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본문 : 고리도 후서 11:7-10
설교자 : 조 성 훈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들 중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크게 은혜를 입은 다니엘아”라고 하셨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그러했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을 너에게 숨기겠느냐”하시면서 하나님은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들 중 하나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가 지극히 많고 심지어 하늘나라에까지 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육체의 연약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사단의 가시’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한쪽에서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지만 다른 쪽에서는 지독한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고전 4:11).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열두 사도 중 하나가 아니니 사도 자격이 없다는 공격을 받았고, 말하는 것이 시원치 않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고후 10:10).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딤후 1:15).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사도 바울을 힘들게 했던 것은 몸의 가시였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 4:14)고 말하며, 자신의 육체에 사람들이 업신여길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는 눈의 이상이다, 간질이다 등의 여러 추측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키도 크고 멋있게 생긴 한 청년이 바닥에 쓰러져 발작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보았는데 잠시 후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를 보면서 내가 만일 그런 질병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를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몸의 가시가 만일 간질이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그를 낙심케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분명히 그것은 사람들이 볼 때 그를 무시할 만한 육체적인 결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 앞에서 일하는데 많은 지장을 주는 그것을 없애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고 이제 요단강 건너편에 이르러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었을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 하나님은 “이것으로 족하다”고 하시고 더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은, 지금 이 상태에서 충분히 은혜를 베풀만큼 베풀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지나갈 때 그림자만 덮여도, 그가 사용하던 수건만 놓아도 사람들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적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은혜를 충분히 베풀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바로 불평하고 낙심하거나 화를 내고, 때로는 하나님께 경고장을 보내지 않습니까? ‘이 기도 안 들어주시면 교회에 안 나가겠습니다’, 또는 ‘교회에서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등의 경고장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와 같이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만해지지 않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계시를 가지고 있고 귀하게 쓰임을 받을 때 누구든지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은 약한데서 강해지고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온전해서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하고 부족한 자를 쓰시는 이유는 그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받기를 원하셨기에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사도 바울에게 베푸신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그의 영혼을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던 그를 구원해 주셨다면 그것은 엄청난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구원받았다면 그것은 엄청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까지 구원을 받았다면 그보다 큰 은혜가 없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은혜 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베푸신 은혜로 두 번째는, 자신을 대적하던 자를 사도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주시며 그의 일을 할 그릇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께서 어떤 주님의 일에 쓰고 계시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받은 큰 은혜는, 그가 많은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또한 하늘나라에 직접 가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닙니다.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변화산에 갔던 것은 세 명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많은 계시를 보고 “내가 보았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이다”, “사람에게 전해들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들은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적인 결함 역시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사람들이 봤을 때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길 만한 결함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가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지금 이 상태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9절). 바로 주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주님께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이제 주님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경고장을 보냈나요?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9절). 우리 중에 이와 같은 사람이 많기를 바랍니다. 어려움 가운데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의 이와 같은 응답을 듣고 기뻐하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우리 중에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자세입니다. 성도님들마다 환경은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경제적으로, 어떤 분들을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만큼 베풀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로 하여금 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으로 인해 내 능력이 나타나 내가 영광받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0절). 이것은 나의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주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에 크게 성공해도 주님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시는 분 계십니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통해서, 지극히 높아졌을 때 교만하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나 살펴보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교만해질 수 있고 하나님을 떠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이고 그가 받은 축복은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헐벗고 굶주리고 두들겨 맞았지만 그것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자신을 절망하게 만드는 사단의 가시에 대해서는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쁘게 받아들임으로 신앙인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로또 복권이라도 당첨되어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수 조 원의 재산을 가진 부모가 자녀를 그냥 지켜보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로 하여금 참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자녀의 어려움을 그저 지켜보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가시를 두신 이유 역시 그를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동일하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와 같은 뜻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서운해 하고 때로 화를 내며 경고장을 보냅니다. 여러분은 요나의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이 멸망하기를 기도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마지못해 수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하나님 앞에서 화를 냅니다. 우리 역시 그런 요나의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도리어 자랑했습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내 영혼이 구원받은 것, 내 가족이 구원받은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것에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님이 사도 바울을 사랑하신 만큼 여러분을 사랑하실까요?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운 환경을 주님이 아실까요? 그런데 왜 그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지 않을까요. “내가 베푼 은혜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때 우리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고 주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주님이 주신 환경에 감사하며 그러한 삶으로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