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매일 일터에서 구원을 이루라: 3. 어떻게 주께 하듯 일하나
본문: 에베소서 6장 5-9절
설교자: 조정의
매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놀랍고 원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상주실 주님을 믿고 섬길 때, 우리가 쳇바퀴 도는 것같이 일하는 일터가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소명의 자리가 된다. 그러면, 매일 일터에서 어떻게 일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일까? 어떻게 주께 하듯 일할 수 있나?
어떤 사람은 사무나 가사 등 실제로 일터에서 맡겨진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초청하는 일만이 주님께 직접적으로 영광이 되는 일이라고 오해한다. 물론 입술과 삶으로 복음을 나타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고귀한 일이다. 하지만 마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 구두 장인은 신발에 작은 십자가를 새기는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신발을 만들고 고객과 정직하게 거래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 복음을 항상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만(벧전 3:15), 평상시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일하는 모습을 통하여 주님을 섬길 수 있고,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달할 수 있다.
1. 존중함으로 일하라(5, 9절)
본문은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일하라고 권면한다(5절). 이것은 공포심을 갖고 겁을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말이다. 그 대상은 바로 “육체의 상전”이다(5절). 성경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명령한다(롬 13:7). 그리고 그 근거를 위에 있는 모든 권세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롬 13:1). 그렇다. 그 악독한 김 부장, 악마 같은 박 팀장을 세운 분이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그분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도저히 내 육체의 상전은 그렇게 못 대하겠다’라고 여긴다면,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대면해야 한다(롬 13:2). 본문에서도 그리스도께 하듯(합당한) 하는 섬김은 곧 육체의 상전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육체의 상전을 존중한다는 말은 그의 부당한 대우와 부정한 행위를 무조건 묵인하고 아무런 반대 의견을 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본문이 기록된 시대보다 훨씬 더 인권이 보장되고 자기 의견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권리를 주장할 때조차 상전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상사를 함부로 부르거나, 대하는 것을 삼가라.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일터에서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그리스도를 섬긴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는 그래서 그분이 세운 육체의 상전을, 그들이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존중한다.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는 세상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육체의 상전을 대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이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의 확실한 증거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꾼은 상전이 아니라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야 한다. 본문은 상전들에게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했다. 위에 언급된 태도와 방식을(존중) 그들도 갖춰야 한다. 그리고 특별히 부하 직원을 대할 때, “위협을 그치라”라고 명령한다(9절). 직위과 권위를 남용하여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부하 직원 모두 하늘에 계신 상전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께서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차별해서 대해서는 안 된다. 자비롭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부하 직원을 대하라. 그것이 당신의 진짜 상전, 당신이 섬기는 주님이 일터에서 요구하시는 바다(“의와 공평”을 베풀라, 골 4:1).
2. 성실함으로 일하라(5절)
그리스도의 종들은 또한 “성실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5절). ‘성실한 마음’의 특징은 위선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위선적인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6절에서 이렇게 묘사되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위선자다. 사람이 볼 때만 부지런히 일하는 척하여 그를 기쁘게 하지만, 보지 않을 땐 게으르고 부정직하게 일한다. 겉으로는 열심히 기쁨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껍데기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 속엔 열정도 진심도 없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을 섬기러 일터에 가는 사람은 그렇게 해도 걸리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그러나 주를 섬기러 일터에 나가는 사람은 결코 그렇게 일할 수 없다. 주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마 9:4).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래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일한다(6절). 겉과 속이 같다. 몸만 일하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일한다. 구약 시대 요셉은 보디발의 집 노예로 팔려 왔을 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했고, 곧 보디발 집 전체를 맡길 만한 성실한 일꾼이 되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을 때도 그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감옥에서 모든 옥중 죄수와 그 제반 사무를 맡길 수 있는 자로 인정받았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충성스럽게 일했는데, 그를 미워했던 고관들이 아무리 허물을 찾아보려 해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외에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창 39장, 단 6:3-4).
매일 일터에 주를 섬기러 가는 사람은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주인을 위해 진심으로 충성해야 한다. 상사나 동료 직원은 나의 위선을 미처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들 이 정도로 타협하면서 일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섬기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님이시다.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훤히 들여다 보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존 맥아더 목사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제나(누가 보든 보지 않든) 더 낫고 더 생산적이며 더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존 맥아더, 489p, 롬 12:11).
3. 기쁨으로 일하라(6-7절)
그리스도인이 주께 하듯 일하는 방식은 세 번째로, 기쁨으로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을 존중하고, 주께 하듯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으로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억지로 우거지상을 하며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섬기는 대상이 정말 주님이라면,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불만이 가득 차서 억지로 썩소를 날리며 일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본문은 분명히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명령한다(7절). 사람들에게 하듯 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 주께 하듯 하는 사람은 ‘기쁜 마음’ 없이 일할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우리가 섬기는 대상을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분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일 일터에서 당신이 기쁨을 상실한다는 것은 섬기는 대상을 잊어버리거나 바꾼다는 의미다.
손님 접대와 초대가 잦은 편이라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할 때가 종종 있다. 똑같이 식기를 세척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데도, 어떨 때는 콧노래를 부르며 기쁨으로 하고, 어떨 때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억지로 할 때도 있다. 나의 기분을 결정하는 요인은 결국 누가 그 일을 시켰는가, 얼마나 많은 일이 맡겨졌는가가 아니다. 내가 누구를 섬기기 위해 그 일을 하는가이다. 사랑하는 손님, 사랑하는 아내를 섬긴다고 생각할 때, 기쁨으로 일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일터에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분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일에 주께서 그대로 보상하실 것이라고 약속한다(8절). 우리가 기쁨으로 일해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관하여 주님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보상하신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는 일꾼은 항상 기뻐할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 숙련된 사람이 되려면 매일매일 꾸준히 반복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손흥민은 오전 웨이트 트레이닝, 슈팅 훈련, 오후에 기본기 훈련을 반복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으며 그래서 지금의 실력을 갖춘 선수가 됐다. 일터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훈련장이다. 매일 일터에서 당신은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성실함을 배운다. 기쁨으로 일하는 법을 배운다. 매일 반복적으로 존중과 성실과 기쁨으로 일하는 훈련을 할 때, 당신은 주님을 경외하고 주께 충성하고 주를 기뻐하는 자로 숙련되어 간다. 그렇게 당신의 내면에서 구원에 합당한 속사람이 지어져 간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여 육신의 상전과 권세를 존중하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따르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진정한 기쁨으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매일 일터에서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그분을 섬겨 주변 사람에게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내면에 이루어지는 구원은 이웃과 동료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도구가 되어 그분의 역사를 이룬다. 매일 하나님의 훈련장으로 출근하여 그리스도를 닮도록 자신을 연단하라. 존중함과 성실함과 기쁨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하라. 그렇게 매일 일터에서 구원을 이루라!
매일 일터에서 주님을 섬길 때:
1) 존중함으로 일하라 2) 성실함으로 일하라 3) 기쁨으로 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