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합당한 삶
본문 : 빌립보서 1:27-30
설교자 : 조 성 훈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신분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본의 한 수영선수가 우리나라 기자의 카메라를 훔쳤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도둑이 그것을 훔쳤다면 신문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국내 감리교의 대표격인 교회 목사님이 사기죄로 구속되고, 순복음 교회의 대표적인 목사가 법정에 오가고 있습니다. 청년 사역으로 유명했던 목사가 성추행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미국의 어떤 선교단체는 5만불을 횡령하여 담당자가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그들의 신분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을 왕이라 칭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않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인격이나 언어생활, 육신의 정욕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한 가지 구별되는 것은 주일에 교회에 나온다는 것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에 합당한 삶이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라”는 것은 이런 점에서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로서, 일꾼,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신분에 맞게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세상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지만 그들이 사단의 꼬임에 빠져 죄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정죄 아래 있고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계시며 그를 믿는 자는 구원받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즉, 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원대한 계획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의 뜻과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신분에 맞게, 부르심의 소망에 맞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도 하고 행동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는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인내심이 없고 용납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천국시민으로서 조금씩 말이나 행동,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지 20년이 되었다면 처음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형제 자매를 대하는 것, 어려움을 대하는 자세 등이 성숙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자라갈수록 섬기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고 하고, 내가 더 낮아지려고 하며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셨고 오랜 세월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말씀을 들었다면 그의 삶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 나가서 한국을 욕 먹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역시 천국의 시민으로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27-28절). 교회가 100명이든 1000명이든 하늘나라의 시민은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같은 주님을 섬기고 있고 같은 소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무시하고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관심은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높이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증거하는 일에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서 동역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위해 합력하는 것입니다.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28절). 여러분이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증거하는 삶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복음을 핍박하는 자는 그 안에 생명이 없고 마귀에 속했다는 증거, 곧 멸망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절).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그분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고 스스로 하나님께로 나오는 자도 없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눈을 열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그를 위하여 고난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믿는 자의 삶이 쉬우리라고 말씀하신 구절은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고, 세상이 나(예수님)를 핍박하면 너희도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30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도 보고 들은 바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핍박 때문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내가 이 땅에서 더 편하고 더 부하게 살지 못해서 오는 어려움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제가 심야에 극장에 가서 성인물을 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은 “당신 직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제가 선뜻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 행동이 제 신분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 신분에 맞지 않는 삶을 살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기분이 아닌 주님의 기분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내 목적이 아닌 주님의 목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기를 먹는 것이 다른 형제를 넘어지게 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신앙을 위해 협력하고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고난 받는 것,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고난 중에 성숙한 모습을 보여 이를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