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는 기억하셨다
본문: 시편 105편
설교자: 최종혁
시편 4권의 마지막 4편의 시 : 103-106편
- 공통적으로 감사와 찬양의 내용을 담고 있음(“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03, 104편), “여호와께 감사하라”/“할렐루야”(105, 106편))
- 103편은 구원의 하나님, 104편은 창조의 하나님
- 105, 106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관계. 105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106편은 이스라엘의 신실치 않음.
- 공통적인 테마가 있다면 “역사”와 “기억”! 103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104편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기억하게 했다. 그리고 105편과 106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특히 105편과 106편은 이스라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에서부터 가나안 정착까지의 동일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주로 모세오경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105편은 여호수아 시대를 짧게 언급하고 106편은 그후의 불순종의 역사인 사사기가 언급된다.
하지만 시에서 역사를 다루는 이유는 정보 전달이 목적은 아니고, 이 시편들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시편 105편과 106편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기록되었을텐데, 이 두 시편은 역사를 통해 그들에게 격려와 경고를 하기위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해 힘을 얻고, 불순종의 결과를 통해 경각심을 가져야했던 것이다. 시편 105편은 그 중 첫부분, 역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한다.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드러내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시편 104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많으셔서 그런 일을 하셨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셔서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시작과 끝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기억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시 105: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시 105:42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들은 그저 하나님이 많은 능력을 사용하다보니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거나 이스라엘이 운좋게 혜택을 얻은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기억하셨다. 약속만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그 약속에 따라 행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기억하셨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이 역사는 분명 힘이 되었을 것이고, 현재의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도 같은 측면에서 격려받을 수 있고 또한 그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나 개인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시편 105편은 과거의 역사로서 변하지 않고 하나님 역시 그러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105편의 구성은 간단하다. 1-6절은 찬양의 명령 혹은 초대이고 나머지는 그 이유 혹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먼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양해야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그리고 나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는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찬양의 명령(1-6절)
시 105:1–6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6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1-6절은 비슷한 명령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어느 정도의 논리적 흐름이 보인다. 먼저 이 명령의 대상을 보라. 개역개정 성경은 번역의 자연스러움을 위해서 5-6절의 순서가 바뀌어서 통합되어 있지만, 본래는 “기억할지어다”라는 명령 뒤에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이 나온다. 1-5절의 명령들에 순종해야할 대상이 명백하게 언급된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야곱의 자손, 곧 이스라엘 민족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기도 하고 또한 택함받은 자들이기도 하다. 사실 ‘너희’라고만 해도 될 것을 굳이 이렇게 명령의 대상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그 정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단지 이들이 하나의 핏줄을 이어받은 한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로 뒤 8절 이후에서부터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을 선택한 목적에 대해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리고 그의 자손을 선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이다. 사실 온 인류가 이 목적으로 창조되었지만, 그들이 죄를 선택했을 때 이 목적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다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셨고, 또한 그들을 통해 다른 민족들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복을 더하시고, 그것이 그들의 예배가 되고, 그것을 본 다른 민족들이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셨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실 교회도 그렇다.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교회도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구원 받았고, 그것을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전해야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명령들은 우리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관점에서 1-5절의 명령들을 보자. 1절은 이스라엘 선택의 궁극적인 목적 성취를 말한다.
시 105: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여기서 “감사하라”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라는 의미보다는 이어지는 명령들과 비슷한 의미로서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사람이 누구 누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려면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개인적으로는 어떤 연락도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진실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공적인 감사의 표현은 일차적으로 감사의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그 감사의 대상이 한 일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자 찬사로 봐야 한다. 1절의 명령들은 그렇게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그의 이름을 부르며 분명하게 선포하여 만민이 알게 하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2-3절은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드려져야할 예배에 대한 명령임을 분명히 한다.
시 105:2–3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기이한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해 드러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성품)이 예배의 내용이 된다. 한가지, 이 명령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은 예배자의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자랑하고 싶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하신 일들에 대해서 정말로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때가 있지 않은가. 주변에는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 밖에 없어서 빨리 어떤 성도를 만나서 교제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들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경험들이다.
그런 경험들이 모여 예배가 된다. 그래서 예배에는 자연스럽게 노래가 있고 음악이 있다. 하나의 즐거운 축제인 것이다. 그 마음이 즐겁고 즐거운 마음이 기도가 되고,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높인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배의 현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시편 기자는 처음으로 이 명령의 대상을 언급했는데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했다. 조금은 특이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 예배자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삶에서 계속해서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 즉 찾는 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경험하는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 삶의 좋은 것들(은택)이 자기 노력의 결과이거나 부모를 잘 만났거나 그저 운이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 사람도 비슷하다. 구하지 않았기에 받은 줄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말할 것이 없고 기뻐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그래서 4절을 보면 구할 것에 대한 명령이 있다.
