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인의 옷장 정리
본문: 골로새서 3장 1절~17절
설교자: 이병권
저는 오늘 우리의 인생을 옷장에 비유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옷장에 빗대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전체구조를 보면 각 단락이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까? 1절에 “그러므로”, 5절에 “그러므로”, 12절에 “그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세 단락은 “그러므로” 라는 말을 통해 앞의 단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기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늘 본문은 3개의 객차로 구성되어 있는 기차입니다. 그리고 이 3개의 객차를 연결하는 고리가 “그러므로”입니다. 각 단락은 앞의 단락과 “그러므로”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첫째 단락은 2장과 “그러므로”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장에는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그 일로 인해 믿는 자들이 얻은 자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2장에서 말씀한 내용의 결과로 3장이 따라오는데, 그래서 3장은 믿는 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각 단락에 핵심이 되는 명령이 있습니다. 첫째 단락은 “찾으라” 둘째 단락은 “죽이라” 셋째 단락은 우리 성경에 다음 절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옷 입고”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 단어가 원래는 명령입니다. ‘입으라’는 것입니다. 각 단락을 시작하는 세 명령이 있습니다. 첫째 찾으라, 둘째 죽이라, 셋째 입으라. 그럼 이 명령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첫째 명령 “찾으라”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1)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 무엇입니까? 무엇을 찾으라고 말씀합니까? “위의 것”입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그럼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먼저 위는 어디를 말하는 걸까요? 1절을 다시 보면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2절에도 위가 나오는데 “위의 것”과 “땅의 것”이 대조됩니다. 그래서 위의 것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계시는 하늘에 속한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위의 것을 찾아야 할까요? 1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위의 것을 찾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는 게 뭐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찾으라”는 명령을 다른 표현으로 다시 언급합니다. 어떤 명령을 하고 있는지 2절을 보십시오. ‘위의 것을 생각하라‘ 위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땅이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가 누리게 될 하늘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왜 우리가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 위의 것을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위의 것으로 내 생각을 채우고 내 마음을 채우고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 속한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생명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생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보입니까?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있는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그 생명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생명이 그러하듯이 우리에게 있는 하늘에 속한 것들이 다 그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안 보입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온 통 이 땅에 속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목표로 두고 가지려고 하는 것들, 영원하지 않은 것들, 썩어 없어질 것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 세상에 속한 것들이 우리 눈에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이 땅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보는 것들이 전부 땅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 분명히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4)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 날에는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 날에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은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것들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에게 확정되어 있는 것, 위의 것으로 기뻐하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에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제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볼까요? “그리스도인의 옷장 정리” 여러분은 옷장에 무엇을 넣어 두십니까? 옷장은 옷을 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김치나 된장을 옷장에 넣어서 보관하면 어떨까요? 그런 일은 옷장을 완전히 망치는 일입니다. 옷장에는 옷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위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복잡하게 되고 꼬이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들로 내 생각을 채우고, 영적인 것들로 내 마음을 채우고, 땅에 속한 것들은 밖으로 빼내야 합니다. 합당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맞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옷장에 썩어질 것들을 들여놓지 마십시오. 옷장에 쓰레기를 두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과 방향에 맞지 않는 것들은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찾는 사람입니다. 땅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내 옷장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내 인생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둘째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둘째 명령 “죽이라”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5)
“죽이라”는 명령을 들으니까 좀 무섭지 않으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죽이라니 조심하라 정도로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아주 강하고 단호하게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여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여야 하는 것은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명령과 함께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악한 본성에서 나오는 욕망과 관련된 죄들을 말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울타리를 벗어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상숭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을 따라 땅에 있는 지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때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성적인 죄라면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버리고 성적인 욕구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죽여야 합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죄악 된 본성을 죽여야 합니다. 이미 죽었고 또한 계속해서 죽여야 하는 두 가지가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지체를 따랐을 때 따라오는 결과가 있음을 기억하고 욕망과 죄가 주는 일시적인 만족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았을 때 따라오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6)
죄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무시하고 죄악 된 본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전쟁입니다. 죽이든가 아니면 죽임을 당하든가,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함으로 이 명령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집에 지네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네도 생명인데 죽이면 불쌍하니까 그냥 나둘까요? 지네에게 물려 본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즉시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해로운 벌레 하나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우리는 그 벌레를 살려두지 않습니다. 그 벌레를 잡아 죽입니다.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막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합니다. 나의 가족이 아픔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벌레 하나에도 이렇게 대응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죄악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죄악 된 본성을 죽여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욕심에 따라 악한 정욕을 좇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전에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8)
사도 바울은 죽이라는 명령과 연결되는 또 다른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그리고 5절에서와 같이 죄악 된 행위들을 나열합니다.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바울은 이 죄악 된 행위들을 옷으로 비유합니다. 벗으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들입니다. 이런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벗어야 합니다. 우리 옷장에 이런 옷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입었던 옷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 옷을 가리켜 옛 사람과 그 행위라고 말씀합니다(9). 땅에 있는 지체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더러운 옷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서 혹은 무더운 여름에 밭에서 일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합니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벗어 두었던 땀과 먼지로 축축하고 더러운 옷을 다시 입으면 어떨까요?
