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복음과 성령
본 문: 고린도전서 2장 1-5절
설교자: 조 성 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람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과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복음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과 달라서,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제 아무리 지혜롭고 세상에서 지식적으로 뛰어나다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장님입니다. 그가 복음을 듣고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면, 그는 본 그대로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3년 반을 지내면서 주님이 가르치신 것, 하신 일, 죽음과 부활 등 그들이 보고들은 것을 증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 약속 등을 사람들에게 가감없이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여러분이 어느날 바람이 심하게 불어 간판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합시다. 그것을 증거할 때 그저 있는 그대로, ‘바람이 불어 간판이 떨어졌다’고 하면 되지, ‘북서풍이 불어와서…’라고 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사실을 증거하는 것일 뿐, 절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두려워하며 떨었던 것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말에 믿음을 둘까봐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에 믿음을 두어서 나중에 주님이 오시면 구원받지 못한 자로 드러날까봐 염려한 것입니다. 구원은 성령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그가 죄인인 것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를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그의 안에서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능력이 십자가의 대속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나귀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칠 때, 그 능력은 삼손에게 있는 것이지 나귀 턱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해서 그가 구원받았다면 그 영광은 주님께서 받으셔야지 전도자가 스스로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집안에 우환이 없고 안 되던 사업도 잘 된다는 가르침은 진실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엉터리 약속을 해서 교회에 나오게 하지만 그는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믿음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면 여러분의 구원은 헛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내용은 복음, 즉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어야 합니다.
또한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구원에 의심이 생기면 처음 구원받았던 감격의 순간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시절을 기억한다고 해서 구원에 확신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에 의심이 생길 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은 간혹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은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 죄를 사하셨다는 것과,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씀으로 돌아가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심한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하고 죄에 대해서 고통스럽게 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믿었다면 마치 전혀 앞을 볼 수 없던 사람이 눈을 뜬 것처럼 그의 삶이 달라져야 정상입니다. 차를 타고 서울을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부산으로 가고 있었다면 그는 언제 돌아가야 할까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 돌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길인 줄 알고도 그대로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삶과, 언어생활에, 가치관과 생각에, 가정생활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그는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에는 변화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거짓복음이 세상에 퍼져 진정한 복음이 증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고서 오진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요. 사도 바울도 자신이 전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사람들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강단에 설 때 성도들의 삶에 대해 잘못 가르칠 수도 있으므로 늘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고 있는가, 내 삶에 성령의 역사가 증거로 나타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그 안에 성령이 살아계시는 증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신이 증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혼을 구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증인으로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그 이후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참다운 복음만을 전하고 사람에게 믿음을 두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