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본문 : 빌립보서 2장 5절~11절
설교자 : 조 정 의
매년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선물도 교환하고 캐럴을 듣고 부르기도 하며 밝고 흥겨운 분위기를 즐긴 다. 하지만 이번 성탄절은 뭔가 다르다. 캐럴을 부르는데 예전처럼 성도가 함께 모여 기쁨으로 찬양할 수 없다. 트리를 만들었지 만, 함께 보며 즐거워할 수 없다. 각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지만 온 교회가 일어나 다 찬양하지 못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가 매년, 이맘때 그랬던 것처럼 주님의 오심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기 힘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고 높게 헤아리게 하는 말씀이 필요하다. 성탄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독 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며, 세상을 오랜 슬픔과 염려로 가득 채운 코로나바이러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원한다. 빌립보서 2장 5-11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어떻게 겸손히 자신을 낮추셨는지, 또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지극히 높이셨는지 살펴보기 원한 다. 그리고 낮추신 그 깊이와 높이신 그 높이가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사랑임을 기억하며 위로와 격려를 받고 도전을 받기 원한다.
- 그리스도의 겸손(6-8절)
6-8절에서 노래하는 대상은 그리스도 예수님이다. 주제는 그리스도의 겸손이며, 주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성육신, 공생애, 대속을 찬송한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 자기를 낮추신 삶,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그분의 겸손을 확실히 보여준다(8절).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셨다고 할 때, 그것을 제대로 가늠하거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존엄하며 전능하신 분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어디까지 낮아지셨는지 제대로 알려면 먼저 그분이 얼 마나 높으신 분인지 알아야 한다.
6절을 보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노래한다(현재분사). 영원 전부터 변함없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요 17:5).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은 유일하신 참 하나 님의 본질과 성품을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다.
그분은 영원하시고(요일 1:1-2), 불변하시며(히 13:8), 모든 것을 아시고(골 2:2-3), 거룩하시며(행 3:14-15), 만물과 병과 귀 신을 다스리는 전능자시고(마 8:23-27; 눅 4:33-40), 그 안에 생명이 있어(요 1:4) 죽은 자를 살리신다(요 11:43-44). 만물이 예수님에게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히 1:3). 이처럼 가장 높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디까지 자신을 낮추셨는가?
7절을 보면 그분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자기를 비우셨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합당하지 않은 자리를 스스로 취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 곧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되셨다는 것이다. 겸손히 낮추신 것이다.
예수님의 겸손은 세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심. 둘째, 자기를 낮추심. 셋째, 죽기까지 복종하심(8절).
먼저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신 것은 정말 큰 겸손이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는데,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고 머 리는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같이 된 채 7년 가까이 살았다(단 4장). 제국의 왕에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식과 지혜가 무궁한 하나님이 유한한 지혜와 지식을 가진 육신을 입으셨다. 졸지 않고 피곤치 않으신 하나님이 피곤을 느끼는 육신을 입으셨다. 생명을 주시는 이가 생명을 빼앗길 수 있는 사 람이 되셨고,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 되셨다. 잠을 주시는 하나님이 잠이 필요한 사람이 되셨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되셨다.
예수님의 겸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분은 자신을 낮추셨다. 7절에 말하는 것처럼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나셨더라도 섬김 받고 칭송 받는 높은 신분과 혈통을 가지고 살수 있지 않은가? 육신을 입으신 것도 한참을 낮추신 건데 이 땅에서만큼은 가장 높은 대우를 받으실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 어나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는 무명한 동네 출신으로 자라셨다. 머 리 둘 곳 없이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피곤할 정도로 가난한 자에 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비난과 핍박이 뒤따랐다. 주님은 말씀하 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 기려 하고”라고 하셨다(마 20:28). 그분은 자신을 낮춰 육신이 되셨고 더 낮추어 섬기는 종의 삶을 사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겸손은 끝을 향해 더 깊이 내려간다. 그분은 죽 기까지 복종하셨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수치스러워 로마 시민에게는 내리지도 않았던 십자가 처형을 받고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그분 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셨 다. 열두군단 되는 천사를 구하지 않으시고(마 26:53),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 부끄러 움을 개의치 않으셨다(히 12:2).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토록 자신을 끝까지 겸손하게 낮추신 것일 까? 예수님은 강요에 의해서 혹은 마지못해서 자기를 낮추신 것이 아니다. 6절을 보면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움켜쥐고 이기적으로 쟁취하려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 기를 자발적으로 낮추셨다. 육신을 입으신 것, 종이 되어 섬기는 삶을 사신 것,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모두 아버지를 사랑하 여 그분을 영화롭게 하려고 자발적으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겸 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 사오니”(요 17:4).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께 주신 일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아들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일이다(요 17: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겸손은 바울의 말처럼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 고 가난하게 되신 것이다(고후 8:9). 육신을 입으신 것, 종이 되 어 섬기는 삶을 사신 것,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모두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겸손이다. 우리는 가 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겸 손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영광(9-11절)
9-11절에서 노래하는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주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겸손히 순종하신 아들 예수님을 어떻게 높이셨는지에 관한 것이고,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 늘 보좌에 앉으신 것을 찬송한다. 고난 받은 종이 영광을 받으신 것을 노래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한다.
