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모세의 율법이 말하는 성육신
본문: 여러 본문
설교자: 조정의
성탄절은 전통적으로 12월 25일이고, 그 전날인 24일을 끝으로 4주간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를 대림(待臨)절 혹은 강림(降臨)절이라고 한다(성육신). 오늘부터 24일까지 세 번, 성육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주일로 보내려고 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열한 제자 앞에 나타나셨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 육이 없는 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손과 발을 만져보라고 하시고, 생선 한 토막을 가져와 잡수시면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증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을 포함한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이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4-45).
① 모세의 율법, ② 선지자의 글, ③ 시편은 각각 구약성경을 구성하는 책이면서, 합쳐져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종종 “모세와 선지자들”로 줄여서 표현되기도 한다(눅 16:29). 우리는 이 세 범주의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 중 그분의 성육신과 관련된 것만을 찾아 예수님이 어떻게 성경을 이루셨는지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얻기를 원한다. 먼저, 모세의 율법, 모세 오경을 조사해 보자.
1. 여자의 후손(창세기)
예수님의 성육신은 창세 전에 계획됐다(엡 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하지만 그 계획이 처음으로 계시된 시점은 창세기 3장,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직후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반역을 꾀하여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이 다스리는 모든 것이 저주를 받았는데,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은혜의 구원을 약속하셨다(창 3:15):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을 ‘원시 복음’이라고 한다. 가장 처음으로 전파된, 최초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기서 옛 뱀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구원자를 약속하셨고, 그분의 발꿈치가 상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죄로 인해 피조물에게 내려진 저주를 약속된 구원자가 자기를 희생하여 깨부수고 결국 사람에게 안식을 되찾아 줄 것이란 약속이었다. 흥미롭게도 그 구원자는 “여자의 후손”이다.
“모든 산 자의 어머니”인 하와의 후손(창 3:20), 즉 사람으로 태어날 누군가가 인류에게 내려진 저주를 풀어낼 구원자가 될 것이란 말이다. 아담의 후손은 대대로 태어난 자손이 구원자가 될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특히 노아가 태어났을 때,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말했었다(창 5:29).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하실 때 노아를 사용하신 것은 맞다. 하지만, 노아는 약속된 “여자의 후손”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어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며 “여자의 후손”이 될 후보의 범위를 좁히셨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저주가 아닌 복)”(창 22:18). 그리고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할 때, “여자의 후손”은 유다의 후손으로 다시 한 번 좁혀졌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선왕의 통치 아래 복이 주어짐).
실로는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며, 이는 유다 지파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자의 지팡이를 잡았을 때, 부분적으로 성취됐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셨을 때 온전히 성취되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은 불가피하게 혹은 뜻밖에 하나님이 시행하신 일이 아니다. 창세 전에 계획되었고, 처음부터 계시하신 일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소개하는 것으로 선포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예수님의 성육신은 분명한 목적을 가졌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율법의 요구를 스스로 만족시킬 수 없는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아들 되게 하셨다.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릴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복을 누리게 하셨다. 역사는(history)는 그분의 이야기이고(His story), 그 이야기는 영원 전에 구상된,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성취된, 그리고 영원까지 이어질 우리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다. 모든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 안에 우리가 있다. 참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2. 하나님의 어린양(출애굽기-신명기)
모세 오경에서 그리스도인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지나치게 복잡하면서도 자세하게 기록된 율법, 특히 장막과 제사 제도에 관한 설명이다. 분량도 엄청나다(출 25-40장; 레위기 1-27장, 민수기와 신명기의 많은 부분). 역사적인 기록물의 신뢰성을 높이는 사실적인 증거로서 가치는 인정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줄까?’ 솔직히 의문이 들기도 하고, 억지로 영적 교훈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안타까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의 외치는 소리 역할을 한 요한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 장막과 제사 제도가 그림자가 되어(히 10:1) 우리에게 보여주는 참 형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구약의 율법은 그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 임을 명백히 고발하고, 동시에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거룩한 제물의 필요를 보여준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신 거룩하고 의로우신 참 희생 제물이시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믿는 자는 대속함을 받는다(벧전 1:18-19).