샤워하고 나서 얻었던 상쾌한 기분은 그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 그 냄새와 찝찝함을 생각해보십시오. 차라리 샤워를 하지 않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모를 텐데 씻고 나서 이전의 더러운 옷을 다시 입는 것은 정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따라 죄를 행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어울리지 않는 옷을 우리는 벗어 버려야 합니다. 죄를 행하려고 하는 악한 본성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그 모든 말과 행동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완전히 퇴출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된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옷입니다.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시고 점검해보십시오. 혹시 버려야 할 옷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모를 때 입었던 옷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옛 사람을 이제 그만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옷장에서 빼두었다가 다시 넣지 말고, 미련을 버리고 철저하게 버리십시오. 다시 입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셋째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셋째 명령 “입으라”입니다. 우리가 우리 옷장에 합당한 옷들, 하늘의 속한 것을 넣어두고 죄를 따랐던 옛 사람의 옷들을 모두 버렸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에게 맞는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어떤 옷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12)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떤 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자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과 반대되는 새 사람의 성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사람의 성품을 살펴보면 이 성품들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성품을 따라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이러한 성품을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을 먼저 입으셨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의 본을 좇아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거룩하게 된 자로서,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성품을 옷 입고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것을 우리 마음에 품고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긍휼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긍휼을 옷 입고 서로가 서로를 긍휼히 여깁니다. 주님이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를 옷 입고 서로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주님이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용서합니다. 주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삶으로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삶을 본받아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았고, 우리가 먼저 용서를 받았고, 우리가 먼저 그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 경험한 것을 실천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입어야 할 옷입니다. 우리 옷장에 있어야 하는 옷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로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옷은 벗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 된 성품을 벗었다면 새 사람에 어울리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옷장을 정리하고 새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끝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입은 옷을, 그 패션을 완성하려면 하나가 더 남았습니다. 뭘까요? 사람들은 패션의 완성을 ‘얼굴‘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패션을 완성하는 조건이 다릅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을 때 그렇게 우리가 입은 옷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14)
패션의 완성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근사한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사랑이 빠져있으면 부족한 옷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사랑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3:2).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더해야 온전해집니다. 사랑을 더해야 제대로 옷을 입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장에 들어있는 모든 옷을 사랑으로 리폼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빠져있는 부족한 옷이 있다면 수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성품이 내 삶에 실제가 되도록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으로 용서하고,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자비를 베풀고,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사랑으로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주님이 입으셨던 사랑의 옷을 우리가 실제로 삶으로 입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성도들 사이에 다툼이 있기도 하고 교회 안에서 서로에 대한 상처나 원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의 배우자나 자녀에게 조차 이것을 실천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벗어야 할 옷이 무엇인지, 내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지, 내가 실천해야 할 주님의 성품이 무엇인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사랑 받은 자처럼 나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먼저 용서하셨으니 주님이 용서하신 것 같이 나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마음에 두고 실천할 때, 정말 실제 내 삶에서 노력할 때,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주님께 도와달라고 매달릴 때,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하나 됨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으로 옷을 입고 함께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을 닮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풍성히 거함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함께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옷이 바뀌면 사람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래서 ‘옷이 날개’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옷으로 사람이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옷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바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옷은 사람을 다르게 보이게는 할 수 있지만, 단지 그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옷으로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을 옷 입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나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나를 바꾸어 가십니다. 나의 옛 성품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내 삶을 채워갑니다. 내 삶의 태도가 변하고 내 인생이 바뀌어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그리스도인이 되어갑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가 정말 나의 생명이 되신다면 위에 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숙제를 내드리려고 합니다. 숙제는 여러분이 매일 아침 일어나 옷을 입을 때마다, 옷장 문을 열고 옷을 꺼낼 때마다, 옷장 서랍에서 옷을 꺼낼 때마다, 옷을 입고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벗어 버려야 할 옷이 무엇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옷장을 볼 때마다 그리스도인의 옷장이 어떠해야 하는지, 내 삶에서 정리해야 하는 옛 사람의 옷은 없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는 가지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이 있고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이 땅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는 하늘의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고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