시 105: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여기서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호의다. 은혜를 구하라는 말이다. 주목할 표현은 “항상”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신약의 명령과 같이, 어느 때든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하라는 명령이다. 그렇게 할 때 앞의 명령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순종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보이지 않을 때다. 기드온을 찾아왔던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인사했을 때, 기드온은 이렇게 답했었다.
삿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것이다. 이 시편이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혀졌다면, 아마 기드온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버리셔서 우리를 바벨론의 손에 넘기셨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능력과 은혜를 나타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구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시편 기자는 가장 중요한 명령을 말한다.
시 105:5–6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그 말씀하신 것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기억하면 구할 수 있고, 구하면 즐거워하며 찬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민 중에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다. 그 시작에 있는 것이 바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7절에서 45절까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들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길게 기록했다. 마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씩 따져가며 설득하듯이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기억해야 하고, 이것이 곧 찬양의 이유(근거)가 된다.
찬양의 이유(7-45절)
서두에 말한 것처럼 지금부터 다룰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긴 역사다. 사실 시편 저자는 이 역사를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 시편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역사 자체를 회상하는 것이 목적은 아닌 것이다. 이미 알고 있을 정보 중 일부를 끄집어 내서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역사를 자세하게 다 살펴보지는 않을 것이다. 읽어 가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 처음에도 말했고 다시 한번 말하자면, “하나님은 기억하셨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기억하셨다. 먼저 그 약속의 시작인 족장시대다.
족장(7-15절)
결론적으로 독자들이 꼭 기억해야할 중요한 진리를 시편 기자는 먼저 선포한다.
시 105: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여호와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고 여전히 우리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의 판단이 온 땅에 효력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만 혹은 예루살렘에서만 왕이 아니라 온 땅의 왕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기억하고 구하여 예배하고 선포해야할 분이시다. 이것이 전체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입으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어떻게 상황에 관계없이 이루셨는지를 통해 증명되었다.
시 105:8–11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1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이삭과 야곱에게 확고하게 다시 주어져서, 단지 아브라함에게만 주신 약속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임이 증명되었다.
처음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것은 창세기 12장이지만, 그 언약이 보다 구체적으로 체결되었던 것은 창세기 15장이다. 자녀가 없었던 아브라함(아브람)에게 자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창 15:13–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당시에는 언약식을 하면서 짐승을 반으로 쪼개고 그 사이를 언약의 당사자들이 지나가면서 반드시 언약을 지킬 것을 약속했었는데, 이 언약식에서는 아브라함은 잠들어 있었고 하나님만이 불과 연기로 그 임재를 나타내셔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즉, 하나님이 조건없이 이 언약을 지키실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던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의 언약에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도 있기 때문에 다뤄야할 내용이 많지만, 여기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나그네와 노예로서 살다가 가나안 땅에 돌아와 살게될 것이라는 것만 강조되었다(11절). 그것이 지금 그 땅에서 쫓겨난 백성들이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현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그 약속의 땅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 하나님이 아니거나 혹은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그렇지 않음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시 105:12–15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13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다녔도다 14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15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었다. 그들은 수가 적었고 다른 민족들의 틈에서 살아가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셨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족장들에 대한 말씀을 읽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 아래서 풍성한 삶을 누렸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숫자만 적었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도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보호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했다가 아비멜렉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 했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었다.
창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야곱과 라반의 일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야곱과 에서의 일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하나님은 이 작은 가족을 계속해서 보호하시고 복을 주셨다. 그들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으로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인도하고 계셨다.
요셉(16-23절)
다음은 요셉의 이야기다. 하나님은 다음 단계로 한 가족을 민족과 나라로 만드셨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을 다른 민족들의 틈에 두시지 않고 애굽이라는 큰 나라 안에 두셔서 그들이 번성할 수 있게 하셨다. 그 역사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시 105:16–23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21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22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23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의 땅에 나그네가 되었도다
정확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대로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근이 사용되었고 사람들의 악함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요셉이 형들에게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하나님이셨다(17절).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선을 이루셨다(창 50:20).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방 나라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몇 세대 전에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계획이 그러했던 것이다.
모세, 출애굽(24-38절)
요셉의 고난이 단련의 시간이기도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시간도 그러했다.
