서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는 오늘날로 말하면 명품으로 치장하고 외제차를 타고 화려한 차림으로 교회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극진히 맞이하여 좋은 자리에 앉게 하고, 노숙자 차림의 사람이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맞이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그러한 잘못된 생각이 있어 사람을 대할 때 차별을 하기 쉽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보고 자신의 기준에 의해 그를 무시하기도 하고 존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는 분이었다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가장 부자이신 분이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섬기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중에 왕을 택할 때, 큰 아들의 외모를 보고 그가 왕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문둥병자, 소경, 세리, 사마리아 여인, 창녀 등 사람들로부터 천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다른이들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 하트마 간디라는 인도의 지도자는 한 때 그의 마음에 성경을 읽고 기독교에 대해 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교회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어서 많은 계급이 있는데 기독교에는 신분의 차별이 없겠구나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교회에 갔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당신은 당신의 계급에 맞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간디의 마음 속에 예수님은 훌륭하신 분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믿는 사람이 복음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교회에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 그를 차별하고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올바로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택하셨다(5절) –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시는 자들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부자들보다 존귀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을 택하셔서 똑똑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택하신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왕자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는 그들을 우리가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6-28)”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 14:31)”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잠 17: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존귀히 여기시며 믿는 자들에게 그들을 사랑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주님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6,7절)
“부 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부자와 권력자들이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 16:1-2)”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등 부유하고 잘 배운 사람들이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등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부자와 권력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에서 부자를 높이고 가난한 사람을 괄시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차별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6-11절)
“너 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마태복음 22장에서 한 율법사가 주님께 나와서 구약의 여러 계명 중에 어느 것이 크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여기서 말하는 이웃은 가난하고 못 배운, 천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므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결론
여 러분은 다른 사람을 차별해 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자칫 하면 우리보다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을 차별하기 쉽습니다. 어떤 흑인이 백인들이 예배드리는 교회에 갔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가 문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왜 울고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자 주님은 “그렇다면 나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 교에서는 왕따 시키는 학생들이 있어 문제라고 합니다. 군대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하는 성경캠프에서도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학생이라면 왕따 당하는 학생을 위로하고 그의 편에 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노인들도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한 사 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교회에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친절히 대하고 거만한 자세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