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본문: 고린도전서 4장 1 – 5절
설교자: 조정의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경영인’ 등 세상에서 높이 평가받는 인물로 뽑히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100인’을 선정한다면 누가 뽑힐까? 2017년 뉴스맥스에서 선정한 명단에 따르면, 1위가 빌리 그래함(2위는 그 아들), 3위는 조엘 오스틴, 그 외에도 TD 제이크, 베스 무어 등이 있다. ‘도대체 평가기준이 뭘까?’라는 질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일꾼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생긴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평가하고 인정받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존 맥아더 목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인기 있는 게임이 있다. 목회자 평가하기다”라고 말했다(154p). 고린도 교회에서도 인기 있는 게임이었다. 그들은 바울, 아볼로, 게바를 두고 순위를 매겼다.
어쩌면 당신도 교회 안에서 평가 게임을 즐길 것이다. 목사나 성도, 형제와 자매, 나의 자녀와 다른 성도의 자녀, 나 자신과 다른 성도. 나름의 판단 기준을 세우고 순위를 매기고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거나 반대로 열등감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시기심으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본문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5절).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우리는 주가 맡기신 일에 충성해야 할 책임만 있다. 2) 결국 심판은 (우리가 각자의 기준으로 아무리 평가한다 해도) 주님 소관이다.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판단 게임을 그치고, 심판주 앞에서 각자 맡겨진 일에 충성함으로 함께 지어져 가기를 바란다.
1. 이유1: 맡은 자는 충성한다(1-2절)
성도가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사람의 판단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도에게 각각 일을 맡기신 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밭이면, 그 밭에서 일하도록 성도를 고용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면, 그 집을 세우도록 성도를 채용하신 분은 주님이다. 아볼로, 바울이 누구인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일하는 “사역자들” 아닌가?(고전 3:5).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
이 말씀은 여러 가지 의미로 들린다. 1) 변호: ’우리를 무시하지 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다.’ 2) 겸손: ’우리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지 마라.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일꾼이다.’ 하지만, 문맥 안에서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우리를 평가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일꾼, 하나님께서 자기의 비밀을 맡기신 자다.’ 상관이 누구인지, 맡기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고전 3:9, “하나님의 동역자들”).
“누구든지”, “너희는”이 아니라 “사람이”가 주어로 사용됐다. 왜? 사람과 뒤에 나오는 그리스도, 하나님을 대조하기 위해서다. 바울은 앞에서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하고(고전 1:25; 2:5, 13),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라고 했다(3:21). 여기서도 바울과 아볼로, 게바 등 고린도 교회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들(우리)이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고, 사람이 일을 맡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1절에서 쓰인 “여길지어다”라는 명령어도 매우 흥미롭다. ‘평가하다’의 의미를 갖는데(‘우리를 평가하라’), 이는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라는 5절의 명령과 불협화음을 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표현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우리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너희가 할 수 있는 올바른 평가는 이것인데, 바로 하나님의 비밀 곧 십자가 복음(고전 2:7-10)을 위해 일하는 우리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다.’ 일꾼(‘휘페레타이’)은 갤리선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로 높은 권위 아래서 맡겨진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바울, 아볼로, 게바 및 복음의 동역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높으신 권위 아래 일하는 종이고, 그들에게 각각 일을 맡기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명백한 영적 진리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적용이 2절에 나온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직장에서 사람을 고용할 때 충성스럽게 일할 것을 기대한다. 근무 태만한 일꾼은 해고된다. 주님도 일을 맡기신 자들에게 신실함을 요구하신다. 달란트 비유(마 25장), 므나 비유(눅 19장)에서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이 바로 ‘충성’이다. 하나님의 집에서(오이코노모스) 성도는 누가 그들을 고용했는지 기억하고, 반드시 그분께 충성해야 한다. 사람의 평가와 칭찬과 인정을 구하는 것은 충성해야 할 대상을 혼동하는 것이다.
2. 이유2: 심판자는 주님이다(3-4절)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취약하다.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의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엔 칭찬과 비방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도 바울이 그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 충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자신을 고용한 분이 곧 심판하실 주님이라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사람의 판단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잘 들어보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3절a). 먼저,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판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매우 작은 일, 별것 아닌 일로 여겼다. 타인의 판단만 그렇게 취급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3절b). 헬라와 로마 철학자들은 ‘양심이 최종 판결을 내린다’고 믿었지만, 바울은 자기 양심에 그런 권한을 주지 않았다.
