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의 몸, 지체의 각 부분 2/2
본문: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
설교자: 조정의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 1:22; 골 1:18). 머리이신 예수님은 교회를 친히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아버지께 구하여 성령을 주셨고, 성령이 신자들의 무리에 권능으로 임한 오순절, 교회는 시작됐다(행 2장). 주님은 교회가 함께 서는 데 필요한 은사를 성령으로 각 지체에 나누어 주셨고,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은사들을 통하여 지금까지 자기 몸으로 삼으신 교회를 세워가신다. 어떤 은사들은 이제 사라졌고, 어떤 은사들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은사를 사용하셨는지, 그 사랑의 역사를 살펴보자.
1. 사도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다(28절).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은사를 누가 주시는가? 세 가지 대답이 다 가능하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은사는 성령이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11절). 또한 은사는 예수님이 아버지께 받아서 성령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은사)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그래서 은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물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셔서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기 위하여 본문이 말하는 몇몇 은사 받은 자를 특별히 교회에 세우셨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세우신 첫째 은사는 사도다(아포스톨로스). 첫째, 둘째, 셋째, 그 다음(“그 후”)은 중요성에 따른 순서이기보다 시간상의 순서다.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하신 일꾼은 사도였다. 특별히 열두 사도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직접 부르신 자들로(마 10:2),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목격하고 가르침을 전수받은 제자들이었다(막 6:30; 행 1:21-2). 예수님은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눅 6:13). 그중 가룟 유다가 배교하여 탈락했고, 대신 제비뽑기로 맛디아가 열두 사도 중 하나가 되었다(행 1:26). 사도들은 초대 교회가 세워지는 데 기둥, 기초석 같은 역할을 했다(갈 2:9; 계 21:14). 그리스도의 복음을 권능으로 선포했고(행 4:33), 기사와 표적으로 그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확증했다(행 2:43; 5:12). 또한 교회를 진리로 양육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행 2:42). 흩어진 곳에 세워진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인지 성령으로 확증하는 일을 했다(행 8:14; 11:1). 교회 전체의 교리적 다툼이 있을 때, 중재하는 일도 했다(행 16:4).
성경은 열두 사도 외에 또 다른 사도를 언급하는데, 바로 바나바와 바울이다(행 14:14). 두 사도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직접 목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열두 사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이방인 지역에 권능으로 선포했고(행 13:2), 예수님이 직접 자기 일꾼으로 부르셨으며(고전 1:1; 갈 2:8), 기사와 표적을 행했고(행 15:12), 이방인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돌아보는 일에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점에서 사도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신 예수님은 이렇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엡 2:20).
2. 선지자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교회의 터로 세우신 둘째 은사는 선지자다(프로페테스). 선지자는 보통 구약 시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전령으로 알려졌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선포하는 역할을 했다. 신약 성경에 언급된 선지자는 대부분 구약 선지자로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행하실지 예언한 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는지 확증할 때 거론했다. 사도행전엔 신약 시대 선지자들도 나온다(행 11:27; 13:1; 15:32). 그중엔 바나바와 바울(사도), 유다와 실라, 아가보 등이 있다. 그들은 구약 선지자들처럼 종종 미래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예언하기도 했지만(흉년, 바울의 결박), 그들이 주로 한 것은 구약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메시아를 증언하는 일이었다. 신약의 선지자들은 바울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가르치신 모든 것을 권위 있게 선포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한 충분하고도 무오한 계시인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하나님께 직접 받은 예언의 은사로 교회를 굳게 세우는 일을 사도와 함께 담당했다.
3. 교사
셋째로 하나님이 교회를 위하여 세우신 은사는 교사다(디다스칼로스). 예수님은 종종 “선생님”이라 불렸는데, 이는 하나님 말씀인 율법의 참 의미를 백성들에게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 22:36). 바울과 바나바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과 더불어 교사로 불리기도 한다(행 13:1). 특히 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여러 은사 받은 자라는 사실을 밝혔다(딤후 1:11).
아직 기록물로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말씀을 사도와 선지자가 성령의 은사로 받아서 선포하는 역할을 했다면, 교사는 그렇게 선포된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성도들에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가르치고 권하는 일을 했다. 사도와 선지자가 심는 일을 했다면, 교사는 물을 주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전 3:6). 로마 가톨릭이나 극단적인 은사주의 교회에서는 지금도 사도와 선지자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과 발언이 교회 전체에 권위를 갖는다. 하지만, 신약 시대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교회의 유일한 기초와 터가 되시는 예수님에 관한 충분한 증언이(성경) 교회에 이미 주어졌다면, 우리에겐 그 증언 외에 추가적인 계시가 필요 없다. 이제는 교사의 은사를 가진 자를 통하여 그 증언의 참 의미와 적용을 배우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성령님은 지금도 지혜와 지식의 말씀 은사를 교회에 주셔서 목사와 교사로서 교회를 먹이고 돌보신다(고전 12:8; 딤전 3:2; 딤후 2:24).
4. 능력을 행하는 자/병 고치는 은사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셋째 은사 후에 그 다음으로 세우신 두 가지 은사가 나온다. 둘 다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는 은사다. 병 고치는 은사는 일반적인 치유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능력이고, 능력을 행하는 자는 병 고치는 은사 외에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 받은 자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표적을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요 3:2).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고(눅 4:40), 물 위를 걷거나(마 14:25),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요 2장), 파도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고(눅 8:24), 귀신을 내쫓으시고(눅 9:42), 오병이어로 수만 명을 먹이시는(마 14:21) 등 놀라운 능력으로 당신이 선지자가 예언한 그리스도라는 자신의 증언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권능을 주”셔서 예수님을 증언할 때 권위를 얻게 하셨다(마 10:1). 신약 성경에 예수님처럼 병 고침을 비롯한 놀라운 표적을 행한 자는 사도들(행 2:43; 5:12), 바울과 바나바(행 15:12), 스데반과 빌립뿐이다(행 6:8; 8:5-6). 고린도 교회에서도 예언의 은사와 함께 그 예언을 확증하기 위한 표적의 은사로서 병 고치는 능력 및 다른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이들 모두 사도 또는 선지자로서 받은 계시를 통하여 복음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했고, 그 증언의 확증을 위하여 표적을 행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을 언제든지 나타내실 수 있다. 그러나 은사로 그 능력을 받아 어디든지 만나는 사람의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는 자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표적이 필요했고 또 유익했지만, 그 후에는 필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다.