9절 시작을 보면 이러므로로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겸손의 결과 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 지극히 높이셨고, 둘째,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 다(9절).
먼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다는 것은 부활과 승 천을 가리킨다. 무덤에 묻힌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셨다(엡 2:6). 베드로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셨다고 오순절에 선포했다(행 2:33).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여 사망과 음부를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 가장 높은 곳까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다(엡 1:20).
하나님 아버지는 단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신 것이 아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이 말은 예수님께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이름을 새롭게 지어 주셨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으로서 그분의 인격과 존엄과 영광을 높이시고 모든 권능을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 게 주셨”다고 말씀하셨고(마 28:18),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요 5:22).
그 결과 10-1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늘에 있는 자들 곧 천사 들과 땅에 있는 자들 곧 사람들, 그리고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인 죽은 자 혹은 타락한 천사들까지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10 절).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11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기쁨과 경외로 그리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들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그리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혀도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지 않는 혀가 없고, 어떤 무릎 도 그분 발 아래 꿇지 않을 무릎이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11절). 그리스도의 겸손을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모두 영광을 받으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를 믿는 자의 소망이다.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기 때문이다(엡 2:4- 6).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다(롬 8:1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영광의 기업을 주셨다(엡 1:18).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긍휼이 풍 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높이를 헤아릴 수 있다.
- 적용(5절)
그리스도의 낮추심과 높아지심, 그리스도의 겸손과 영광은 우리 에게 격려와 도전을 준다.
먼저 그리스도의 낮추심은 하나님 사랑을 확증한다(롬 5:8). 가 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겸손은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절대 우리를 끊을 자가 없다는 확신을 준다(롬 8:39). 죄를 짓고 넘어질 때, 연약하여 유 혹에 흔들릴 때,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힐 때, 슬프고 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범사에 종처럼 섬기는 삶을 사신 그분,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모든 환경과 상 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
또한 그리스도의 겸손은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주님은 우리에 게 주님의 겸손을 배우라고 하셨고(마 11:29), 주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고(요 13:14-1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3:35). 사도 바울도 본문을 통 해 빌립보 성도들에게 요구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낮은 자로 살고 있는가? 섬기는 자로 사는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고, 자존심을 굽힐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려 낮추신 그 깊이에 당신이 넘어야 할 장애물을 대어보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 고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마 18:4) 하늘 보좌에서 십자가까지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겸손의 본을 좇으라. 당신은 낮추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핑계를 절대 댈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신 것을 통해 우리는 큰 격려 와 위로를 받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영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졌다 (골 3:3). 그러므로 땅의 도적이 빼앗을 수 없는 보화를 그리스도 안에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고 위로를 받자. 우리에게 주어진 천 국 보화 곧 영생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해할 수 없다. 이 땅에 살면서 잠시 뿐인 영광을 얻지 못해 슬프거나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라. 모든 눈물과 고통을 잊을 만큼 지극히 높고 뛰어난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가 함께 세세토록 누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에게 큰 소망과 위로가 되면서 동시에 도전이 된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명령했다(골 3:1).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당신의 영광이 되시는가? 당신은 이 땅에 살면서 항상 그리스도가 계신 위의 것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산다 면, 우리는 기쁨으로 그분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사모하여 이 땅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순종하며 살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신 실제 역사적 사건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신 사건 곧 부활과 승천도 역사적 사건으로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영광을 실제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삶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천군 천사가 노래한 것처럼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이 땅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로 평화를 누리며 살자(눅 2:14). 그리스도가 항상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