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둘째 사망, 불못
본문: 요한계시록 20장 7-15절
설교자: 조정의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다(히 9:27). 그런데 어떤 사람은 두 번 태어나서 한 번만 죽고, 어떤 사람은 두 번 태어나지 못해서 두 번 죽는다.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은 성경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명백한 진리다: 거듭난 자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6절),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든지 둘째 사망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14-15절).
성경이 말하는 사망의 기본 개념은 ‘분리’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이 첫째 사망이라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 둘째 사망이다. 모든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이르게 될 최종적이고 영구적인 운명, 둘째 사망에 관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당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언제 둘째 사망을 당하는가?
성경이 둘째 사망을 언급하는 시점은 7절에 나오는 것처럼 “천 년이 차”고 나서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성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리신 이후다. 그 기간 동안 사탄은 큰 쇠사슬에 묶여 무저갱에 결박당했다. 입구를 인봉하여 틀어막아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는데, 기한이 차면 그 옥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7절). 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주권적인 계획대로 이루어질 일이다: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3절).
사탄의 악한 본성은 천 년의 옥살이 후에도 전혀 갱생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만민을 미혹하여 반역에 동참시키는 일에 또다시 매진한다. 풀려난 사탄은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동서남북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자들을 미혹한다(8절). 요한은 구약 성경 에스겔서를 차용하여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연합 세력을 가리켜 곡과 마곡이라 불렀는데(38-9장), 특별히 과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가장 먼 지역에 퍼져 있는 적들(북쪽 끝, 메섹과 두발 왕)을 차용한 이유가 있다. 천년 왕국 이후에 사탄이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인 반역을 일으킬 것이고, 그때 땅끝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여기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8절).
사람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가? 거짓에 쉽게 속을 만큼 어리석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으로 속히 돌아설 만큼 철저하게 어그러지고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사람은 날 때부터 죄악 중에 출생한다(시 51:5). 하나님을 지적으로 알게 되더라도 의지적으로 그분께 반항하는 강력한 죄의 유전자를 가졌다. 육체의 욕심, 세상 풍조, 마귀를 따르는 것을 하나님 따르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한다(엡 2:2-3).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옛 본성을 벗고 새 본성을 입는 ‘거듭남’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악한 본성의 힘이 얼마나 끈질기고 파괴적인가? 대환난 기간에 하나님이 직접 쏟으시는 심판에도 꿈쩍하지 않고, 마귀가 힘을 잃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지상 낙원에서도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서 때가 찼을 때 다시금 강력한 욕구를 드러낸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을 모조리 거부하고, 결국엔 둘째 사망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간다. 당신 안에 살아 있는 악한 본성의 무서움을 알라.
여기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예비된 하나님의 최종 심판, 둘째 사망이 있다. 마귀의 미혹을 받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악인들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쌀 것이다(9절). 천년 왕국에 그리스도 나라의 수도가 될 예루살렘 성과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든 거듭난 자들의 무리를 말한다. 그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은 단번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태워져 죽임을 당할 것이다(9절).
그리고 그들이 따르던 마귀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불과 유황 못(불못, 14절)에 최종적으로 또 영구적으로 던져질 것이다(10절). 그곳엔 대환난 기간 마귀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지상 통치자, 적그리스도와(짐승) 그를 따르도록 만민을 속인 거짓 선지자도 있다.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그러니까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 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 마귀와 그에게 속한 모든 악한 영(천사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다. 회개할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악인에 관하여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가 악인에 관한 성경의 마지막 계시다(10절). 이것이 그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2. 어떻게 둘째 사망을 당하는가?
그러면 “둘째 사망”이란 무엇인가? 둘째 사망을 당하는 사람이 겪을 영원한 형벌은 어떤 것인가? 14절을 보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둘째 사망”은 사건에 관한 표현이고, “불못”은 장소에 관한 용어다. 악인은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사건을 겪는다. 이를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설명이 바로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는 말씀이다. 사망과 음부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의인화하여 그 둘을 영원한 불못에 던진다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사망은 이생을 종료하고 내생으로 삶을 옮기는 사건이다. 하지만 둘째 사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사망을 폐기하는 것이다. 음부(하데스)는 ‘지옥’을 가리킨다. 지옥은 타락한 천사와 악인이 형벌을 받는 고통스러운 심판의 장소이지만(무저갱), 불못과 달리 영구적이지 않다. 둘째 사망의 장소인 불못은 영원하기 때문에 지옥은 불못 속으로 흡수된다. 결론적으로 불못은 마귀와 그의 편에 선 모든 악한 영이 영벌을 받을 장소이고, 그 영원한 심판의 장소에 던져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한다.
