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날의 기적
본문: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설교자 : 이병권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언제 예수님이 오셨는지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아마도 12월 25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날을 정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의미 있고 유익한 일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기도 하지만 올해 마지막 수요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또 한 해를 돌아보며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볼 때 특별히 생각나는 일이 있으십니까? 참 감사했던 일, 혹은 정말 나에게 있어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있으십니까? 혹시 그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생각나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 주님을 섬기기 위해 교회가 함께 하는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 이것은 분명히 기적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는 것,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궁극적으로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정말 기적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적을 누리고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 땅에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기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특별히 세 사람을 통해서 그날의 기적을 생각해보고 어떻게 그날의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볼 세 사람 중에 첫 번째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눅1:26-27)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변두리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 받지 못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우리의 상식과 생각을 초월하는 아주 놀라운 기적이 시작됩니다.
사실 누가는 마리아를 기록하기 전에 먼저 다른 기적을 소개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엘리사벳이 임신한 기적입니다. 이 기적의 소식은 이스라엘의 중심인 성전이 배경이었고 그 소식은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 후에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전해진 소식은 그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장소와 대상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사렛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이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전 세계가 다 놀라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누구에게 그 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울 강남에 사는 유명한 사람 혹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연예인이나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에게 그런 일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런데 남사라는 시골 동네에 사는 어린 소녀에게 그 일이 벌어진 것과 같은 일입니다.
나사렛 시골 소녀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31) 천사가 전한 이 소식은 우리에게는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가 계속 듣고 전하고 노래하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복음입니다.
그런데 당시 마리아에게는 천사의 이 말이 어떤 소식이었을까요? 성경이 마리아를 소개할 때 “처녀”라고 기록합니다. 마리아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천사만 생각해도 너무도 두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그 천사가 한다는 말이 자기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천사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사가 와서 이런 말을 하니까 그렇지 만약에 평범한 사람이 와서 이런 말을 하면 따귀를 맞을 수 있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니,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꾸며낸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이건 말이 안 돼! 라고 합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래동화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의심으로 다가옵니다.
때로는 그런 상황들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여러 가지 일들,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맹신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믿어!’ 우리는 살면서 자주 우리가 가진 믿음과 부딪히는 일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그런 일들이 우리의 믿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그런 일들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질문들과 공격들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과 맞지 않는 그런 다양한 상황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해되지 않는 상황, 말이 되지 않는 일들을 만날 때 나의 신앙과 믿음을 공격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7)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만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됩니다.
처녀가 임신하는 것, 이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하면 이상하지만 하나님이 처녀가 임신할 수 있도록 하시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고 그분의 소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야 합니까?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마리아의 순수한 고백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되게 하소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 때, 그분의 능력을 알고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 모든 문제의 답은 분명합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닐 수 있지만 그 답은 확실합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을 내가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따르는 순종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욕심 나의 상식과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겸손히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날의 기적은 이렇게 마리아의 순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사람을 만나보겠습니다. 요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1:18-19)
누가복음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오심을 마리아의 시선으로 봤다면 마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요셉의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조금 다른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천사가 전한 소식에 들뜬 마음으로 흥분했던 마리아와는 대조적으로 요셉은 차분합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성경이 마리아에 대해서 “처녀”라고 소개했다면 요셉에 대해서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의로움은 약혼녀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마리아가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해서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사람들 모르게 파혼하려는 것입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자신의 죄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덮어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부정을 저지른 마리아에 대해서 분노하고 미워하며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그녀와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요셉의 의로움입니다. 요셉은 신사적으로 이 일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천사가 나타나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줍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20)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요셉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 그럼 그렇지 마리아가 그럴 리가 없지!’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이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있는 일이거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닙니다. 요셉이 그냥 받아들이기에 너무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마리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리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가족과 친척들과 이웃들은 물론,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마리아와 결혼 전에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워낙 이런 일이 많아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속도위반이라고 하면서 사회적인 분위기나 문화가 이런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출산이 문제인데 아이를 가지고 결혼을 한다니까 오히려 칭찬받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것은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벗어나는 일입니다.
요셉 당시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이 기준이 바로 서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느끼는 수치와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훨씬 더 큰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주목합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기사, 뉴스들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스캔들, 거기에 뭔가 자극적인 요소가 들어있으면 금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립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에게 이 일은 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24-25)
요셉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일어나 천사의 분부대로 행합니다. 그의 아내, 자신과 동침하지 않았지만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옵니다.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순종’을 선택한 것입니다.
순종을 선택한 요셉, 그럼 요셉이 실제로 경험한 것은 무엇일까요? 요셉이 순종을 선택했으니까 헤아릴 수 없는 복이 넘치도록 임하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마리아와 가정을 꾸리는 기쁨으로 충만했을까요?
요셉이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리고 왔을 때 그 때부터 요셉은 아내와의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에게는 ‘약혼의 기간을 기다리지 못한 자’, ‘결혼 전에 부정한 일을 저지른 자’, 이런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렇게 순종했을 때 많은 경우에 순종한 다음에 실제로 내가 감당해야하는 것은 어려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기적들처럼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사자굴에서 살아 나오는 일들이 그런 기적들이 내 삶에 현실로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순종할 때마다 그런 기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순종할 때마다 어려움이 사라지고 좋은 일만 생긴다면 누가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순종을 두고 고민하겠습니까?
실제로는 아닐 때가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을 두고 고민합니다. 기적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순종을 미루는 겁니다. 내가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겁니다. 어떨 때는 순종했는데 그로인해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고 순종한 것에 대해서 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있어서 순종은 귀한 것입니다. 순종은 내 인생을 더 가치 있게 합니다. 순종은 단순히 지금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지금뿐만 아니라 인생을 더 멀리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보고 나의 영원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순종할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기적과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 내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적을 이루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어려움이 될 수 있고 때로는 고난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나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순종이 하나님의 기적을 만듭니다. 요셉의 순종은 비록 요셉 자신에게는 더 큰 어려움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순종을 통해 그날의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나볼 사람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님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지, 예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천사였던 스랍조차도 그 앞에서는 눈과 발을 가려야했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에 그 영광의 예수님께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오늘 말씀에서 세 사람을 살펴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만나볼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제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신비이며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모릅니다. 영광의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께서 지극히 낮아지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기적은 예수님의 순종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그날을 크리스마스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에게도 크리스마스가 되어 주님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꼭 하셔야만 했을까요? 큰 손해가 있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순종을 하셨습니다. 순종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도 제한될 수 없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이유는 예수님이 순종하셔서 친히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날의 기적이 있었기에 우리의 모든 날들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적의 날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날들이 기적인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날의 기적을 믿는 자로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기적을 날마다 경험하는 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순종으로’, 내 삶을 순종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이 먼저 순종하셨기에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삶에서 ‘순종의 기적’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사건이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중에 있었던 일인데 전쟁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14년 12월 24일, 가장 치열했던 전장인 서부전선에 이틀 동안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독일군과 프랑스, 영국 병사들이 함께 캐럴을 부르고 선물을 교환하며 함께 축구 경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특이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인간의 욕심으로 빚어진 전쟁 속에서 크리스마스가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평가됩니다.
이 사건을 기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서로 원수 되었던 자들이 화해하는 것, 전쟁에서 평화를 경험하는 것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았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죄를 좇아서 죄의 종이 되었던 살던 자가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날의 기적입니다. 그날의 기적이 있었기에 그 후로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매일의 삶이 그날의 기적으로 말미암은 기적의 연속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기적을 맛본 자입니다. 그리고 그날의 기적을 믿는 자로서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 기적을 이루어가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삶에서 순종으로 내 삶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