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울이 질문에 답하다
본문: 디모데후서 1장 11~12절
설교자: 이병권
디모데후서 세 번째 시간입니다. 디모데후서는 갈라디아서와 디모데전서에 이어서 제가 세 번째로 강해하는 바울서신인데, 전과는 다르게 디모데후서 말씀을 전하면서 특별히 더 바울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편지를 기록했던 바울의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디모데를 생각하며 편지를 썼던 바울, 고난을 겪고 있는 바울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마음을 더 알기 위해서 바울에게 질문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바울에게 직접 물어보고 직접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본문에 있는 그의 고백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가상 인터뷰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제가 고난 가운데 있는 바울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서 바울의 대답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정직한 바울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는 교훈과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할 수 있다면, 바울에게 어떤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에요?’ ‘혈액형이 뭐에요?’ 이런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런 질문도 할 수 있지만 워낙 바쁜 분이라 만나기 어렵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여러분이 딱 하나만 질문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바울에게 어떤 질문을 할까?’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신 질문을 잘 기억해두셨다가 천국에 가서 꼭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시간에 바울에게 다른 질문을 할 수는 없고 오늘 본문의 말씀이 대답으로 나오는 질문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11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딤후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입니다. 선포자는 공적 권위를 가지고 사실을 널리 알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는 대리자로서 특별한 임무를 받아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교사는 지식을 나누어 주고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선포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그러면 11절의 말씀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하는 일이나 정체를 묻는 질문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예를 들어,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세우심을 입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수동태로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선하신 계획 가운데 바울을 그 자리에 두셨습니다. 선포자의 자리에 사도의 자리에 교사의 자리에 배치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1절에서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왜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습니까? “이 복음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습니다.
‘내가 선포자다’ 라는 사실보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강조됩니다. 선포해야하는 복음이 있기에 선포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도다’ 라는 사실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사도로 부르셨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내가 사도로서 복음을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교사다’ 라는 사실보다 복음의 진리를 전달하고 적용하여 가르치는 직무가 강조됩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그 뜻을 이루시려고 나를 세우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11절을 종합해서 생각할 때 어떤 질문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떤 질문을 하면 11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찾는 질문에 대한 힌트는 12절 시작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딤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이로 말미암아”, 이 말은 11절에 언급한 것이 원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11절이 원인이 되어서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고난입니다. 바울이 고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복음의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맡은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복음을 가르치는 자로서 복음으로 사는 자로서 바울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계획하셨고 하나님이 그 일을 위해 바울을 부르셨고 하나님이 바울을 세우셔서 고난 중에도 그 일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을 가지고 바울의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고난의 이유‘, ’당신은 왜 고난을 받습니까?‘
내가 복음을 위해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어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고난 받는 바울에게 어떤 심정인지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뉴스에 보면 구속당하는 범죄자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그럴 때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고난을 받고 있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난이 자신에게 당연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신 것에 대해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자를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래서 11절과 12절에 계속 반복되는 것이 “내가”입니다. 내가 이 사명을 받았습니다. 나 같은 자를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나는 복음으로 인해 받는 고난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합니다. 우주여행에 참여할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주는 이벤트입니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해도 참여할 수 없고 특별히 선택된 몇몇 사람에게만 무료로 기회가 주어집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관찰하고 달에도 직접 가보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전 세계에서 뽑힌 사람 중에 한 명이라면 어떨까요? 우주여행을 앞두고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을 때 마음이 어려울까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좀 힘든 일이 생기면 그만두게 될까요? 우주여행 중에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부끄러워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어려운 일들을 감수할 것입니다.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놀랍고 위대한 사명으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복음을 위한 일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에게 했던 질문을 여러분에게 했을 때 여러분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고난을 받습니까?‘
‘전 아무 고난이 없는데요.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이 전혀 없어요.’ 만약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복음으로 인한 고난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이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점점 더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점점 더 메말라 가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까? 무엇으로 부르셨습니까? 바울이 언급했던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는 나랑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을 복음을 위해 부르셨고 선포자는 아니더라도 사도는 아니더라도 교사는 아니더라도 여러분에게 분량에 따라 직분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일을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예수님을 만난 자로서 그분을 증거하는 일로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맡겨진 직분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에는 예외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어떤 은사로 어떤 모양으로 섬기고 있든지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면 우리에게 고난이 따라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에게 다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인해 받는 고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이기는 방법’, ‘당신은 어떻게 고난을 이깁니까?’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입니다.
딤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오늘 본문 앞에서 디모데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고난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 다시 말해 고난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분,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에 그분을 신뢰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에 그분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을 신뢰합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힘든 상황들이 그분에 대해서 나에게 다르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네가 겪고 있는 고난을 생각해봐, 하나님은 너에게 관심이 없어!’ ‘네가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 하나님은 너를 구해줄 능력이 없어!’
누구보다 바울이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수고했는데 지금 상황이 어떠합니까? 복음을 위해 수고할 때도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지하 감옥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난 이 고난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를 끝까지 지키시리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했던 말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선하신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셨던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실 뿐만 아니라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 하실 일을 신뢰합니다. 확신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확신은 자기감정이나 행위에 근거한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 중에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사라져야지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삶이 어렵다 하더라도 여전히 힘든 일이 계속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보고 들은 슬로건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엔 위기극복의 DNA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코로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서로를 격려합니다. 이 슬로건에 공감이 되십니까? 코로나의 위기, 주님의 은혜로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이 슬로건을 오늘 말씀에 적용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고난극복의 DNA가 있습니다. 주님의 피로 거듭난 우리에게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이 우리의 힘입니다. 그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을 수 없지만 나는 미쁨이 없지만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시고 항상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고 그분에게 나의 믿음을 둘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어려운 일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고난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이 땅에서의 삶은 고난과 수고의 연속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그 과정에 생기는 일이니까 고난을 너무 크게 보지 마시고 너무 무섭게 생각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그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일보다 하나님이 훨씬 크고 위대하십니다.
바울에게 했던 질문을 가지고 다시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고난을 이깁니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까지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에 이어서 복음의 일꾼으로 수고하는 디모데도 동일합니다.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의 직분이 디모데에게도 전달되었고 디모데 역시 고난 중에도 바울과 같은 동일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이러한 확신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엇을 근거하고 있습니까?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그분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더 신뢰할 수 있고 알면 알수록 더 아름다우며 알면 알수록 더 빠져들게 되는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더 신뢰해야 하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기 위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힘과 시간을 투자하고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고난도 능히 이겨내는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에게까지 자라는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바울에 대한 계획 가운데 바울을 택하셨고 부르셨고 그에게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비록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이지만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안에 있는 일이기에 바울은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디모데를 생각하며 그를 격려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고 있는 고난의 길을 따라오라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해 살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의 이유를 그리고 그 고난을 이기는 방법을 말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 붙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인생에 마지막에서 무엇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님, 그분 밖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복음은 구원의 좋은 소식입니다. 영원부터 약속되고, 때가 되었을 때 주님을 통해서 계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는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복음의 증인으로 산다면 그렇게 부르심에 따라 수고한다면 우리는 분명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을 인기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유일한 구원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집니다. 그래서 복음은 그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닙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피하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핑계 삼을 수 있고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적당히 가려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들을 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다양한 유혹들에게서 저항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복음을 귀하게 여기고 복음으로 말미암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는 그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고난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고난극복 DNA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