불못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장소다. 천국이 빛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을 누리는 장소라면, 천국 바깥 어두운 곳에 있는 불못은 그 반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불못은 또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장소다. 어떤 사람은 불과 유황이 있는데 어떻게 어두울 수 있냐고 묻는다. 하지만 어두움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죄인의 영원한 처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불과 유황은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쉼 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형벌에 관하여 많은 경고를 하신 분으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은 인생은 가장 슬프고 비참한 인생이다. 또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받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둘째 사망을 당하는 사람이 모두 똑같은 형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11-2절을 보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백(흰)보좌 심판이라 불리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위해 좌정하신 보좌는 크고 흰 보좌다. 그분의 엄위성과 크신 영광, 절대 권세를 나타내는 커다란 보좌, 그분의 거룩하고 정결하신 성품에 따라 공정하고 의로운 판결을 내리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순백색의 보좌다. 하나님은 임의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분명한 기준을 두고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신다: 보좌 앞에 펴져 있는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 자들의 행위를 따라.
백보좌 앞에서 땅과 하늘이 피하여 사라진 장면을 요한은 봤다.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계 21:1), 옛 땅과 하늘을 거두어가신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말했다(벧후 3:10). 옛 세상은 물러가고 세상에 속한 백성은 큰 자나 작은 자나 예외 없이 심판의 보좌 앞에 선다. “죽은 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각각 자기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남김 없이 모두 드러나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죽은 자들”인가?
3. 누가 둘째 사망을 당하는가?
백보좌 앞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행위가 기록된 책이고, 또 하나는 생명책이다. 사람의 행위가 기록된 책의 개념은 구약 성도들에게도 익숙했다(“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 139:16). 한편 또 다른 책, 곧 생명책 역시 모세 때부터 익숙했던 개념이다(“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 32:32, 시 69:28).
오직 거듭난 사람의 이름만 생명책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게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주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5).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모든 사람에 관하여 계시록은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계 17:8).
그러므로 생명책은 고대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가 보유하고 있던 시민의 명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거듭나서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반대로 거듭나지 못한 모든 자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고 바로 그들이 둘째 사망을 당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5절).
심판을 받는 죽은 자들은 실제로 첫째 사망을 당한 자들을 가리킨다. 13절에 보면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라고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심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장소로 그곳에 빠지면 찾아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죽음’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망과 음부는 죽은 사람, 특별히 죄 가운데 죽은 사람이 맞이하는 사건과 종착지이다.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와 지상 재림 때 죽은 자와 산 자 순으로 의의 부활, 생명의 부활을 맞이한다.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자는 대환난 기간에 쏟아질 무서운 재앙으로 죽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 입에서 나온 검으로 전멸당하고, 천년왕국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섬멸된다. 그리고 창세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거듭나지 못한) 모든 자, 마귀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반역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마지막 날에 심판의 부활로 보좌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한다(히 9:27).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한다(요 5:24). 자기 행위를 의지하며 사는 자는 그 행위대로 심판받고, 그리스도의 행위를 믿는 자는 그분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허물과 죄의 사함을 받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죗값을 직접 치러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말해주듯,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다(요 3:17). 그래서 지금 예수를 믿지 않고 거절한 자는 이미 둘째 사망을 선택한 것이고,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둘째 사망의 메시지로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 첫째,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 둘째 사망을 면하게 된 사실에 영원히 감사를 돌려드리라. 둘째, 사랑하는 가족, 친구를 대할 때, 그들이 처한 끔찍한 둘째 사망의 운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회를 만날 때 회개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달하라. 셋째, 계시록 21장 7-8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기는 자가 돼라. 예수를 위하여 사는 자로 다시 태어났으니 오직 그분을 위하여 살라. 둘째 사망에 처해질 사람들처럼 두려워하거나 불신하거나 죄를 즐기거나 우상을 좇거나 거짓을 따르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그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믿음과 평안을 누리고 끝까지 충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