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본문: 요한계시록 22장 6절 – 12절
설교자: 조정의
시한부 종말론은 언제나 이단적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기 때문이다(마 24:36). 예수님은 때와 시기를 알고자 하는 것도 명백히 금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반하는 행위 곧 종말의 시기를 추측하거나 계산하려는 행위를 즉시 멈춰야 한다. 국제 정세나 환경 오염, 심각한 죄의 만연 등으로 세상의 끝,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절대 말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종말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이단적 관점이 있다. 바로 종말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경고했던 말세의 조롱하는 자들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부정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만물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니 종말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정욕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했다(벧후 3:3-5). 이 거짓 가르침은 시한부 종말론만큼이나 이단적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7, 12, 20절) 선포하시면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12절).
어떻게 하면 종말의 때와 시기를 알려 하지 않으면서도, 주가 속히 오신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종말에 관한 말씀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을 올바른 근거를 가지고 붙들 수 있을까? 과도한 관심과 잘못된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관심과 건강한 열정을 적극적으로 가질 수 있을까? 주 오심을 기다리며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본문이 그 질문에 답을 준다.
1. 천사의 증언(6절): 하나님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다
먼저, 천사의 증언을 들어보자. 6절에서 증언하는 자를 “그”라고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 성을 안내해 준 천사가 그 주인공이다(21:9). 천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요한에게 한 말 곧 천국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가 ‘신실하고 참되다’라고 선포했다. 작은 것 하나도 허구로 드러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와 방법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증한 것이다.
단지, 천국에 관한 계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계시를 말한다(이 말):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6절). 이 말씀은 계시록의 첫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1).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A~Z)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고, 주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다(1:19). 그리고 기록된 계시의 특징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 벧후 3:21). 하나님은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라고 선언하셨다(사 46:11). 예수님도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확신하셨다(마 5:18). 우리가 계시록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말 계획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믿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종말에 관한 잘못된 확신은 잘못된 근거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세계 정치, 군사, 경제 상황, 자연재해와 범죄의 빈도수로 종말이 임박할 것을 확신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 말씀이 분명히 증언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면, 당신은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우린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라고 고백해야 한다. 주가 말씀하셨다. 당신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가?
2. 예수님의 증언(7,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본문의 7절과 12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다. 계시록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지만, 특별히 이 두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직접 인용한 것이란 말이다. 주님은 똑같이 두 번 반복하여(강조)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7, 12절). 각각 “보라”(behold)로 시작하는 것이 인상 깊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선포하신 순서는 먼저 천사의 증언이 있고 나서(7절), 그리고 요한의 증언이 있은 후에(12절) 위치한다. 주님은 각각이 증언을 마치고 난 후, 모든 사람을 주목하게 하시고, 그리고 모두가 똑똑히 듣고 기억하고 믿을 수 있도록 단순 명료하게 두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속히 오리라”.
이는 세상에서 가장 진실하신 분의 증언이다(“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 2:22).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증언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세상에서 가장 우리를 사랑하신 분의 증언이다(“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그래서 우리는 그분 말씀에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다.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신 주는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요구하실까? 주를 사랑하는 자는 속히 오실 그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
주님은 이 두루마리의 예언 즉 계시록의 말씀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7절). 예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계시록의 일차 대상이 아시아 일곱 교회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에게 주님은 두루마리의 예언을 본격적으로 풀어주시기에 앞서,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속적인 삶을 청산하고, 거짓 교훈을 물리치고, 말과 삶이 다른 신앙,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라고 하셨다. 전심으로 주를 따르고 믿음을 지키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기는 자”로 살라는 것이다(현재형). 그런 자에게 주님은 계시록에 기록된 복을 주신다. 그렇지 않은 자에겐 반대로 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께서 속히 오실 것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분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의 삶이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가 속히 오실 것을 믿는 자는 이기는 자로 산다. 믿지 않는 자는 주를 향한 사랑을 잃고, 고난을 두려워하고, 세속적인 삶을 살고, 거짓 교훈에 속고, 신앙의 고백과 실천이 따로 놀고, 미지근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주님의 속히 오심은 도둑이 들이닥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주님의 속히 오심은 즉각적이고 적극적이며 근본적인 회심을 항상 요구한다(마 24:42). 오늘 주가 오신다고 생각하며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
주님의 속히 오심은 경고를 알리는 알람 소리일 뿐만 아니라 승리를 알리는 나팔 소리이기도 하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12절). 주님의 본심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겔 18:23; 33:11; 벧후 3:9). 주님은 우리에게 상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줄 상을 기쁨으로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은 실제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을 주님께 한 것으로 보시고(마 25:40), 지극히 작은 일 곧 물 한 그릇을 주는 일에 관해서도 상 주실 것이다(마 10:42).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내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주가 속히 오셔서 당신의 수고에 보상하실 것이다.