시 105:24–25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크게 번성하게 하사 그의 대적들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25또 그 대적들의 마음이 변하게 하여 그의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들에게 교활하게 행하게 하셨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국 애굽에서 그들을 섬겨야하는 노예가 되었지만, 그 시간은 그들이 번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표현은 25절에서 애굽이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괴롭힌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요셉의 형들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데 사용하셨던 것처럼, 애굽 사람들의 죄악도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지혜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애굽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셨던 것이다(롬 9:18).
그렇게 모든 무대가 준비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적은 가나안에 있던 소수 민족이 아니었다. 이미 대국을 이룬 애굽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도,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정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에 따라서 그들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지, 그렇게 하실지 또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신지,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이 시험대에 오르신 것이다.
큰 무대는 실력 없는 사람에게는 위기이지만 실력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다. 하나님께 있어 이 상황은 당연히 기회다. 사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기회라는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무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무대를 이렇게 만드셨다. 이스라엘과 애굽과 모든 세상의 다른 민족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고 이런 상황을 만드신 것이다.
이어지는 36절까지의 말씀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빠르게 언급한다.
시 105:26–36 그리하여 그는 그의 종 모세와 그의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27그들이 그들의 백성 중에서 여호와의 표적을 보이고 함의 땅에서 징조들을 행하였도다 28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그곳을 어둡게 하셨으나 그들은 그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29그들의 물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사 그들의 물고기를 죽이셨도다 30그 땅에 개구리가 많아져서 왕의 궁실에도 있었도다 31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파리 떼가 오며 그들의 온 영토에 이가 생겼도다 32비 대신 우박을 내리시며 그들의 땅에 화염을 내리셨도다 33그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그들의 지경에 있는 나무를 찍으셨도다 34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황충과 수많은 메뚜기가 몰려와 35그들의 땅에 있는 모든 채소를 먹으며 그들의 밭에 있는 열매를 먹었도다 36또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력의 시작인 그 땅의 모든 장자를 치셨도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다시 기록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그래서 5, 6번째 재앙인 악질과 악성 종기가 빠져있고, 재앙이 기록된 순서에도 차이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아는 것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사실이다. 모세와 아론이라는 뛰어난 사람들이 이 모든 일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흑암을 보내셨고 하나님께서 물을 피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개구리, 파리, 이, 우박, 화염, 메뚜기와 같은 것들이 몰려왔다. 기상 이변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애굽의 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장자를 치셨다.
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강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소수 민족만 제어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 어떤 강한 나라라도 궁극적인 왕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하실 수 있다. 애굽은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다.
시 105:37–38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애굽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떠나는 것을 기뻐할 정도로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38절).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은 치열한 전쟁 후에 겨우 살아남은 것처럼 나왔던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강성한 모습으로 나왔다(37절). 하나님은 이렇게 그들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겨우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형통한 삶이었다. 그 이후 광야와 약속의 땅을 정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광야와 정복(39-45절)
시 105:39–45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40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41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42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3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44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45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광야에서 많은 일이 있었고, 특히 그 중심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이 있었지만, 시편 기자는 그 무엇 하나 언급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106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05편은 목적은 책망이 아니라 격려다. 그래서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계속해서 눈 앞으로 가져온다. 하나님은 뜨거운 낮에서 구름을 차양막처럼 펴서 백성들을 보호하셨고, 춥고 어두운 밤에는 불로 그들을 보호하셨다. 그들에게 고기를 주시고 만나를 주시고 물을 주셨다. 끝내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황폐한 땅에서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민족들이 수고한 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과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이다. 기이한 일들이다.
이 모든 것을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때 이스라엘은 쓸모없는 백성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들의 대적이 너무 크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이고 그 약속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이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그 약속의 땅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전히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주신 언약이 폐하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구하고 찬양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지금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놓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애굽의 노예로서 죽었고 누군가는 광야길에서 죽었다. 약속의 땅에서 전쟁 중에 죽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모세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약속의 성취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기억하는 분이심을 기억한다면, 오늘을 순종하며 예배하는 자로서 살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현실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도전
이스라엘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시편 105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같은 격려가 된다. 사실 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추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셨던 메시야를 보내셨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새 언약을 그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지금도 우리 삶에서 지키고 계시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예수님도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이 그 하신 말씀을 기억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 우리에게 하신 말씀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선포하는 삶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 얼마나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고, 얼마나 하나님이 나를 신경쓰지 않고 계신 것 같고, 돌보지 않고 계신 것 같더라도, 기억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리고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