구약의 제사는 수없이 반복해서 죄인을 위한 대속물(어린 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여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결국 단번에 모든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참 어린 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계속해서 제사장이 필요하고 또 제사장도 자기 죄를 위한 제사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자기 죄를 위한 제사가 필요 없는 거룩하고 악이 없는 참 제사장이 온 율법을 성취할 분으로 오셔야 할 필요성을 극대화한다. 이 모든 것을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이루셨다(히 7:23-28; 9-10장, 10장 1-7절 읽음).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매우 정교한 형태로 또 진귀한 재료로 하나님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영광, 백성 중에 함께 거하시는 쉐카이나 영광을 담아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세워진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언하시고, 친히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요 2:19). 실제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 모습을 보여주셨다(요 1:14, “임마누엘”, 마 1:23). 또한 그분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친히 성전이 되실 것이다(계 21:22). 자기 백성 가운데 아름답고 진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찬란하게 나타내실 것이다. 이처럼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모세 율법이 그림자로 보여주는 참 형상이다.
3. 모세와 같은 선지자(출애굽기-신명기)
출애굽은 전무후무한 역사로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이 이보다 더 경이롭고 강렬하게 나타난 역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 둘로 갈라진 홍해 바다, 40년의 광야 길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신발이 닳지 않게 하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구원의 역사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신 29:2-3).
하나님은 이 일을 모세를 통해 이루셨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좋아했다(히 11:24-25). 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더했다(민 12:3) 그래서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면서 그렇지 않으시려거든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달라고 부르짖었고(출 32:32), 자신을 비방하고 반역한 형과 누나를 치유해달라고 중보하기도 했다(민 12장). 쉽게 원망하고 불순종하기 일쑤며 우상 숭배 중독증에 걸린 자처럼 행동하며, 집단으로 행음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경험하면서도 항상 불신하는 백성을 꾸짖고 위로하고 바로 잡고 격려하면서 약속의 땅까지 인도했다. 모세는 참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기 백성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까지 인도하는 일에 충성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 34:10-12). 모세와 견줄 선지자는 모세 전후로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8).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모든 백성이 놀라서 솔로몬 행각에 모였을 때, 그 능력이 예수로 말미암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외친 것이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행 3:20, 22).
예수님이 바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시다. 그분은 하늘 왕자의 자리보다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자리를 기뻐하셨다(빌 2:6-7). 그분은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시다(마 11:29). 그래서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셨을 뿐만 아니라(히 2:17)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중보하셨다(눅 23:34). 항상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의심 많고 믿기를 더디 하던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 13:1). 하나님은 우리 형제 중에서 참 선지자 예수님을 성육신으로 일으키셔서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다 알게 하셨다(요 15:15). 자기 백성을 약속하신 천국에 이를 때까지 신실한 목자 예수님을 통하여 인도하신다(벧전 3:18; 계 7:17).
우리는 성탄절 당일,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시점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 구원의 은혜가 시작되었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은 창세 전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아니 연약함과 원수 됨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결정하셨다. 그 일방적인 사랑 고백은 태초부터 시작됐고,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더욱 확실하게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이야기다. 당신은 그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가? 감사하는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여자의 후손, 구약의 모든 율법을 성취하고, 모든 제사 제도가 가리키는 참 하나님의 어린 양,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를 맛보게 하실 성전이신 예수님.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놀라운 은택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예수 안에 우리 소망이 있다. 죄 사함의 은혜, 의롭다 함을 입는 복, 영생의 축복, 오직 그분 안에 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을 보화로 여기라.
마지막으로 천국까지 우리를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인도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알려주실 선지자이신 예수님만 따르라. 우리와 같은 몸을 입어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모든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는 분으로 우리를 능히 모든 시험에서 건지시고 이기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히 4:15). 다른 어떤 것에도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성육신하신 예수님만을 따르라. 오직 그분의 말씀만 듣고 믿고 순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