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안전한가?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25절 외
설교자 : 이병권
2020년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특별한 해인 것 같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문제였습니다. 장마가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계속되는 비로 인해 여러 지역에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자 그동안 잠잠했던 코로나가 크게 확산되면서 어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의 상황들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안전에 대해서 걱정하게 만듭니다. 뉴스에서 폭우로 인해 물에 잠긴 집과 차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집은 괜찮을까? 우리 동네는 문제가 없을까?’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가까운 곳에서도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밖에 나가기가 꺼려지고 신경을 쓰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이 안전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기를 원합니다. 안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안전을 추구하고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혹시 모르는 위험에서 안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처럼 안전이 위협을 받는 일이 생기거나 원하지 않는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안전한가?” 나의 상태를 점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안전하십니까? 혹시 불안하십니까? 지금 상황에서 대해서 두려움이 생기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안전을 느끼고 무엇 때문에 불안을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저는 오늘 안전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지 성경의 몇몇 말씀들을 찾아보면서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2020년 8월 23일 오늘은 유평교회 안전교육의 날입니다. 여러분은 안전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이 영상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은 분들은 잠시 동안 말씀에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안전에 대한 중요한 질문 두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 질문을 간단하게 말하면 “왜” 라는 질문과 “어떻게” 라는 질문입니다. 이유를 묻는 “왜”라는 질문과 방법을 묻는 “어떻게” 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질문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전제되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안전하지 않다니요! 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평소에는 안전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이 익숙하고 별일 없는 하루하루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되면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자연재해나 뜻밖에 재난을 겪게 되면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거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일까요? 어제까지 보고된 숫자는 309명입니다. 그러면 독감에 걸려 죽는 사람이 한 해에 몇 명인지 아십니까? 제가 2018년 통계 자료를 찾아봤는데 720명이 독감으로 사망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감시대상이 되는 병을 법정감염병이라고 하는데, 결핵, 홍역, 수두,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이런 병들입니다. 2018년에 이러한 법정감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3천71명입니다. 한 해 동안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3천529명입니다. 그리고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2천142명입니다. 작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 의하면 흡연과 관련해서 죽은 사람의 수가 6만1723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위험에 익숙해져서 잘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에 위험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칼이며 가위, 전기 콘센트, 미끄러운 욕실 바닥, 가끔 집에서 나오는 지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서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은 늘 주변에 가까이 있습니다. 사람은 안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오늘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입니다. 왜 사람은 안전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안전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질병이나 사고의 위험이나 예측할 수 없는 재난 때문이 아닙니다. 안전을 빼앗는 이러한 위험요소들은 결과적인 현상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안전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길을 잃은 양으로 비유됩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인생은 목자를 떠나 길을 잃어버린 양과 같습니다. 양은 목자와 함께 있을 때 안전할 수 있습니다.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자 없는 양은 어떨까요?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은 어떠하겠습니까?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목자의 품을 떠나서 각기 제 길로 간 어리석은 양이 안전할 수 있을까요? 양은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양은 방향 감각이 없고 둔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주릴 수 있고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절벽이나 위험한 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절대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은 내 길이 맞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안전할 수 없습니다. 목자를 떠나 길을 잃은 양이 안전할 수 없듯이 부모의 품을 떠난 갓난아이가 안전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안전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코로나의 상황은 이 사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신의 건강이나 안전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다시 안전하게 된다고 해도 끝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안전이 걸린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단지 이 땅에서의 안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의 안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떠난 후에 직면하게 될 위험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경험합니다. 코로나로 죽든 다른 일로 죽든 어떻게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진짜 문제는 진짜 위험한 일은 그 다음에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 심판에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기에 이 땅에서 안전할 수 없고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떠난 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안전한가?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내가 왜 안전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왜 안전하지 않은지 알 때 안전하지 않은 이유를 알 때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하지 않은 이유를 아는 것은 진짜 안전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걸 모르기에 정말 우선해야 할 영원한 안전보다 눈앞에 보이는 안전을 위해 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안전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영원한 안전을 위한 일, 내 영혼의 안전을 위한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12장에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가 그러했습니다. 부자는 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거둡니다. 그 수확한 것이 얼마나 많았던지 더 이상 곡식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짓기로 합니다. 