3. 요한의 증언(8-11절): 때가 가까우니라
8-11절의 화자는 분명 요한이다: “나 요한이니”(8절). 요한은 계시록의 기록이 참되다는 증거로 자기 자신을 증인으로 내세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하여 강조하면서: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내가 듣고 볼 때에(8절). 증인으로서 요한의 증언이 신뢰할 만하다는 사실은 그가 고백한 실수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요한은 천사 숭배를 할 뻔했다(19:10).
계시록에 기록된 크고 무서운 환상 그리고 경이롭고 환상적인 장면에 완전히 압도되고 매료된 요한은 이 일을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다(8절). 그러자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9절). 이 말은 오직 하나님만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이 계시자이시다.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 계시를 따르는 성도들, 심지어 계시를 전달한 천사들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 남은 사도이자 온 교회의 아버지로서, 이런 실수를 기록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요한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상세하게 기록했고, 이것이 그 분명한 증거다.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하는 요한이 직접 보고 들은 중요한 증언은 바로 이어서 나오는 천사의 이 말이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10-11절).
이 말씀의 핵심은 ‘때가 가까우니라’에 있다. 주가 오실 때가 가깝기 때문에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인봉하여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모두가 듣고 보고 경고를 받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을 계시하시고 나서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단 12:9).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인봉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주가 진실로 속히 오실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은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칭찬과 격려와 책망의 말씀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 더러운 자에게 회개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있으라고 하셨을까? 이 또한 일차적으로 시간이 급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한 길에서 돌이킬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때가 가깝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야지 하고 어물쩍거리다가는 순식간에 그날을 만날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있으라고 하신 것이다. 날짜를 계산해 보면 아직도 멀리 남은 것 같은 때가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와 있을 때가 있다. 정해진 때를 향한 시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때도 계속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 계시록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말 계획은 기약도 없이 먼 미래의 언젠가 펼쳐질 일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은 도미노처럼 하나둘 넘어지며 성취되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때 종말에 이를 것이다. 당신의 시간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도 흐른다.
우리의 행위를 바꿀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은 그래서 우리의 행위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잘못된 행위를 돌이키고 올바른 행위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주님이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7절). 유독 계시록에는 ‘행위’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죽도록 충성하라, 끝까지 내 일을 지키라, 회개하여 온전한 행위를 가지라,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열심을 내라). 믿음은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 행위의 변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의 열매인 행위를 가져야 한다.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라. 삶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거룩함을 입어라.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가리켜 “이기는 자”,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라고 하셨다(14절).
시한부 종말론은 신도에게 모든 시간, 재물, 삶 전체를 바치라고 강요한다. 반대로 종말의 계시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가르침은 성도가 오직 자신을 위해서 시간과 재물을 사용하게 만든다. 성경적인 종말론은 양극단으로 치닫지 않는다. 철저히 우리가 선택하도록 자유를 허용하되, 아주 강력한 힘으로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주께서 진실로 속히 오신다. 지금 당신은 올바른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주께서 곧 오셔서 당신의 행위 대로 보상하신다. 당신은 영원히 보상 받을 일을 위하여 당신의 물질을 사용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