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대로 행하라
본문 : 빌립보서 3장 12~16절
설교자 : 조정의
주님께서 한 해 동안 유평교회에 베푸신 은혜가 많습니다. 참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고 말씀의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로 교회를 지키셨고 성도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아침마다 세 목사들이 모여 기도하는데 많은 기도에 응답하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한 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참 놀랍고 감사가 됩니다. 저는 우리가 오늘 이 말씀으로 한 해를 마무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은퇴를 맞는 목사님들께,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시면 12-14절은 “내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울 개인의 다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절부터는 “우리”, “너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고 시기는 AD 61년 즈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1,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로마 감옥에 갇혔던 가택구금 되어 있던 시기입니다. 바울은 거기서 살아나올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죽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목적은, 첫째,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던 선물에 대해 고맙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4장). 둘째, 로마 감옥에서의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전하기 위해서입니다(1장).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죽기까지 낮아지신 겸손의 마음을 품으라는 하나됨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2장). 마지막으로 거짓교사를 주의하라는 말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3장).
거짓교사에 대해서 빌 3:2에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가리켜 이런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방인으로 구성된 빌립보 교회에 이런 말씀을 할 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들은 구원을 위해서 행위를 강조하는 유대인들,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율법에 능통했던 자들이 사악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착취했던 사람들입니다. “행악하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로 의로움을 사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러한 율법을 의지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몸을 상해하는 자들”은 할례하는 자들, 유대주의자들입니다. 행위를 강조해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사려고 하는 유대주의자들입니다.
바울은 진짜 할례파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도 육체를 자랑하려면 할 것이 많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며, 율법에 대한 지식에도 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하고 행위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단칼에 거부합니다.
이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단지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마음껏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가지고 그분을 본받아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결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혔었고, 돌에 심하게 맞아서 죽은 줄 알고 내어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안에 있었던 은혜의 복음에 감동되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정도면 되었다고, 온전히 이뤘다고 보지 않습니다.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아직 멀었고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통해 이방인들을 더욱 구원하실 것이며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루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상, 푯대를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제 나는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이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유대주의자들을 겨냥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에 흠이 없다고 나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우리를 처음 사로잡은 복음의 능력을 붙들고 봉사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바울이 말한 그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태도를 가지거나 자신들이 했던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처음 들은 복음에 충성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가졌던 복음, 그가 처음 들어서 그 안에서 역사했던 복음이 우리가 가진 복음과 무엇이 다를까요?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을 사로잡았던 복음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한 복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는 왜 강하게 자리 잡지 않을까요? D. A. 카슨은 <그리스도인의 정의>에서 능력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복음에서 멀어지는 이유를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세속화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포기하도록 몰아가는 어떤 사회적 자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복음이 우리의 삶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속화입니다. 과거에는 가족과의 관계, 학업, 여가, 취미의 중심에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구원과 복음, 신앙이 우리의 삶에 한 부분으로 전락해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들이 모두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거 교회 안에서 가지고 있던 가치관, 귀한 정신들, 말씀에 대한 열정은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점점 세속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신앙이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복음과 신앙이 우리 신앙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둘째는 자기만족의 추구의 열풍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베푸는 것보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에 행사가 있으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생각하며 유익이 없더라도 참여했다면 이제는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될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개인주의적인 흐름이 강하지만 교회는 우리를 부르신 복음의 능력으로 그런 흐름을 역행하게 만들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셔서 우리를 섬기셨던 모습을 생각하며 우리는 서로 섬기기 위해 애써야합니다. 셋째는 철학적 다원주의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도 맞고 나도 맞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고집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과 현실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복음의 능력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말세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딤후 3)”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스며들면 우리를 사로잡았던 복음의 능력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신앙 중심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행동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효과는 바로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참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참된 가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만이 복음에서 멀어진 우리를 잡힌바 된 그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가게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이 놀라운 보화를 삶의 변두리로 내버릴 수 없습니다. 복음의 본질,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할수록 내 유익과 만족을 앞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섬기셨듯이 우리는 교회에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항상 살아있는 말씀으로 계시된 복음을 볼수록 말씀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17년은 더욱 복음으로 돌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기를, 복음이 능력 있게 우리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잘 해왔든지 상관없습니다. 아직 우리는 완전히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푯대를 향하여 더욱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내년에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에 대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교회학교, 성경공부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고상한지 충만히 채워지도록 할 것입니다. 부서를 더욱 체계화하여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건물을 세우거나 사람을 늘리기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성도 각자가 힘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의 수고와 인내에 칭찬하시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성탄절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신 분들이 계셨을 것입니다. 연기가 뛰어나서 감동한 것이 아니라 그 연극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생각하면서 감동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다시 아버지께 가서 영광을 돌려드리는 모습에 감동이 됩니다. 성도들과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어집니다. 바울이 말한 부르심의 상, 기다리고 있는 푯대가 바로 그 순간입니다. 우리가 모든 삶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서 영광을 돌려드릴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2017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이고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마음의 중심에 삼고 세속화되거나 말씀을 멀리하는 세태와 멀어지고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