우리는 비유에 나오는 부자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부자가 실제로 우리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여전히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다르게 생각할 것입니다. 성공한 부자, 재테크에 능한 능력 있는 사람, 미래를 준비하는 안목 있는 사람, 부러워할 만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한 부자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부자가 왜 어리석은 부자입니까? 부자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 부자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는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안전에만 마음이 빼앗겨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전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으로 기쁨을 얻고 가진 것으로 안전을 도모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정말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안전과 이 땅에서의 만족을 생각하느라 정말 중요한 영원한 안전,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의 안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에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그 날에 이러한 일을 겪게 될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다가 그 날에 되어서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사람들은 그냥 안 믿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상황으로 생각하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이것저것 열심히 수고했는데, 그런데 그 날에 가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안전하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했고 함께 예배드렸고 함께 봉사했던 분들 중에 그 날에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실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 무서운 일이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말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안전한가?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안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안전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근거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열심히 예배드리고 있어요,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삽니다. 하나님 말씀 듣고 있어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따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적이 없다면 사실은 주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한 채 자기만족과 착각 속에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안전한가?
환자가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환자가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의사가 있다고 해도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스스로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믿음에 대해서 실격한 사람입니다. 가짜입니다. 그 날에 나의 안전이 가짜로 드러나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오늘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은 안전할 수 있습니까?
참된 안전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떠나 안전할 수 없는 인생이 다시 안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안전을 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안전은 이 말씀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자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인생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누구에게 주십니까? 믿는 자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열심히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착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헌금 많이 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안전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 안에 있을 때 영원히 안전할 수 있습니다.
이 안전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냐고,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하겠냐고 도전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그분에게 내 운명을 맡겼다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바이러스도 그 어떤 위험도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안전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찬양의 가사처럼, 주 약속 안에서 내 영혼 평안합니다. 두려움 다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내 영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넘어지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분이 부족한 나를 붙들어 주시고 끝까지 그 손을 놓지 않으시니 우리가 안전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의 배경이나 신앙의 연륜이나 가진 것이 아니라 나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고 그 안에서 영원히 안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교회 다니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셨습니까? 그냥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 사랑 안에서 안전합니다. 어떤 재난이나 환란이 우리를 흔든다 할지라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주님 안에 있는 우리의 안전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 안에 있는 안전을 기억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안전에 마음 뺏기지 말고 영원한 안전을 가진 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계속되는 코로나의 위험에 대해서 조심하되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목회상담학 교수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폴 트립이 쓴 시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폴 트립이 시편을 묵상하며 안전에 대해서 쓴 시입니다.
나는 안전합니다. 어려움이 없어서도 아니고 위험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나는 안전합니다. 질병에서 면제되어서도 아니고 가난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워서도 아닙니다. 나는 안전합니다. 실망으로부터 보호받거나 타락한 세상에서 분리되어서도 아닙니다. 나는 안전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나 나의 권력, 나의 지위, 나의 지식, 사람, 내가 사는 곳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안전합니다. 당신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유일한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당신 자신을 주셨습니다. 나는 위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주는 유일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분 자신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면 안전합니다. 우리 자신은 안전하지 않고 세상의 수많은 가짜들이 우리를 현혹시키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안전한가?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안전합니다. 이렇게 고백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 말씀을 듣고 계신 분들 중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은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당신에게 안전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당신을 영원히 지켜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녀, 가족의 유일한 소망이 되십니다. 이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분이 없으면 너무도 위험합니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심판에서 우리를 건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그분을 믿음으로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안전할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