5. 서로(남을) 돕는 것
“가장 넓은 의미의 섬김을 위한 은사”(존 맥아더, 478p)로 “돕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은사로(롬 1:27), 특히 다른 성도의 짐을 대신 지는 것, 그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을 지원하는 매우 중요한 은사다. 신약 성경엔 약한 사람을 돕고(행 20:35), 복음의 일꾼이 쓸 것을 도우며(빌 2:25) 성도가 온전하게 되어 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이 나온다(엡 4:12). ‘돕다’의 뜻을 가진 헬라어는 여기 한 번 나오는데, 70인 역에서는 시편 84편 5절에 나온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섬김과 봉사의 은사는 성도에게 주님이 주시는 힘을 제공한다. 하나님께 나아가 친밀한 사귐을 누리게 하는 대로를 열어주는 복을 얻게 한다. 베드로는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벧전 4:11). 우리가 서로 섬기고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봉사하는 힘은 주님이 공급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받은 은사로 서로 도울 때, 우리는 서로에게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한다. 주님이 피로 사신 형제자매가 진리 가운데 굳게 서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랑하는 주님께 얼마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일인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각 지체를 통하여 서로 돕게 하시고 그렇게 교회를 세우신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 2:19).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6. 다스리는 것
‘다스리는 것’은 배를 조종하는 선장에게 사용되는 단어이다(행 27:11). 망망대해에서 배와 바다와 항해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총괄하는 지혜와 실력을 선장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지도력’, ‘행정력’의 일반적인 의미로도 이 단어는 사용되었는데, 신약 성경엔 여기 한 번, 그리고 70인 역에서는 잠언에서 각각 지혜를 얻어 “명철한 자”(1:5), 백성을 인도할 “지략”(11:14), 싸움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전략”(24:6)의 뜻으로 사용됐다. 교회를 인도하고 보호하는 일에도 이런 지혜와 총명의 은사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 교회 장로, 감독의 소명을 주님께 받은 자들은 다스리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딤전 5:17).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밝히신 뜻을 교회를 돌보는 데 필요한 지혜로 적용하는 일에 능하다. 어떻게 성경의 원칙과 기준으로 교회를 인도하고 성도를 돌봐야 할지 하나님이 솔로몬처럼 지혜를 베푸신다. 교사에게서 성경의 의미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지식의 말씀” 은사를 발견하는 것처럼, 다스리는 자들은 “지혜의 말씀” 은사를 발견할 수 있다. 다스리는 은사는 직분은 다르지만 집사에게도 발견된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처럼 주님은 성령으로 그들에게 지혜를 베풀어 구제와 섬김, 행정과 돌봄 등에 이 은사를 활용하게 하신다(행 6장). 교회엔 크고 작은 조직이 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누군가 그 조직을 이끈다면 다스리는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7.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통역하는 자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은사는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과 통역하는 자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방언의 역사는 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이 전부다. 방언에 관한 지침은 고린도전서 12-14장이 전부다. 방언은 언제나 사람의 언어였다. 13장에서 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라고 말하는데(1절), 여기서 과장법이 사용됐다. 게다가 성경에서 천사는 언제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다. 사도행전에 실제로 방언이 일어난 상황을 보면 방언은 배운 적이 없는 각종 언어로 선포된 복음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표적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바울은 방언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고 했다(고전 14:22). 오순절에도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성도들이 방언으로 복음을 전파했을 때, 놀라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 방언은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은사고, 통역하는 자는 자신이 배운 적이 없는 그 언어를 듣고 모국어로 변환하여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들이다.
입을 지으시고 각종 언어로 사람을 흩으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원하신다면 흩어진 각 나라 청자에게 각종 언어로 당신의 은혜로운 구원의 소식을 놀라운 은사를 통하여 들려주실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어 전파되고 있는 지금, 하나님은 어떤 특정인에게 방언이나 통역의 은사를 주셔서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그들의 언어로 선포하게 하지 않으신다. 거의 대부분 외국어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복음이 언어의 장벽을 넘는다. 확실한 건, 오늘날 은사주의 영향을 받은 교회에서 전 교인이 통역 없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아니고, 성경이 요구하는 방언과 통역의 올바른 실천도 아니다. 오히려 이교도의 방언과 유사성이 더욱 크다.
다시 한번,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여러 은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29-30절).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다.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가 자기 역할을 해야 몸이 온전히 기능하고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처럼, 교회를 이루는 모든 지체가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역할을 귀중히 여기고 서로를 세워주고 돕기 위해 기능해야 교회는 온전히 선다. 고린도 교회 성도 중 일부는 은사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서로 더 큰 은사를 받은 자로 인정받기 위하여 투쟁했다. 그러나 더 큰 은사는 없다. 모두가 크고 중요한 은사다.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그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이 맡기신 은사를 소중히 여긴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분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소중히 여긴다. 성령님을 사랑하면 그분이 하나 되게 하신 성도를 소중히 여긴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로 성도를 섬기는 것은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견고히 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