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도할 때 기억할 것 세 가지
본문 : 누가복음 11장 5~13절
설교자 : 이병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호흡, 숨 쉬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라고 이야기했고, 신약에서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님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친히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기도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예수님께서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많이 기도하셨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중요한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도 그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또 이르시되” 예수님은 짧은 비유를 말씀하시며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가십니다.
그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는 ‘기도의 태도’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5-8)
우리는 어떤 태도로 기도해야 할까요? 8절에 나오는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간청함”입니다. 예수님은 짧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비유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이고 때는 한밤중입니다. 여행 중인 사람이 한 친구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뜨거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종종 밤에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늦은 밤에 찾아온 친구, 약속되었거나 예상했던 방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주인은 방문한 친구에게 대접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손님이 방문했을 때 풍족하게 대접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집에는 먹을 게 없습니다. 요즘에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 들어 있어서 음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음식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지만, 이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매일매일 그날의 필요에 따라 먹을 것을 준비했기 때문에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음식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손님이 왔는데 대접할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난감한 상황입니까?
그 때에 집주인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또 다른 친구에게 남은 음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그 친구 집에 가서 음식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이기에 친구 집에 가서 음식을 빌리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방에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잤습니다. 늦은 시간에 누군가를 부르는 것은 그 집안사람 모두를 깨우는 일입니다. 분명 친구의 집에 가서 음식을 얻으려면 이 모든 일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집주인은 친구를 찾아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에게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요청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밤중에 단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지금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요즘처럼 간단하게 전등을 켜고, 밥통에 있는 밥을 떠주는 일이 아닙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램프를 찾아 불을 밝혀야 했을 것입니다. 집안에 있는 가족들은 물론, 가축들도 깨울 수 있습니다. 잠겨있는 현관문을 열고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고리에 걸려있는 삐걱거리는 빗장을 들어서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갈등이 있습니다. 이 요청을 받은 때가 한밤중이기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모른척하고 자면, 저러다 말고 돌아가겠지!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 밤중에 아이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 가는 일은 정말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모른척하고 아내에게 미루기도 합니다.
친구의 요청을 받은 사람이 충분히 갈등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문밖에 있는 사람이 친구라는 것입니다. 낯선 누군가의 요청이 아니라 친구가 요청합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친구의 요청이니 어지간해서는 불편하더라도 그 요청을 들어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비유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친구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문밖에서 간청함으로 구한다면 그것 때문에 일어나 그 요구대로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간청함’이라는 말이 중요한데, 성경에서 딱 한번 여기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좀 어려운 단어입니다. 간청함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는데 담대함과 뻔뻔함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간청함은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간절하게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이 간청함을 강조하십니다. 주면 좋고 아님 말고, 그러든지 말든지, 이런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간절함으로, 부끄러움을 내어버리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끈질기고 적극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특권이며, 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런 태도로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렇게 간청함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할 것, 두 번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할 것, 두 번째는 ‘기도의 약속’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9-10)
여기 9절에 세 번이나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입니다. 기도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그러면”으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에는 “그러면”이 있습니다. 기도했을 때, “그러면”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기도에 대한 약속, 기도 응답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단순히 입술의 중얼거림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직접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에 세 개의 명령이 있습니다. 모두 현재형으로 반복해서 이 일을 해야 함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계속 구해야 하며, 계속 찾아야 하며,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세 명령을 하나씩 살펴보면, 먼저, 구하라고 하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부탁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높으신 하나님께 합당한 자세로 기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찾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알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인내함으로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리는 것, 끈질기게 적극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개의 명령을 간단히 정리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한 자세로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했을 때 반드시 그 응답이 있습니다.