이는 바울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행 24:16; 고전 9:27):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4절a; 고후 13:5). 하지만 그는 자기 스스로 내린 평가가 최종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4절b). 그러면 누구에게 ‘의롭다’, ‘신실하다’는 최종 판결을 얻는가?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4절c). 바울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아볼로나 게바와 같은 동역자들도 아니고, 고린도 교회 성도나 다른 지역교회 성도도 아니다. 심지어 바울 자신의 양심도 아니다. 오직 주님만이 심판주이시다.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만이 바울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바울은 심판의 때가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5절a). 심판주가 오시는 그날이 바로 심판의 때다. 주님의 심판은 사람의 심판과 다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주님은 보이지 않는 것 그 중심까지도 아신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5절b). ‘드러내다’, ‘나타내다’는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주님의 심판 행위를 묘사한다. 주님은 우리가 행한 일과 그 결과물만 가지고 판단을 내리지 않으신다. 마음의 뜻 곧 그 동기까지 드러내어 평가하신다. 어둠에 감추인 것들처럼 마음속 깊이 품은 뜻은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론 자기 자신에게도 감추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주님은 낱낱이 그것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의로운 판결을 내리실 것이다. 누구도 반박하거나 문제를 제기 할 수 없는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3. 명령: 아무 것도 판단말라(5절)
그러므로 두 가지 이유로 우리는 함부로 성도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또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겨야 한다. 첫째,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맡기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충성해야 할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 각 사람에게 칭찬을 내리실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절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명령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먼저, 이 말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5장에서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를 “너희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라고 권면했다(5:12-13).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그 말씀을 거역하고 회개하지 않는 성도를 죄인으로 간주(판단)하고 권면, 책망, 징계, 그리고 출교해야 한다(마 18장).
또한 이 말은 ‘누군가가 나를 판단할 때 무시해 버리라’는 의미도 아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편지하면서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했다(골 3:16). 히브리서 기자도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다(히 3:13). 성도가 말씀으로 나를 권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때, 특히 내가 죄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매일 간절히 권면할 때, 우리는 듣고 돌이켜야 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늘 점검할 필요도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쓴 또 다른 편지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고후 13:5).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지혜대로 판단하는 자신과 타인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명령이 어떤 문맥 안에서 주어졌는지 들여다보자: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주께서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신다. 주님은 사람이 볼 수 없는 동기와 행위를 모두 아시고 완벽한 평가를 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내리는 판단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감추인 것들을 보지 못하고 마음의 뜻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평가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메말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라는 말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각 사람에게 칭찬을 내리실 것이다. 그리고 그 칭찬이 최종적이고 영구적이다!
가끔 주께서 다시 오셔서 나를 만나주실 때, 그분의 얼굴을 처음으로 대하여 보면서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볼 때가 있다(고전 13:12). 그때에는 지금 희미하게 알고 있는 주님을 더 분명하게 볼 것이고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나의 감추인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드러내실 것이고,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 나를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고 중심에 있는 모든 것을 낱낱이 다 아시는 분 앞에서 당신은 칭찬을 기대하는가 아니면 책망을 기대하는가? 만일 어떤 성도가 당신을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상상해 보라. 그의 곁에 가고 싶은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가? 그런데 바울은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라고 확신했다(5절).
이것이 참으로 감격스러운 부분이다. 우리의 모든 동기와 행위를 판단하실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용납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공로를 보시고 우리가 한 모든 보잘 것 없는 일에 상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영원한 상을 내리실 때, 우리 모두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진실로 은혜로운 판단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그분은 아신다. 우리가 마치 자기 것인 양 자랑하는 건강, 물질, 재능, 은사 및 모든 것이 사실 주님이 맡기신 주님의 것이란 사실도 아신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가 맡기신 것에 충성할 때, 그 충성스러움에 상주기를 기뻐하신다. 우리의 우리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행한 모든 것도 은혜로 된 것이며, 우리가 상 받는 것도 은혜다. 오직 은혜로우신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고 높임 받기에 합당하시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8).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 자기를 내세우려 하지 말고 주님만 높임 받으시기를 구하라. 성도를 알아주고 권하여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되, 성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칭찬해 주기를 원하지 말라. 사람의 판단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기고, 최종적인 하나님의 판단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라.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분이시니 오직 그분께 충성하라. 그러면 그분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