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매일 일터에서 구원을 이루라: 2. 누구를 섬기는 일인가?
본문: 에베소서 6장 5-9절
설교자: 조정의
매일 일터에서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룬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지만(창조),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방해한다(타락).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쁨으로 일할 수 있게 하셨다(구원). 우리는 아무런 방해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음껏 일하게 될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기다린다(영원).
당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상실할 때, 매너리즘에 빠져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심정으로 매일 일터에 억지로 나갈 때, 구원의 놀랍고 원대한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휘 아래 온 우주가 영원토록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소리를 내고 있으며, 당신도 매일 일터에서 아름다운 협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매일 일터에서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지 아는 것’만큼 중요한 진리는 ‘매일 일터에서 우리가 누구를 섬기는지 아는 것’이다. 당신은 매일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일터에 나간다. 당신은 매일 종처럼 힘들게 일하는데, 섬기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당신은 자신(자신의 부, 명예, 성공을 위하여), 배우자와 자녀(그들의 필요, 뒷바라지), 회사나 상사를 섬길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이 섬기는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여야만 한다. 매일 당신은 주를 섬기러 일터에 가고, 매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를 섬긴다.
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종들이다(6절)
성경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는데(예: 신랑과 신부), 각각의 비유가 강조하는 바가 있고 그래서 모두가 중요하지만, 주인과 종의 관계는 그중에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리 일터에서.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 목숨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에 죄의 노예였던 것처럼, 이제는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분명히 말한다(고전 7:23):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노예라는 말의 어감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6절에 사용된 “그리스도의 종들”이 정확하게 그 의미다. “종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바로 듈로스(‘노예’)이기 때문이다(126번, 일반적 용어). 로마는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노예였다. 전쟁 포로, 경제적 이유나 타고난 가문에 의해 노예가 되어 잡일부터 건축, 회계, 가사, 양육, 교육, 집사, 심지어 법조인, 의료인으로 주인을 섬겼다. 그리스도인도 각자 자기의 재능에 따라 현재 맡겨주신 일을 통하여 주님을 종처럼 섬긴다.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다(롬 14:7-8). 이것은 분명 노예의 고백이다(“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롬 1:1).
모든 노예가 기쁨으로 주인을 섬기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주인은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까다롭게 굴고 부당하게 대하고 고난을 준다(벧전 2:18-19).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섬기는 주인은 참으로 선한 분이시다. 그분은 잔인하고 악독한 주인에게서 우리를 사기 위하여 목숨값을 지불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단지 노예로 취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르시며 아버지의 뜻을 다 알려주셨다(요 15:15). 나아가 아버지의 자녀로 삼으셔서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것을 함께 상속받게 하셨다(엡 3:6). 이렇게 선하고 인자하고 자비롭고 사랑 많은 주인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신실하게 주를 섬기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하듯 한다(5절)
본문은 구원받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하듯”(5절), “주께 하듯”(6절) 하라고 명령한다.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에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지금은 “하듯”의 의미만 밝히겠다.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① ‘실제로 그리스도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분께 하는 것인 양하라는 뜻’ ② ‘실제로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니 그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뜻’으로 각각 해석할 수 있다.
만일 전자라면 우리는 매일 일터에서 일종의 정신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힘들고 짜증 나고 답답하고 귀찮아도 어쨌든 주를 위해서 하는 일인 셈 치고 인내하고 참아내며 억지로라도 해내야 하는 일로 여기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일터에서 하는 모든 일이 주님께 하는 일, 그분을 섬기는 일이라면 우리는 모든 일을 진정한 기쁨과 감격과 감사로 할 수 있다.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분, 이 땅에서 내가 사모할 유일한 분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시 73:25).
본문은 명백히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접속사 호스(as)의 용례가 그렇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병행 구절 가령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 11:36) 등이 이를 확증한다. 먹고 마시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사소한 일도 주의 영광을 위한 일인데, 평생 수많은 시간 일터에서 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한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주께로부터 나서 주로 인하여 살고 주님께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일터에서 하는 모든 일도 주에게서 나온 만물을 가지고, 주로 말미암은 힘과 지혜로, 주에게 돌아가는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이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소명’(라틴어: 보카치오)을 오직 교회에서 하는 일에만 적용했다. 전도, 섬김, 봉사, 예배 등만 주가 맡기신 주를 섬기는 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 함께 복음에 합당한 삶까지 성경대로 회복시켰다. 소명은 교회가 아니라 일터에도 반드시 적용된다. 우리는 어디서나 주를 섬기고 예배한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주를 무엇으로 섬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주님은 ‘그러면 출근해서 기쁨으로 나를 섬겨라. 그게 나를 위한 일이다’라고 하실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되받는다(8절)
우리는 보상하는 자를 섬긴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일 회사 CEO가 아니라 경비원이 당신을 지켜보고 승진을 결정하고 월급을 지급한다면, 당신은 점점 그 사람을 섬기게 될 것이 뻔하다. 어쩌면 당신이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는 데 자주 실패하는 이유 또한 그 보상을 주님께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본문은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알라고 권면한다(8절). 주가 보상하신다.
물론, 본문은 종말론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영원한 세상에서 우리가 주를 위하여 한 모든 일에 대한 상급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매일 주를 위하여 우리가 한 일에 관하여 주님은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으시는가? 아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5장 19절로 이렇게 답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매일 일터에서 성실하게 일하여 얻는 부와 재물, 수고하여 자기 몫을 받아 그것으로 즐겁게 누리게 하신 것 또한 하나님의 선물 즉 보상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더하여 영원한 보상이 주어진다!
예전에 일했던 외국계 제약회사는 매달 월급과 함께 회사 주식을 상급으로 지급했다. 유학생 때 어려워서 주식을 팔아 생활비로 지출했는데, 몇 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회사의 가치가 많이 상승하여 몇백만 원 정도의 돈이 되었다. 하나님은 매일 일터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일한 몫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주식을 상급으로 지급하신다. 주님을 만나는 그날에 우리는 그 주식의 가치를 보며 크게 놀라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 주식은 절대로 하락하지 않는다. 언제나 상승 종목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우리는 반드시 그가 상 주는 이심도 믿어야 한다(히 11:6).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믿음을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도 항상 가져야 한다. 기억하라. 주가 당신이 섬긴 그대로 주신다.
매일 일터에 나가기 전, 다음과 같이 고백하자:
-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 나는 오늘도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
-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 주실 것을 믿음으로 일한다
위의 고백은 목회로 섬기는 자에게도 적용된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목사는 칼럼을 쓰거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할 때, 심방하고 상담 전화를 할 때, 그 외 모든 일을 다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한다. 목사는 성도의 인정이나 후원을 바라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상 주시는 것을 바라보며 일한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는 목사를 상상해 보라: ‘심방해야 하는데 너무 하기 싫다. 귀찮다. 그래도 월요일에 쉬니까 참고 해야지 뭐’, ‘이번 주엔 왜 이렇게 말씀을 많이 준비해야 하는 거지? 그래도 조금 있으면 교제비 받으니까 참고 하자’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일하는 목사는 성도에게도 주님에게도 폐가 된다.
그런데, 목회가 아닌 다른 일은 그래도 되는가? 다른 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는 일이 아닌가? 다른 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아닌가? 다른 일도 그리스도께서 상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는 일이 아닌가? 당신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영원히 나누기 원하시는 분을 위해 기쁨으로 뭔가 하고 싶은가? 그러면 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