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매일 일터에서 구원을 이루라 4. 어떻게 주로 인해 참을까?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8-25절
설교자: 조정의
전장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보직은 군목처럼 보인다. 그는 군사 전략에 포함되지도 않고, 무기가 아니라 성경책을 든다. 그런데도 군목이 전장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장된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압도하는 전력을 갖추고도 전의를 상실한 군대가 무기력하게 패하는 것을 본다. 군목은 전력을 100% 끌어올릴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준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하나님의 말씀이 매일 구원을 이루는 당신의 영적 전쟁터인 일터에서 군목이 되어 무장된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싸우도록 돕기를 간절히 원한다.
매일 일터에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의 놀랍고 원대한 구원을 안팎으로 이루는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을 날마다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터에서 섬기는 대상은 궁극적으로 주님이시고, 그분이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상급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누구를 대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정중하고, 성실하고 기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되새겨야 한다.
시리즈 마지막 본문은 종과 주인의 관계를 다룬 신약 성경의 여러 본문 중 매우 특별한 관점을 제시한 베드로전서 2장 18-25절이다. 고난 중에 있던 소아시아 성도들이 산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지켜낼 것을 권면한 이 편지에서 베드로는 사환들에게 인내를 요구했다. 그렇다. 일터는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전장이다.
1. 무엇을 인내해야 하나? 까다로운 자들 & 부당한 고난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사환들(오이케테스, 오이코스)은 주인들이 소유하고 부리는 종들이기 때문에, 범사에 두려워함으로(존중함) 자기 주인에게 순종해야 한다(1절). 그런데 주인들 중에서는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만 있는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도 있다. 까다롭다는 것은 단순히 꼼꼼하고 예민하고 까칠하다는 것이 아니라 때로 부당한 대우를 하고(19절), 심지어 위력을 가하는(매, 20절) 것을 의미한다. 이 편지를 받은 성도 중에는 당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때, 노예로 억울한 고난을 받거나 비인격적인 모독과 폭행을 받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성령은 베드로를 통하여 ‘참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신다(19, 20절). 물론 당시 노예는 참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 있거나 고충을 상담해 주는 사람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여 엄청나게 개선된 일터에서도 여전히 크고 작은 부당한 일을 겪는다. 여전히 까다로운 자들이 많다. 과거 열악한 일터에서도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요구되었다면, 지금 개선된 일터에서도 참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다. 중요한 것은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20절). 그리고 죄 없이 받는 고난과 슬픔을 참을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19절). 이 두 가지 조건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먼저, 자기 죄 때문에 받는 고난은 아무리 참아도 아름다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고난은 자기 죄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죄에 비하여 과한 평가, 처우를 받을 때, 억울한 마음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일하지 않는 것 가령 상사를 존중하지 않고 비방하거나, 성실하지 않고 나태하게 일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언젠가 지불하게 되어 있다. 그때 받는 고난은 아무리 참아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터에서 부당하다고 여기는 일,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겪을 때, 자신을 한 번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한다. 그냥 속으로 온갖 나쁜 말을 쏟아내면서 겉으로는 티 나지 않게 잘 참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다는 것의 의미는 1)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고 2) 인내의 열매로 하나님이 선을 이루실 것이라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실 거야’,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하여 반드시 좋은 일을 이루실 거야’라고 믿으며 참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의 완벽한 예를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에서 찾을 수 있다(23, 24절).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 까다로운 자들(상사, 부하 직원)을 대할 때,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품어야 할 이 마음으로 무장하라.
2. 어떻게 인내해야 하나? 예수님처럼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일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표현,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를 주목하라(21절). 그리스도인은 이를 위하여 그러니까 (특별히 일터에서) 고난 중에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일터에서 당하는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벧전 4:12). 우리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허락하신 것뿐이다. 심지어 본문은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더 강력한 이유를 소개한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2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신자를 위하여 고난을 참으셨는데, 그 목적 중 하나가 우리가 따라오도록 본을 끼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주가 당하신 욕, 고난, 채찍질, 십자가 처형, 죽음 모든 것이 다 이중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다. 첫째,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고 또 둘째, 우리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일터에서 살아내는 일에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인내를 일터에서 실천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죄 없이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22절).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영원히 합당하신 분이시지, 그분이 받으신 고난과 슬픔, 모욕과 조롱 등은 모두 완전히 부당한 대우를 넘어 거룩하신 분을 죄인 취급하는 무시무시한 신성모독의 죄다. 그리고 주님은 고난을 참으실 때, 절대로 앙갚음하지 않으셨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23절). 주님은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시고 잘못된 고발에 정당한 변호를 하시면서 그들의 죄를 드러내셨지만, 절대로 그들의 방식대로 되돌려주지 않으셨다. 또한 무한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계셨지만, 그것으로 위협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일터에서 가져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정당한 변호와 요구를 할 수는 있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이다(욕, 비방, 분노, 응징 등).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정보 등의 자원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조용히 또는 대놓고 복수하지 않는 것. 주님은 이렇게 부당한 고난을 참으셨다. 죽기까지 인내하셨다.
주님은 고난을 참으실 때 하나님을 생각하셨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23절). 악인의 모든 부당한 대우에 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굳게 믿으셨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을 믿었다(히 10:30). 그리고 주님은 아버지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씻으시고, 그들과 죄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끊고 의에 영원히 매어두기 원하신다는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서 이루실 선한 일을 위하여 묵묵히 고난을 참으셨다. 채찍에 맞으실 때, 주님은 우리의 나음을 생각하신 것이다. 아버지께 버림받았을 때, 주님은 우리 영혼이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올 것을 바라신 것이다(25절).
이것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목 베임을 당하고 톱으로 켜서 죽임당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인간 촛대가 되어 불에 타서 죽었는데, 일터에서 사무를 볼 때, 혹은 가정에서 가사를 할 때, 그 정도 고난도 인내할 수 없냐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부당한 일도 그래서 참을 일도 많은 직장에선 더 그렇다.
매일 일터에서 까다로운 사람에게 부당한 일을 당할 때:
#1.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하라: 모든 것을 맡겨라.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시고 가장 합당한 처벌을 내리시는 분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며 반드시 갚아주신다.
#2.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라.
하나님은 나의 인내로 연단을 그리고 소망을 이루기 원하신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빚어가기를 원하시고, 복음의 지혜와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나고, 주를 향한 더 견고한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신다. 고난을 참아내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억울한 슬픔을 참아내는 나를 통하여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기 원하신다. 심지어 까다로운 자들, 나에게 부당한 고난을 주는 그들까지도(원수 같은 자들) 주님은 나의 인내로 구원하실 수 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부당한 일과 짜증 나는 일을 일터에서 겪는가? 소소한 것까지 포함하면 정말로 매일 일터에 가는 것이 무조건 참고 견디기 위해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인내의 자리가 우리를 부르신 자리이고, 그때 품어야 할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주를 섬기러 일터에 나가고 또한 주의 마음을 배우러, 본받으러 일터에 나간다. 구원과 일터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절대로 착각하지 말라. 구원은 당신의 전부와(몸+영혼) 영원히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있는 어느 곳이든, 당신이 하는 무슨 일이든 구원을 이루는 것과 관계가 있다. 매일 일터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분께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