저희 집 막내딸은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 정말 끈질기게 저를 부릅니다.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계속 저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닙니다. 제가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끝까지 계속해서 부릅니다. 그런 딸의 모습에서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찾으면, 그러면 찾을 것입니다. 우리가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면, 그러면 아버지께서 문을 여실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역사하심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기도에 약속이 있기 때문에 기도가 무언가를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가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그 섭리 가운데 선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약속을 신뢰하며, 기도할 때 변화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상황을 바꾸십니다. 혹은 그것이 나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바꾸시는 겁니다. 더 주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더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기도,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별 의미가 없어 보일 때도 있고, 종교적인 의무처럼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라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작은 목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고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대해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간청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약속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할 때,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도의 시간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약속을 신뢰함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에 대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해야 할 세 번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할 것, 세 번째는 ‘기도의 결과’입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3)
예수님은 두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를 비교하면서, 하늘 아버지의 선하심과 그분이 자녀에게 주시는 좋은 것, 선물을 말씀하십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자녀에게 생선 대신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자녀가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주지는 않습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녀의 요청에 얼마나 더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자녀를 위해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하늘의 아버지께서 자녀를 위해 주는 좋은 것, 그것은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성령님을 감히 무엇과 비교하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부 사이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기에 정말 좋은 것들을 아내에게 주려고 합니다. 아내를 위해 다이아반지, 명품가방, 최고급 화장품, 아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 선물로 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선물을 아내에게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선물, 남편이라는 선물을 이미 주었기 때문에 다른 선물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이미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선물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허락하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 선물을 받는 것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얻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며, 살아있는 소망,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좋은 것들이 성령님이라는 선물로 압축되어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 선물을 받아서 포장을 열어보면 우리는 정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 정말 좋은 것들이, 진짜 좋은 것들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선물은 장차 임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이 선물은 지금 이 세상에서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임할 세상에서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받은 선물의 가치는 그 때에, 그 영원한 나라에서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놀라운 선물이 어떻게 주어집니까? 기도, 바로 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결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리라”
여러분이 성령님을 받은 자라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은 자라면, 그것은 기도의 결과입니다. 나의 기도일 수 있고, 나의 가족의 기도이거나,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약속을 신뢰하는 누군가의 끈질긴 기도를 통해 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님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분, 기도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기도의 결과로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상한 아버지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입니다. 가장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가장 유익한지 잘 알고 계시는 아버지입니다. 이기적이고 속 좁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무능하고 힘이 없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너무 바빠서 자녀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쉽게 화를 내고 자녀에 대해 무관심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꺼이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께 간청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심을 의지하고, 약속을 신뢰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기도의 결과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주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기를 멈추기도 하고 기도하면서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 가운데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시고, 그분의 섭리 가운데, 그 뜻에 따라, 우리의 기도를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는 어떻겠습니까? 사랑이 한이 없으신 아버지께서 자녀를 위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뿐인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가장 값진 것,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는데 무엇을 더 아끼겠습니까? 다른 좋은 것들도 기꺼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에게 유익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기도하며 하늘 아버지께 나아간다면,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삶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기도가 필요하십니까? 혹시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도 없이도 잘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계십니까?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만납니다. 때때로 주님은 우리가 주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때는 정말 주님께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은 그 상황에서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기에 더 합당한 모습으로 다듬어 가시는 겁니다. 그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의 도움이십니다. 내 삶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광야에서 우리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혹시 지금 힘든 상황 가운데 계십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런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십니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난감한 상황에 빠져 계십니까?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이 주시는 응답을 기대하며, 그분의 허락하심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자녀와 가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교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기도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곳이 너무도 많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부족한 나 자신을 볼 때마다 기도할 내용이 정말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끔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때로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하나님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가끔은 우리 주변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영원한 멸망에서 건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누군가의 삶이 바뀌고, 누군가가 더 주님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고,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 섬기고 봉사하는 모습, 우리 하나님을 높이며 영광 돌리는 모습,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모습, 누군가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가 죄를 회개함으로 잘못으로부터 돌이키고, 누군가가 주님의 임재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기를 바라고,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이 일을 함께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가운데 계속 역사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드러나도록,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간청함으로 간절한 태도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기도합시다. 기도의 결과를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분의 선하신 뜻을,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그분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